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PE도 줄서는 '거액 쩐주' 패밀리오피스
사모펀드(PEF)들이 거액을 굴리는 패밀리오피스에 줄을 서고 있다. 고금리 환경에서 연기금, 공제회, 금융회사들이 유동성을 죄면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있는 패밀리오피스의 자본시장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분석이다. 라임·옵티머스 사기 사건 이후 기관 전용 PEF가 도입되면서 거액자산가 자금을 받지 못하는 데다 일반 기업한테서 투자받기도 까다로워진 영향이 크다.

○성담 등 알짜기업에 글로벌 PE도 ‘노크’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중소형 PEF 사이에선 투자를 본업으로 하는 알짜 기업들이 주요 출자자(LP)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성담이다. 펀드 조성 과정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 자금까지도 쏠 수 있는 유력 패밀리오피스로 알려지면서 자금조달이 시급한 PEF들이 앞다퉈 투자 제안을 하고 있다.

성담은 1953년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 염전 법인인 화성사가 모태다. 1971년 대한염업을 인수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경기 시흥 지역을 중심으로 한때 서해 염전의 3분의 1을 보유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1996년부터 염업을 접고 보유 염전을 개발하거나 인근 토지를 매입해 개발하는 부동산업으로 확장했다.

성담은 현재 사내에 투자사업부·임대사업부·골프사업부를 두고 대주주 일가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업무를 전담하는 패밀리오피스로 운영된다. 지난해엔 이마트 시화점을 폐점하고 해당 토지의 재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과거 서울 을지로 미래에셋센터원 빌딩 건립 과정에서도 지분 20%를 투자해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엔 폐염전 위에 솔트베이 골프클럽을 조성해 보유 중이다.

지주사격 회사인 ㈜성담의 지배구조는 정경한 부회장(29%), 정재문(28%)·정윤주(9%) 씨를 포함한 가족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가문의 패밀리오피스로 금융 투자 규모는 3000억원에 달한다. 안정성을 중시해 주로 부동산, 골프장 등 실물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부동산펀드엔 이미 2005년부터 투자를 시작했고, 2015년엔 블랙스톤의 부동산 블라인드펀드에 투자하기도 했다.

성담은 2021년 영입한 국민연금 출신 한동관 대체팀장을 중심으로 PEF 출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성담은 PEF 태동기였던 2011년부터 이미 PEF에만 1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시장 내 숨겨진 ‘쩐주’로 명성을 알렸다. 매년 100억원 남짓이던 PEF 출자액은 2021년 400억까지 늘었고 지난해 더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KKR 등 글로벌 운용사들도 펀딩을 위해 성담을 찾는 등 업계의 대표적 패밀리오피스로 알려졌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글로벌 PEF 블라인드펀드에 출자하면서 운용사들에 투자 및 경제 동향과 관련한 정보를 따로 보고받아 웬만한 기관 이상의 정보력을 보유한 곳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공제회·캐피털 돈줄 막히자 문전성시

창업자들이 인수합병(M&A) 매각 대금을 바탕으로 설립한 패밀리오피스도 많다. 조창걸 한샘 창업자는 한샘을 IMM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하고 패밀리오피스인 태재홀딩스를 설립했다. 약 1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초대형 패밀리오피스로 단숨에 부상했다.

2009년 유선방송 큐릭스를 티브로드에 3500억원에 매각한 원재연 가이저파트너스 회장은 2013년 신기술사업금융사(신기사)인 제니타스를 세워 3000억원대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씨디네트웍스를 창업해 2014년 매각한 고사무열 씨도 같은 해 패밀리오피스인 케이오인베스트먼트를 세웠다. 2017년 수학 학습 교재로 이름이 알려진 개념원리를 45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카메라모듈 기업인 코웰이홀딩스를 창업한 곽정환 회장과 한섬 창업자인 정재봉 씨도 회사를 매각한 대금을 바탕으로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오너들이 지인 등의 권유로 전문성 없는 분야에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을 본 경우도 있다. 북미 유전펀드에 투자했다 저유가로 큰 손실을 입은 에이티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오너의 결정에 따라 회사 존폐가 하루아침에 결정될 수 있다보니 IB업계에서도 우수 인력들은 커리어 단절을 우려해 패밀리오피스 합류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준호/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