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하순부터 한 달 간격으로 중국과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추진 중이다. 전례 없는 경영 위기를 맞아 삼성전자의 최대 시장을 점검하는 동시에 현지 정·재계 인사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미국의 반도체 패권 선언과 대(對)중국 규제로 현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이 회장이 출장을 통해 위기 돌파 방안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수뇌부가 공들이는 CDF

'반도체 격전' 속으로…이재용 中·美 간다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달 25~27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발전포럼(CDF: China Development Forum) 2023’에 참석하는 것이 유력하다. CDF는 중국 정부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주최한 행사로, 중국 경제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 회장의 CDF 참석은 올해가 처음이 될 전망이다.

CDF엔 중국 정·재계 최고위 인사가 총출동한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모인다. 올해 행사엔 이 회장뿐만 아니라 팀 쿡 애플 CEO,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 등도 참석한다. 중국에 정통한 산업계 한 관계자는 “CDF는 중국 수뇌부가 매년 상당히 공들이는 행사”라고 말했다.

중국 신임 총리와 회동 전망

이 회장이 CDF 참석을 추진하는 건 중국 정·관계 네트워크를 넓힐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CDF에는 매년 중국 국무원 총리가 나와 글로벌 기업 CEO들을 맞았다. 미·중 무역갈등이 한창이던 2018년 포럼에서도 리커창 총리가 외국계 기업 CEO를 만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중국 수출 규제에 따른 피해 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의 관례에 비춰 볼 때 올해 CDF 행사엔 리창 신임 총리가 기업 CEO들과 면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도 중국 당국과의 소통이 절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2012년 이후 30조원 넘게 투자한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로 삼성전자의 의도와 달리 중국 투자를 크게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중국 시장을 점검할 필요성도 크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중국에서만 35조6257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최근 중국 매출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삼성전자로선 포기할 수 없는 거대 시장이다. 이 회장은 CDF 포럼 참석을 통해 삼성전자 상황을 전달하고 위기 대응책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이 회장은 ‘중국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엔 참석하지 않는다.

美 테일러 파운드리공장서 기념식

중국 방문 한 달 뒤인 4월 하순엔 이 회장의 미국 출장이 유력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대통령실에서 공식 요청이 없었다”는 게 삼성전자 입장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미 국빈 방문에 이 회장이 동행할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 정부와 삼성전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현재 삼성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의 반대급부로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투자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삼성전자는 정부와 함께 ‘메모리반도체는 설비투자 허용’ 같은 예외조항을 얻어내야 한다.

방미 기간에 테일러 파운드리 신공장에선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이 회장이 함께 기념행사를 열 가능성도 크다. 두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념행사가 성사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주요 고객사인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엔 긍정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정수 기자/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