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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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통신·항공·방송·신문 산업 등 33개 종목의 외국인 지분 취득 한도를 풀거나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경직적인 규제가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키고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정부는 외국인 취득 한도를 없앨 경우 산업 보호를 위한 보완책을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

17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는 1998년부터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 항공법 등 개별법을 통해 제한하고 있는 외국인 지분 한도의 적합성 검토에 나섰다. 정부는 조만간 범부처 민관 합동기구인 ‘경제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에 이를 안건으로 올리거나 별도 협의를 통해 33개 종목별로 외국인 취득 한도를 없애거나 상향할 필요성이 있는지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참여할 것”이라며 “해당 산업 보호를 위한 보완책도 함께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6개 통신사에 대해 외국인 지분 취득 한도를 49%로 제한하고 있다. 방송법은 SBS·KNN·티비씨는 0%, YTN 10%, CJ ENM·현대홈쇼핑·LG헬로비전 등 12개 종목은 49%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는 각각 자본시장법과 공기업민영화법에서 40%, 30%로 제한한다.

그동안 통신·방송업계는 외국인 지분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지분 제한 이슈는 단골 불만거리였다. 세계 최대 지수 산출업체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지난해 한국 증시를 선진지수 후보에 편입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외국인 투자 한도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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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방송업계와 외국인 투자자가 33개 종목의 취득 한도를 완화해달라는 요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그동안 큰 진척이 없었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새 정부 들어서다.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외국인의 지상파 방송사 투자 금지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 폐지, 외환시장 운영시간 연장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외국인 투자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현행 외국인 지분 제한의 문제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이동통신 3사와 지상파 방송사 등에 대한 외국인 투자 수요가 규제에 가로막히면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SK텔레콤(외국인 지분율 43.1%·16일 기준), KT(42.5%), LG유플러스(38.7%)의 외국인 지분율은 취득 한도 49%에 육박한 상태다. SBS, KNN, 티비씨는 외국인 투자가 전면 금지돼 있어 개인투자자와 국내 기관투자가만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규제에 막혀 있던 투자 수요가 살아나면 이들 종목의 저평가 해소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평가하는 시장 접근성 점수가 올라가고 선진지수에도 편입된다면 국내 증시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통신사와 지상파 방송사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의 외국인 지분율은 취득 한도에 크게 못 미치는 상태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의 외국인 취득 한도는 49.99%지만 지난 16일 기준 지분율은 15.0%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규제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도 관성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외국인 지분 제한을 풀 경우 이들 산업에 대한 외국계 자본 입김이 커질 수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규제를 풀기 위해선 개별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야당이 찬성할지도 미지수다.

이에 정부가 산업별로 취득 한도를 다르게 풀 가능성도 점쳐진다. 통신업과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취득 한도를 높이고 나머지 종목은 지분 제한을 전면 폐지하는 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범부처 기구에서 큰 방향성을 논의하겠지만 부처마다 생각이 모두 다를 수 있다”며 “사안별로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인 지분 제한을 풀더라도 산업 보호를 위한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이들 산업에 대해 정량적인 취득 한도를 제한하지 않는다. 대신 외국인이 방위·첨단 등 핵심 기업에 투자할 때 행정부 내부위원회인 대미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심의한다. 국가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분 취득을 무효화할 수 있다.

서형교/강진규/이승우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