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3월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고공행진 했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한풀 꺾이면서 각국의 긴축 기조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유로존·미국 3월 물가상승 둔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와 미국의 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차례로 발표됐다. 모두 전월 수치를 밑돌았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3월 유로존 소비자물가는 1년 전 대비 6.9%(속보치) 상승했다. 전월의 8.5%를 밑도는 것으로 작년 11월 이후 다섯 달 연속 둔화세를 이어갔다. 특히 199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상승세가 가장 큰 폭(1.6%P)으로 둔화한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짚었다.

이는 지난해 러시아의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 중단 여파로 급등했던 에너지 물가가 약 1년 만에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5.7%로 전달(5.6%)에 이어 또 유로화 도입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상무부는 2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5.0% 상승했다고 밝혔다. 시장 추정치(5.1%)와 전월(5.3%)보다 모두 낮았다. 에너지 가격이 전월보다 0.4% 떨어지면서 물가 상승 폭을 제한한 것으로 분석된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 상승률은 1월보다 0.1%포인트 낮은 4.6%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는 4.6%로, 역시 전월(4.7%)보다 상승 폭을 다소 줄였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금리는 고점에 접근했다”며 “갑자기 취약해진 글로벌 은행체계는 중앙은행들에 금리 인상을 서둘러 중단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5월 금리동결 전망 커져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상승률이 주춤하면서 시장에는 미국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인지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일 오전 1시께(현지시간) 페드워치는 오는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4.75~5.0%로 동결할 확률을 51.6%로 집계했다. 한 달 전 0%였던 상황이 급변했다. 25bp(1bp=0.01%포인트) 인상 확률은 같은 기간 48.4%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상품 트레이더들의 예측을 반영하는 페드워치 툴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예측한다.

은행 위기가 진정되고 있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는 건 걸림돌이다. 미국의 고용시장도 열기가 여전하다. Fed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런 우려에도 연내 금리 인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페드워치의 9월 미 기준금리 예측을 보면 연 4.75~5.0% 의견은 34.9%, 연 5.0~5.25%는 9.7%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현 수준보다 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로존 3월에도 빅스텝…근원물가 발목

유로존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전체적인 물가는 진정됐지만, 근원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는 만큼 향후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둘러싼 유럽중앙은행(ECB)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의 실질 기준금리는 여전히 주요국 가운데 일본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로존은 주변국 대비 기준 금리를 늦게 인상했고, 미국·캐나다·영국 등과 달리 긴축 사이클 후반에 진입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ECB는 3월에도 빅스텝(한 번에 0.5%P 기준금리 인상)을 유지하며 기준금리를 연 3.5%로 인상했다.

ECB 내부에서도 인플레이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필립 레인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은행의 불안정이 해소된다면 높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