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까지 5조원 이상의 벤처펀드 만기가 도래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 회수가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펀드 만기 연장마저 어려울 경우 스타트업 비상장주식(구주)이 헐값에 매물로 쏟아질 수 있다. 벤처펀드에 출자한 연기금 등 투자자들의 자산 가치도 큰 폭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스타트업은 기업가치 하락을 피하기 위해 주식 대신 투자사채로 눈을 돌려 급전을 조달하고 있다.
'5조 벤처펀드' 만기 다가오는데…IPO 막힌 스타트업, 대출로 연명

IPO 침체로 구주 매각도 어려워

26일 중소기업 창업투자회사 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는 218개로 총결성액은 5조3517억원에 이른다. 내년 상반기(1~6월) 만기인 3조3592억원(114개 투자조합 결성액)까지 더하면 8조7000억원이 넘는다.

벤처시장이 호황일 땐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주를 사는 수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전자책 시장 1위 리디,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버킷플레이스) 주식 등이 거의 ‘반값’에 나와도 외면받고 있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는 “연말 만기가 도래하는 벤처펀드 연장을 위해 출자자(LP)들과 협의하고 있다”며 “IPO 시장 분위기가 계속 나빠지면 할인해도 구주 매각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올 들어 신규 VC 활동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창업투자회사의 신규 등록은 2019년 19개에서 지난해 42개로 증가세를 보였지만 올해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연초 이후 중소벤처기업부에 신규 등록을 마친 창업투자회사는 케이스톤파트너스, 크로스로드파트너스, 빅뱅벤처스, 알케믹인베스트먼트 등 4개에 그친다. 반면 폐업하는 VC는 늘고 있다. 등록 말소를 신고한 창업투자회사는 2019년 3개에서 지난해 8개로 증가했다. 올초에는 허드슨헨지인베스트먼트가 폐업했다.

주식 대신 대출로 자금 조달

투자시장이 얼어붙자 스타트업은 주식 대신 투자사채를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최근 담보대출에 신주인수권(워런트)을 결합한 ‘벤처 대출’ 형태로 500억원을 조달했다.

VC도 투자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투자사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출에 따른 이자 수익과 함께 신주 인수를 통한 지분가치 상승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창업투자회사의 신규 투자액 가운데 투자사채 비중은 지난해 2분기 2.5%에서 4분기 10.7%로 높아졌다. 반면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등 성장 플랫폼 투자 시 주로 활용한 상환전환우선주 비중은 같은 기간 75.5%에서 68.9%로 줄었다. 보통주를 통한 신규 자금 조달도 18.2%에서 13%로 낮아졌다.

운용사가 관리하는 새로운 펀드에 기존 자산을 매각하는 세컨더리 방식도 VC와 사모펀드가 자산가치 하락을 피하기 위해 활용하는 전략이다. 가우라프 파탄카르 블룸버그인텔리전스 분석가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VC와 사모펀드가 자산가치 헤이컷(삭감)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쓰고 있다”며 “밸류에이션 거품이 낀 좀비 회사들은 구조조정, 사업모델 재조정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란/김종우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