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회식을 싫어한다고들 하죠? 무조건 싫다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이익이 되는 방향대로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사회·경제적 요인이 큰데요. 과거에는 취업해서 '소득'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약자' 위치에 있어 조직 요구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조직관리 전문가'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그룹 대표는 최근 <한경닷컴>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최근 많은 기업들이 부서 간 갈등을 겪고 있다"며 대표적 사례로 회식 문화를 꼽았다. 구 대표는 "과거보다 경제적 선택지가 많아진 상황에서 회식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며 "회식 문화를 싫어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똑똑해진 MZ 직원들…이제 리더들이 변해야 한다"

구 대표는 세계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욕구가 커졌다고 짚었다. 공교육을 포함해 유튜브, 팟캐스트, 언론 기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습득, 전반적인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종합적 판단력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위에서 결정 내리면 밑에서 실행하는 탑다운(top-down) 식 의사결정을 해왔으나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시대에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즉각적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며 "이제는 리더들이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퍼실리테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용이하게 하다'로,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시너지가 생기도록 도와주는 행위를 뜻한다.

쿠퍼실리테이션그룹은 이를 위해 2012년 설립된 조직개발컨설팅 전문기업이다. 과거 행정안전부 공무원이었던 구 대표는 부처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회의에서 실질적 '토론'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공직 사회가 참 회의를 못했다. 정해진 대로 발언하고 만들어진 회의자료를 통과시키는 식이라서 '거버넌스(governance)'란 개념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라며 "그러다가 퍼실리테이션이란 개념을 알게 됐고, 이를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장·차관이 나서지 않는 이상 내부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외부에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게 더 빠르겠다고 판단해 나와서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구 대표는 창업에 앞서 영국에서 퍼실리테이션 관련 석사 학위를 두 개나 받았다.

"스타트업의 경우 20명 미만일 때는 소통이 잘되다가 직원이 50명 이상으로 늘어나면 대부분 내부 소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리더들은 시스템을 만들려 하는데 구성원들은 다양한 요구를 하기 시작하거든요. 일부는 마찰로 퇴사하기도 하죠. 리더는 10~20년 사업 비전이 있는 데 반해, 직원들은 당장의 처우 등 현실적 조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여서 회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비전 내재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아요. 갈등은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이런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고, 때로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쿠퍼실리테이션그룹은 2015년 국제퍼실리테이터협회(IAF)가 주관하는 퍼실리테이션 성과상(FIA)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 10년 간 구 대표가 직접 개발한 퍼실리테이션 종합교육을 수료한 수강생은 4000여명에 달한다. 연평균 20기 규모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꼰대-MZ 갈등 역사적 요인 존재…대립은 최선의 방법 아냐"

구 대표는 과거 천안에서 지역 상인과 노점상 간 갈등을 풀어냈던 사례를 거론하며 "지역 상인들은 노점을 없애고 싶어한 반면 노점 측에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주장으로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는데 해결 원리는 간단했다. 먼저 양쪽 주장을 충분히 듣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것"이라며 "무조건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로 대화를 하면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대립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그러면서 "퍼실리테이션의 역할은 대립하는 양측에게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바로 이 지점에서 컨설팅과는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쿠퍼실리테이션그룹의 성공 사례로는 △K자동차·S전자에서 내부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고 이들과 함께 사일로(silo·부서 이기주의) 문제해결, 제도개선 등을 수행한 사례 △H자동차에서 시장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직구조를 참여와 토론으로 새롭게 수립한 사례 △ B식품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구성원의 참여로 신제품 콘셉트를 수립해 제품 개발로 이어진 사례 등을 들었다.

구 대표는 "최근 협력사들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기업에서 퍼실리테이션 의뢰가 들어온 적이 었다. 대기업의 경우 협력사와의 '갑을관계' 문화가 어느정도 익숙한 면이 있지만 요즘 현장에선 이런 문화가 점점 안 먹히고 있다"며 "어떤 사정이 있는지, 해볼 수 있는 최선 및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는 '협력적 무드'의 대화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구사회가 비교적 퍼실리테이션이 잘 이뤄지는 데는 근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시민혁명이 영향을 끼쳤다고 풀이한 뒤 "반면 한국은 왕조와 일제강점기, 독재 등을 거치며 강압이 일상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식의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소위 꼰대-MZ 간 세대갈등으로 드러나게 된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 450만 퍼실리테이터 육성이 꿈…'행복한 세상' 도울 것"

구 대표가 이끄는 퍼실리테이션그룹은 자체 연구·개발한 반영조직 진단 모델이 있다. 이를 통해 총 반영조직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 구 대표는 "조직이 살아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반영'이다. '누구의 생각도 전적으로 옳지 않다'라는 전제조건 하에 구성원 목소리가 잘 반영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며 "각자의 목소리를 검증해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잘 이뤄지느냐에 따라 조직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갈등은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항상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퍼실리테이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인재 개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했다. 대학원에 훌륭한 인적자원개발(HRD) 과정이 많음에도 대부분 개인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조직개발 프로그램은 부족한 실정. 구 대표는 "조직개발 역량은 현장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데 교육기관은 연구중심"이라며 "회사에서 대학원 과정과 유사한 1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대학 학부나 대학원 과정도 설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 대표. 사진=변성현 기자
《반영조직》《민주적결정방법론》《애자일조직》 등의 책을 쓴 그는 오는 5월 그간 쌓은 경험과 방법론을 집대성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이니셔티브 200기'를 기념해 특별 행사를 마련했다. 이니셔티브 200기 행사에선 세계적인 퍼실리테이션 강사 특별 초청 강의와 그간 경험적 사례 등을 공유하는 시간 등이 진행될 계획이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퍼실리테이션 개념이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성공적 사례를 만들어나가면서 관심갖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200기까지 교육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퍼실리테이션을 알고 이를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구 대표는 "최근의 저출산·청년실업 등 문제의 경우 어느 하나만의 부처에 속한 이슈가 없고, 여러 부처가 협력해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관계자들이 정말 머리를 맞대고 협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내 450만명의 퍼실리테이터를 키워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포부"라고 덧붙였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