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민 70%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개혁을 강행한 것과 달리 한국에선 연금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정권의 운명을 걸고 연금개혁에 나선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한국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금개혁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노동, 교육과 함께 ‘3대 개혁과제’로 제시했지만 속도를 내지 않는 분위기다. 국회는 연금개혁안을 논의하겠다며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했지만 보험료 인상안 합의조차 도출하지 못했다.

‘정치 생명’ 걸고 연금개혁 한 마크롱

연금개혁 정면돌파한 마크롱…떠넘기고, 방관하고, 후퇴하는 韓
프랑스 연금개혁의 핵심은 62세인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는 것이다. 연금을 100% 받기 위한 기여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시점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8년 앞당겼다. 대신 최소 연금 상한액을 최저임금의 75%에서 85%, 즉 월 1015유로(약 142만원)에서 월 1200유로(약 168만원)로 인상해 소득보장 수준을 소폭 높였다. 큰 틀에서 보면 ‘더 일하고 비슷하게 받는’ 연금개혁이다.

연금개혁은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그는 임기 초인 2019년에도 연금개혁에 나섰지만 노조 반발에 밀려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 의회 동의 없이 정부 단독 입법을 가능케 하는 ‘헌법 49조3항’까지 발동해 연금개혁을 성공시켰다. 프랑스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야권이 내각 불신임안을 냈지만 정부 원안이 통과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연금개혁을 추진한 것은 프랑스 연금의 부실화를 막아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는 올초 신년 연설에서 “우리가 더 오래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오래 일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가 연금개혁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 추계에 따르면 연금개혁 전 프랑스의 연금 재정은 올해부터 18억유로(약 2조5000억원) 적자로 돌아선다. 이는 2030년에 135억유로(약 19조원), 2050년에는 439억유로(약 61조원) 적자로 확대된다. 하지만 이번 개혁으로 프랑스연금은 2030년에도 177억유로(약 25조원)의 흑자를 낼 전망이다.

표 떨어지는 연금개혁에 소극적인 韓

한국의 연금개혁은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잠정치) 결과,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 악화로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시점은 4차 재정추계(2018년) 때의 2057년보다 2년 이른 2055년으로 앞당겨졌다. 국민연금 기금의 적자 전환 시점은 2042년에서 2041년으로 1년 빨라졌다. 국민연금이 70년 뒤에도 존속 가능하려면 1999년부터 소득의 9%로 동결돼 있는 보험료율을 최소 18%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5차 재정추계의 핵심이다.

하지만 정부는 연금개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작년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연금개혁에 대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개혁 시점에 대해선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달 말 5차 재정추계 최종안을 낸 뒤 정부 연금개혁안을 10월 말 발표할 계획이다. 이 경우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1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에서 보험료율을 9%에서 15%로 높이는 안이 논의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정부안이 아니다”고 부인했을 뿐 별다른 개혁 비전을 내놓지 않았다. 한 연금 전문가는 “정부가 연금개혁 의지가 있다면 당시 장관이 보험료 인상 필요성 정도는 밝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지난해 10월 연금특위를 구성했지만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연금 보험료율 인상안 제시를 포기했다.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연금개혁을 직접 언급하는 걸 꺼리는 모양새다. 연금특위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프랑스 사례는 연금개혁과 같은 어려운 과제는 결국 표를 넘어선 리더의 결단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며 “한국엔 마크롱 같은 리더가 없다”고 말했다.

황정환/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