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익 거래로 이득…WSJ "미국 영향력 약화 보여주는 현상"
"산유국 사우디·UAE, 서방제재로 값 내려간 러 석유 사들여"
서방의 제재로 가격이 하락한 러시아 석유 제품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이 사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이들 산유국이 값이 싸진 러시아 석유제품을 내부에서 소비하거나 정제·수출해 돈을 벌고 있으며 이는 중동 국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원자재 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UAE로의 석유 수출은 6천만 배럴로 전년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에너지 가격 정보업체 아르거스 미디어에 따르면 UAE의 주요 석유 저장 허브인 푸자이라에서 러시아산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분의 1로, 사우디산 석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케이플러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사우디로 수출된 러시아산 석유가 거의 없었지만, 전쟁 후에는 하루에 10만 배럴, 1년이면 3천600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석유가 풍부한 사우디와 UAE가 러시아산 석유 제품을 수입하는 이유는 낮은 가격으로 인한 차익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WSJ은 전했다.

러시아의 우랄산 원유 가격은 최근 몇개월간 브렌트유보다 30%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사우디·UAE 등 산유국들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 나프타, 연료유, 경유 등으로 정제, 판매한 뒤 차익을 얻는 것이다.

케이플러 자료에 따르면 사우디와 UAE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로의 수출을 크게 늘렸다.

프랑스 등은 제재 이전 경유 대부분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다.

실제로, 사우디의 국영 석유 업체인 아람코의 지난해 연간 이익은 사상 최대인 1천610억달러(약 212조원)를 기록했는데, 특히 정제 부문의 이익이 27%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UAE의 경우는 러시아 석유 제품의 주요 저장소이자 재수출의 허브가 됐다고 WSJ은 분석했다.

UAE 민간 무역 업체들은 러시아에서 석유 제품을 수입해 파키스탄이나 스리랑카, 동아프리카 등으로 재수출한다고 아르거스 미디어의 엘샨 알리예프 걸프만 담당 책임자는 설명했다.

UAE의 러시아산 석유 제품 수입에는 국영 석유업체들도 관여했는데, 예를 들어 작년 11월에는 70만 배럴의 북극해 원유가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으로부터 아부다비 국영 석유사(ADNOC)의 정유공장에 인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우디 아람코는 제재 대상인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와의 거래를 위해 지중해에서 석유 제품 화물을 옮겨 실은 뒤 운반했고 때로는 UAE 중개인을 통해 들여와 UAE에 보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우디와 UAE의 러시아산 원유·석유 제품 수입은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를 약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됐다.

브라이언 넬슨 미 재무부 차관은 지난 2월 중동을 순방하며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제재를 시행해 작년 말부터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도입했고 지난 2월부터는 러시아산 정제 유류제품에 대한 가격상한제도 실시했다.

UAE 정부 관계자는 자국이 유엔 제재를 준수하고 있으며 "제재 대상을 다루기 위한 강력한 절차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와 사우디 왕실은 코멘트를 거부했다.

분석가들은 이들 산유국이 러시아로부터의 석유 수입을 끊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내다본다.

서방의 제재에도 산유국들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늘렸다는 것은 최근 OPEC+의 깜짝 추가 감산 결정과 함께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은 추가 감산을 예고했는데, 사우디가 러시아에 동조해 석유 감산 조치에 나서면서 미국 정부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