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못 살겠다, 도장 찍어"…이혼하는 기업들, 왜?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촌 형님의 며느리가 내 딸입니다. 이런 제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2007년 11월 29일 서울 롯데호텔. 이준용 DL그룹(옛 대림그룹) 명예회장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이 명예회장의 막내딸은 김승연 회장 사촌 형인 김요섭 씨의 아들과 2004년 결혼했다. DL과 한화그룹은 사돈지간이다.

하지만 두 그룹은 50대 50으로 합작한 화학회사인 여천NCC 경영을 놓고 분란을 겪었고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한화 측에서 DL에 여천NCC 지분을 매각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분노한 이 명예회장은 간담회를 자청했다. 두 회사의 갈등은 봉합됐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여천NCC를 쪼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려아연과 포스코, 효성과 코오롱도 합작을 정리하고 있다. 영풍을 공동경영하는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도 계열 분리 조짐이 보이고 있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옛 대림산업 화학부문)은 50대 50 비율로 합작한 화학업체인 여천NCC의 분할하기 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보유한 여수의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합쳐 세운 합작사다. 나프타를 분해해 석유화학제품의 쌀로 통하는 기초 원료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 228만5000t으로 LG화학(330만t) 롯데케미칼(233만t)에 이어 업계 3위 석유화학업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여천NCC 합작을 놓고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2007년 인사권을 놓고 DL그룹 측 임직원과 한화 측 임직원들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여천NCC 인사권을 쥐고 있던 한화그룹 측에 불만을 품은 DL그룹 직원 60여명이 한화 측 여천NCC 공동대표 이신효 부사장을 항의 방문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것이다.

한 경제지는 당시 이 부사장이 "어느 한쪽이 지분을 정리하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DL이 보유지분을 넘긴다면, 한화가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DL이 당시 알짜회사인 여천NCC 지분을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림산업 시가총액이 1조원가량 빠졌다. DL그룹 측은 당시 “이 부사장 발언은 한화 쪽에서 교사나 공모를 한 것이 틀림없다”며 김승연 회장 등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양측은 겨우 갈등을 봉합했지만, 경영권과 투자를 놓고 양측의 ‘불협화음’이 이어졌다는 관측도 적잖았다.

대기업들의 합작 계약 청산 사례는 이어진다. 효성과 코오롱도 사실상 동업 관계를 청산했다. 두 회사는 국내 유일의 카프로락탐(나일론 원료) 생산업체인 카프로 경영에서 최근 손을 뗐다. 두 회사는 1, 2대 주주로 카프로를 공동 경영해왔다. 두 회사는 1996년 카프로를 놓고 소송전도 벌였다. 당시 코오롱은 효성이 차명계좌로 카프로 지분을 확보했다고 검찰에 고발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이 건으로 오랜기간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갈등이 봉합된 것은 물론 카프로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코오롱그룹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최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카프로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참가’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카프로 지분 9.5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앞서 카프로 최대 주주로 지분 12.75%를 보유한 효성티앤씨도 지난해 11월 보유 목적을 경영참가에서 단순 투자로 바꿨다. 보유 목적을 경영참가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하면 이들 기업은 카프로 경영에 참여할 길이 막힌다.

두 기업이 카프로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은 최근 카프로의 기업가치 하락과 맞물린다. 중국산 제품에 밀린 카프로는 지난해 122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고려아연과 포스코그룹이 합작해 세운 코리아니켈도 이달 주주총회를 열고 청산 절차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코리아니켈은 1987년 5월 고려아연과 포스코그룹, 발레가 출자해 세운 회사다. 1988년 온산에 니켈 전기로 공장을 지었다. 이 회사는 2차전지용 니켈이 아닌 스테인리스용 니켈을 생산한다. 두 회사는 2차전지용 니켈 사업을 강화하고 독자적 공급망을 구성하기 위해 청산을 결정했다.

합작을 정리하는 것은 그만큼 기업들의 사업 방향과 전략이 다른 결과다. 필요할 때 뭉쳤지만 결국은 시점이 지나면 각자 기업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른 만큼 합작이 영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