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시장격리(정부 매입)에 나섰지만 쌀값은 여전히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급 균형 없이 단순히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것만으로 쌀값을 높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만t 더 사들였는데도 떨어진 쌀값…"의무매입 땐 초과공급 늘어 농민 손해"
26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e농업관측 4월호’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2022년산 전국 산지 평균 쌀 가격은 20㎏당 4만4797원으로 지난해 수확기(10~12월, 4만5455원) 대비 1.4% 하락했다. 1년 전(4만8467원)에 비해선 7.6%, 평년(2017~2021년 5개년 평균) 대비로는 6.4% 떨어진 수치다.

산지 쌀값이 추수철을 앞둔 지난해 9월 4만393원까지 하락하자 10월 정부는 예상 생산량의 23%에 달하는 90만t의 시장격리 계획을 발표하고 쌀값 부양에 나섰다. 기존 정부 비축 물량(35만t)과 2021년산 재고(10만t), 2022년산 초과 공급량(15만5000t)을 합친 60만5000t보다 29만5000t을 더 샀다. 소위 시장에 ‘남는 쌀’을 전부 사고 약 30만t을 더 사들였음에도 쌀값이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되레 중장기적으로 쌀값을 하락시킬 것이라는 정부 설명에 부합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계화율이 99.3%에 달하는 쌀농사 특성상 얼마를 생산하든 정부가 매입해준다면 공급이 늘 수밖에 없고,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3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밀, 콩, 가루 쌀 등 다른 작물 재배 지원을 강화하더라도 쌀 초과 공급량이 올해 22만6000t에서 2030년엔 세 배 수준인 63만1000t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 공급량이 늘면서 20㎏에 4만5000원 수준인 산지 쌀값은 4만3000원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값을 근본적으로 안정화하려면 수요에 맞춰 벼 재배 농지를 밀, 콩, 가루 쌀 등 대체작물로 전환해 수급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단순히 남는 쌀을 정부가 강제로 사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농민에게 손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농민단체 여론을 수렴한 뒤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농심(農心)’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는 다음달 4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권이 의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수차례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정환/좌동욱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