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 가산점 사라진 배터리 전기차
자동차 배출가스 감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감축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일부 국가에선 기업이 이익을 모두 토해낼 만큼 강력히 부과한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오죽했으면 자동차기업이 하소연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심 쓰듯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기준을 가차 없이 회복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오히려 강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충족해야 할 평균 효율을 높였고 벌금도 증액했다. 무조건 맞추라는 강제성이다.

평균소비효율은 제조사가 연간 판매한 전체 자동차가 대상이다. 연간 내뿜는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기준을 넘으면 충족, 넘지 못하면 벌금이다. 나라별로 제도가 도입된 지는 꽤 오래됐는데 가장 큰 변수는 배터리 전기차였다. 전기차 보급 확산을 위해 전기차는 배출가스를 ‘0’으로 인정했다. 그러자 내연기관 판매로 이익을 얻는 제조사가 전기차를 평균 효율 맞추기용으로 구성했다. 수익성 높은 중대형 내연기관 판매에 집중하되 소형은 외면하고 평균 기준을 맞추기 위해 배터리 전기차는 최소 비중으로 구성했다. 배터리 전기차를 많이 팔아도 수익이 적어서다. 결국 제조사에 배터리 전기차는 평균 효율 기준 충족용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전기차는 국내에서도 배출가스를 ‘0’으로 인정한다. 다음으로 배출가스가 적은 차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하이브리드(HEV) 순이다. 소형 화물차도 전기로 구동되면 배출가스는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 KGM 렉스턴 스포츠의 탄소 배출량이 ㎞당 199g일 때 현대 포터 EV는 ‘0’이다. 그리고 평균 배출가스 기준은 올해까지 ㎞당 95g을 달성해야 하고 내년에는 92g, 2025년에는 89g 등으로 차츰 강화되다 2030년에는 70g으로 줄여야 한다. 기업 시각에선 배출가스 평균 충족용이었던 전기차 판매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전기차의 배출가스 기준마저 강화에 나섰다. L당 100㎞를 훌쩍 넘는 것으로 인정하던 전기차의 평균 효율을 무려 70%가량 삭감하겠다는 의지다. 현재 미국 EPA가 인정한 폭스바겐 전기차 ID.4의 미국 내 효율은 L당 160㎞에 달한다. 미국 에너지부가 전기 에너지를 휘발유로 환산한 결과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포드 F150 전기차의 효율은 L당 100㎞에 이른다. 덩치 큰 F150도 꿈의 효율이라 불리는 리터카에 등극한다. 동일한 기준으로 기아 니로 EV는 L당 164㎞의 효율이다.

전기차의 휘발유 환산 효율은 미국 정부가 오랜 시간 ‘L당 ㎞’에 익숙한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 낸 환산 표기법이다. 전기차는 ‘㎾h당 ㎞’로 표시하는 게 맞지만, 내연기관과 전기차 유지비 비교가 쉽도록 환산 효율을 적용했다. 하지만 ℓ당 160㎞의 숫자는 현실적이지 않다. 전기차의 휘발유 환산 수학식에 넣는 각종 계수에서 전기차가 불리한 조건은 모두 배제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탄으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면 석탄 계수를 넣고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내뿜는 배터리 탄소 계수도 개념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가 처음 등장하던 20년 전, 미국 정부는 여러
배출가스 가산점 사라진 배터리 전기차
변수를 감안하지 않고 전기차 구매 유도를 위해 최대 환산법을 사용했다. 그 이유로 ‘㎾h당 3㎞’를 가도 전기차의 환산 효율은 ‘L당 100㎞’를 훌쩍 뛰어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른바 전기차의 효율에 거품이 가득 찬 셈이다. 그래서 이제 거품을 빼기로 했다. 그것도 70%가량을 삭감하니 제조사로선 난감한 일이다. 그야말로 전기차 판매에 기업의 생존을 걸어야 한다. 전기차 전쟁은 이렇게 시작된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