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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 A씨(36)는 한 달 새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가 세 명이나 찾아왔다. 모두 대출을 통해 암호화폐나 주식에 손을 댔다가 연체가 쌓였다고 털어놨다. 신용점수가 400점 아래라 2금융권에서도 대출받는 게 불가능한 처지라며 당장 다음주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평소 신용관리를 하라고 훈계라도 하고 싶지만 당장 불법 사채를 써야 한다니 돈을 빌려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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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빚을 돌려’ 막는 다중채무자 수가 450만 명을 넘어섰다. 투자 손실에다 금리 인상으로 늘어난 원리금 상환 부담 탓에 신용불량자로 내몰려 불법 사채를 쓸 처지에 놓인 다중채무자도 많다. 여러 금융사에 빚이 있다면 어떻게든 오래된 채무부터 갚아 90일 이상 연체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게 신용평가사의 조언이다. 대부업계나 저축은행 등 고금리 대출의 유무나 잦은 할부·현금서비스 사용도 신용점수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오래된 채무부터 갚아야”

신용점수를 제공하는 신용평가사 가운데 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나이스평가정보 두 곳의 개인 신용평가 시장점유율이 95%를 웃돈다. 이 중 나이스평가정보를 기준으로 보면 개인 신용점수에 반영되는 변수들의 가중치는 신용형태정보(31.3%)와 상환 이력(29.7%), 부채 수준(25.5%), 신용거래 기간(13.5%)순으로 높다. 신용형태정보란 신용·체크카드의 사용 일수와 사용액, 할부 및 현금서비스 사용액 등 이용 패턴을 분석한 변수다. 사용 일수가 길고 사용액이 적정 수준이면서 큰 변동이 없으면 신용점수가 오를 수 있다. 반면 할부나 현금서비스는 사용 빈도가 잦거나 사용액이 크면 신용점수 하락 요인이 된다.

상환 이력은 KCB보다 나이스평가정보의 가중치가 더 높은 지표다. 일반 고객군으로 분류될 땐 가중치가 29.7%지만, 연체 기간 90일 이상인 장기연체자로 분류되는 순간부터 47.8%의 가중치를 부여한다. 연체는 10만원 이상 5영업일 이상 연체인 ‘단기연체’와 100만원 이상 90일 이상의 ‘장기연체’로 나뉜다. 단기연체부터 신용점수를 떨어뜨리는 지표로 쓰이며 단기연체액을 갚아도 3년간 이력이 보관된다. 다만 30일 미만 또는 30만원 미만의 일시적 소액연체 기록은 신용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 나이스평가정보는 “단기연체도 연체 기간이 길수록 신용점수 회복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연체는 가능한 한 빨리 상환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장기연체자가 되면 신용점수가 350점 이하로 떨어진다. 상환 이력의 가중치도 47.8%로 커지기 때문에 연체가 길어질수록, 금액이 클수록 신용점수의 하락폭은 일반인보다 더 크다. 장기연체액을 갚아도 변제일로부터 5년까지 신용점수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단 오래된 연체액부터 갚아서 장기연체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카드사 관계자는 “연체금을 일시 완납해도 신용점수가 즉시 상향 조정되지 않는다”며 “장기연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신용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상환 이력에는 대출이나 카드 결제 대금뿐 아니라 국세·지방세·관세·과태료 등 세금 체납 정보도 포함된다. 체납 정보가 등록되면 체납액을 모두 갚은 뒤에도 3년간 신용점수에 반영된다. 카드사 관계자는 “이사 등으로 대금청구서를 받지 못해 연체가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주소가 변경되면 관공서나 금융회사에 주소 정보를 꼭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연체자가 되면 부채를 갚아서 연체를 해소하는 방식 외에는 신용점수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나이스평가정보는 카드 이용 패턴을 담은 신용형태정보를 일반인에 대해선 가장 높은 가중치를 주지만, 장기연체자에 대해선 개인 신용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 신용불량자로 등재돼 모든 금융거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공과금 성실 납부 시 신용↑

부채 수준도 신용점수에서 가중치가 높은 지표다. 나이스평가정보는 업권·상품·금리별로 ‘고위험 대출’과 ‘고위험 외 대출’로 나눈다. 똑같은 500만원의 대출이라도 연 20%의 현금서비스인지, 연 5%의 은행 신용대출인지에 따라 개인 신용점수 변동폭에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부채에는 신용대출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과 채무보증도 포함된다. 대출을 갚을 때처럼 보증이 해소될 때도 신용점수가 오를 수 있다.

계좌 개설, 대출, 보증 등 신용거래를 시작한 지 오래될수록 신용점수 상승 요인이 된다. 주거래 금융사를 정해놓는 게 유리하다. 금융사는 보통 해당 금융사와 거래 기간이 길고 연체가 없는 고객에게 높은 신용점수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거래 실적이 없거나 현금거래만 하는 것보다 적정 수준의 대출이나 신용카드 사용은 신용점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카드를 재발급받거나 여러 카드사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도 점수에 영향은 없다. 해지도 마찬가지로 신용점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소득이나 비금융거래 성실납부 실적을 등록하면 일반인뿐 아니라 장기연체자도 신용점수를 올릴 수 있다.

국세청 소득금액증명원과 통신요금·아파트관리비·국민연금·건강보험 납부내역을 금융사 앱에 있는 ‘신용점수 올리기’ 항목을 통해 신용평가사에 제출하면 된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