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앤디 그로브. 무어와 노이스는 1968년 인텔을 공동 창업했다. 그로브는 인텔의 세번째 직원으로 합류했고 이후 인텔 CEO를 맡으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인텔 제공
왼쪽부터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앤디 그로브. 무어와 노이스는 1968년 인텔을 공동 창업했다. 그로브는 인텔의 세번째 직원으로 합류했고 이후 인텔 CEO를 맡으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인텔 제공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제시한 고든 무어(Gorden Moore) 인텔 공동 창업자가 24일(현지시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든 앤드 베티 무어' 재단은 이날 "공동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화와이에 있는 그의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발표했다. 무어의 유족으로는 부인 베티와 아들 케네스와 스티븐, 그리고 네 명의 손자가 있다.

무어는 1929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산호세주립대(San Jose State University), UC버클리(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를 거쳐 '칼텍(Caltech)'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캘리포니아공과대(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1954년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메릴랜드의 '존스 홉킨스 응용 물리학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1956년 쇼클리반도체에 합류하며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이듬해 무어는 로버트 노이스 등 쇼클리반도체 동료 6명과 '페어차일드반도체'를 공동 설립했다. 11년 뒤인 1968년 7월 무어는 노이스와 함께 실리콘밸리에 인텔을 세웠다.

그는 인텔에서 승승장구했다. 1975년 사장이 됐고 1979년 CEO 겸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1987년까지 CEO를 맡으며 인텔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반도체 제국'으로 키웠다. 1997년 무어는 명예 회장이 되었고 2006년에 사임했다.
고든 무어 인텔 공동창업자. 인텔 제공
고든 무어 인텔 공동창업자. 인텔 제공
무어는 1960년대 미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이끈 장본인으로 꼽힌다. 1965년 기고문을 통해 "반도체의 집적도가 약 매년 2배로 증가한다"고 예측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어의 동료였던 카버 미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가 이를 언급하며 '무어의 법칙'으로 굳어졌다. 10년 뒤인 1975년 무어는 집적도가 2배로 증가하는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수정했다.

무어는 2008년 인터뷰에서 "칩에 점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음으로써 모든 전자 제품을 더 싸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칩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전자제품을 더 빠르고, 더 작고, 더 저렴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반도체 산업의 원동력이 됐다. 수백만 개의 일상 제품에서 칩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무어는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 보존, 과학 발전, 환자 치료 개선 등에 집중했다. 2000년 아내 베티 무어와 함께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현재까지 51억달러(약 6조6300억원) 이상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2005년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멜린다 부부를 꺾고 '미국 최대 기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인텔 본사의 '로버트 노이스' 빌딩에 들어가고 있는 고든 무어. 인텔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인텔 본사의 '로버트 노이스' 빌딩에 들어가고 있는 고든 무어. 인텔 제공
무어에 대한 추모사도 이어지고 있다. 패트릭 겔싱어 인텔 CEO는 "그는 통찰력과 비전을 통해 기술 산업을 정의하고 트랜지스터의 힘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수십 년에 걸쳐 엔지니어들과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며 "그의 유산을 이어갈 수 있는 영광과 책임감에 겸손해짐을 느낀다"고 했다.

겔싱어는 지난해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인텔 캠퍼스 이름을 '고든 무어 파크'로 바꿨다. 캠퍼스 내 빌딩엔 '더 고든'이란 카페, '더 무어 센터' 등도 들어섰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