[한경ESG] 이슈 브리핑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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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가총액 상위 주요 기업의 탄소중립 목표와 경로를 분석한 결과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목표에 대부분 부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ESG〉가 국내 시가총액 50대 기업의 온도 상승 전망치를 글로벌 ESG 평가 기관인 모닝스타 서스테이널리틱스로부터 제공받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내재 온도 상승(Implied Temperature Rise, ITR)은 평균 2.93℃로 나타났다.

이는 〈한경ESG〉 5월호에서 국내 97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ITR 평균 전망치(2.16℃)보다 높은 수치다. 또한 지구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로 억제한다는 ‘1.5℃ 목표’ 달성이 가능한 곳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IPCC의 <1.5℃ 특별 보고서> 이후 글로벌 기후 대응 목표는 2℃에서 1.5℃로 강화됐다.
시총 50대 기업, 기후 대응 1.5℃ 달성 가능 기업 ‘0’
조사 대상 20%만 2℃ 억제 목표 충족

시가총액 50대 기업 중 현대모비스, 삼성SDI,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한국전력, 삼성전기, 에쓰오일, LG디스플레이 등 8개 기업(16%)의 ITR이 2℃ 이하를 기록했다. 이어 ITR 2℃인 KB금융지주, 삼성화재를 포함하면 10개 기업(20%)만이 ‘2℃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서스테이널리틱스 조사에서 ITR 전망치가 4℃ 이상을 기록한 곳은 HD현대중공업, 대한항공, SK이노베이션, 삼성엔지니어링, 한국조선해양, 포스코홀딩스, 포스코케미칼, 현대차, 넷마블, 기아 등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제조업 중 자동차 부품 공급사인 현대모비스가 ITR 1.8℃로 가장 낮았고, 삼성SDI, 삼성전기, LG디스플레이 등이 1.9℃로 뒤를 이었다. 정유사 중에는 에쓰오일(1.9℃)이 유일하게 선두 그룹에 들었으며, 한국전력(1.9℃)도 공기업 중 유일하게 상위에 랭크됐다. 금융업종 중에서는 신한·하나·KB국민·삼성화재가 상위 10위에 포함됐다. 상위 기업 중 글로벌 부품사가 많은 것은 글로벌 공급망 차원의 압박으로 일찍부터 대응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글로벌 부품사 약진...친환경 성과 주목

현대모비스는 ITR 1.8℃로 시가총액 50대 기업 중 온실가스 감축을 가장 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모비스는 구동 시스템, 제어기, 배터리 시스템, 수소연료전지 같은 전동화 핵심부품 포트폴리오를 갖춘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다. 2020년 기준 환경 분야 특허가 전체 특허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친환경 분야에 특화돼 있다. 현대모비스는 국내 자동차 부품사 중 처음으로 2040년 RE100(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환에 힘쓰고 있다. 또 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세계경제포럼(WEF) 국제비즈니스위원회 등 다양한 글로벌 ESG 정보 가이드라인을 적극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삼성SDI, 한국전력, 삼성전기, 에쓰오일, LG디스플레이는 ITR 1.9℃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중대형 전지 및 소형 전지를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 업종으로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등 경쟁사를 따돌리고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기후 관리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기는 기후변화 전담 대응 조직을 마련해 에너지 저감 활동과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에 나서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로부터 2014년 이후 최고 등급을 받아왔다.

한국전력은 국내 전력 시스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력 공기업이다. 2050 탄소중립 전략을 추진 중이다. 에쓰오일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고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 스팀크래커를 구축해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지원하고 있다. 또 신사업으로 생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는 수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글로벌 OLED와 LCD 부품사로 프리미엄 TV 시장과 차량 및 IT 제품에 패널을 제공하고 있다.

금융사 중에서는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가 ITR 1.9℃를, KB금융지주와 삼성화재가 2℃를 기록했다.

이어 SK하이닉스, 삼성생명, LG생활건강,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LG이노텍이 ITR 2.1℃로 나타났고 삼성물산, KT&G가 2.2℃로 뒤를 이었다. SK하이닉스와 LG이노텍 역시 대표적 글로벌 공급망에 속하는 기업이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LG이노텍은 광학솔루션, 기판사업, 전장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소비재 기업 중에서는 LG생활건강과 KT&G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체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포함돼 있으면서 친환경 산업에 속하는 기업이 기후 대응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모비스와 삼성SDI가 대표적 경우다. 정유사인 에쓰오일과 한국전력은 고탄소 배출 업종이지만, 적극적인 탄소저감 노 력과 관리 덕분에 상위권에 들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2.0℃ 이하 억제 목표 달성이 가능한 기업이 16%에 불과해 국내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기후 대응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고은해 서스틴베스트 실장은 “ITR이 낮은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 저감 목표 수준이 다른 기업들보다 높거나 온실가스 배출총량이 낮은 편”이라며 “중·장기 감축 목표를 기후 변화 대응에 필요한 수준으로 수립하고 실제 매출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기업이 순위가 높다”라고 말했다.
시총 50대 기업, 기후 대응 1.5℃ 달성 가능 기업 ‘0’
시총 50대 기업, 기후 대응 1.5℃ 달성 가능 기업 ‘0’
회사의 관리 노력도 반영

이번 조사 결과를 〈한경ESG〉 5월호에 게재된 MSCI의 ITR 조사와 비교하면 기업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MSCI는 기업의 기존 배출 추세와 감축 목표 등을 토대로 추정 배출량을 산출하는 반면, 서스테이널리틱스는 여기에 기업의 관리 역량을 함께 평가한다. 한국전력의 경우 석탄화력 등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노출 비중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에 대한 회사의 의지와 자구 노력 등이 평가받아 예상외로 높은 순위에 올랐다.

ITR 평가에서는 고탄소 업종이나 협력사가 많은 대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ITR 4℃ 이상 기업에 철강, 항공, 화학, 중공업, 자동차 등이 다수 포함된 것은 이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서스테이널리틱스 조사에서 파리협정 목표인 2℃ 초과 기업이 MSCI보다 많은 것은 서스테이널리틱스의 기준이 보다 엄격하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서스테이널리틱스의 ITR 평가는 스코프 1~3 배출량을 모두 반영한다. 다만 대부분의 기업이 충분한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 다중 회귀 모델을 사용해 추정치를 낸다. 스코프 1과 스코프 2 데이터의 40%가, 스코프 3 데이터의 75%가 추정치로 구성된다. 이 같은 방법론에 따라 2050년까지 예상 배출량에서 관리된 배출량, 즉 회사의 노력으로 줄일 수있는 배출량을 뺀 나머지가 예상 배출량이 된다. 이 예상 배출량과 기업에 주어진 넷제로 예산(기업에 허용된 배출량) 사이의 격차를 온도로 환산한 것이 내재 온도 상승이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