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이 HD현대로 이름을 바꿨죠. HD는 누가 봐도 현대의 영문 약자인데. 그럼 현대, 현대 아닌가요? 어쨌든, 회사 측은 휴먼 다이내믹스, 휴먼 드림스라고 의미를 부여 했습니다.
조선사인줄 알았는데...HD현대의 정체는 '이것' [안재광의 대기만성's]
현대란 이름은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이미 쓰고 있어요. 현대차그룹이 과거 증권사에 '현대' 이름 붙이려 하자 현대그룹이 못 하게 막은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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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증권이 이미 있었거든요. 현대그룹에서 하는. 그래서 HMC투자증권으로 했다가, 현대증권 매각된 뒤 비로소 지금의 현대차증권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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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는 로고도 교체했는데. 옛날 현대 삼각형 로고를 이런 식으로 비슷한 듯, 다른 듯 조금 변형했습니다. 현대 삼각형 로고 쓰는 곳은 이제 현대그룹밖에 없네요. 현대자동차, 현대백화점 등 다른 범현대가는 로고 이미 다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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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은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1972년 세운 회사인데. 50년 만에 완전히 새 출발 했습니다. 마침 주력인 조선업도 살아나고 있고. 분위기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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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주영 회장의 손자, 정기선 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는데요. 정기선 사장의 부친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인데, 정치하느라 30년 가까이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겼습니다. 30년 만에 오너 리더십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번 주제는 부활의 뱃고동 HD현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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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창업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한데요.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 짓기도 전에 배 주문을 받아내고, 그 주문서 들고 가 해외 은행서 돈 빌려서 조선소를 지었습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하죠. 원래는 돈 먼저 빌리고, 조선소 짓고, 배 주문받아야 순서가 맞아요. 짜장면 주문 100그릇 먼저 받고, 그 영수증 들고 은행에 가서 돈 벌리고, 그걸로 중국집 차린 거와 비슷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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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짜장면, 아니 배는 잘 만들어서 줬다고 합니다. 정주영 회장 사업 방식이 늘 그랬다고 해요. 우선 하고 보는. 이걸 못 믿는 외국인에게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이걸 500년 전에 만들었던 민족이라. 하고 설득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있어요. 그렇게 시작한 조선업이 10여년 만에 세계 1등이 됐고, 지금까지 내내 1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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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은 평생 큰 자부심이었던 조선업을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 이사장에게 물려줬어요. 정몽준 이사장 역시 정주영 회장의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초등학교, 당시엔 소학교로 불렸죠. 소학교 밖에 못 나와서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정몽준 회장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거든요. 아들이 여덟명이나 있었는데 정몽준 이사장이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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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이사장은 그런데, 정치에 뜻이 있어서 매우 이른 나이에 경영에서 손을 뗍니다. 1988년이었어요. 30대 중반이었는데요.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이 됐습니다. 이후 무려 7선 의원을 지냅니다. 또 한때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이 되기도 했었죠. 대한축구협회장과 국제축구연맹, FIFA 부회장을 맡아 2002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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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그럼 회사를 누가 키웠느냐. 전문 경영인들이 했어요. 정몽준 이사장이 최대주주고 실질적인 총수이긴 했지만, 일상적인 업무는 전문 경영자에게 다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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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사장도 이땐 너무 어려서 학생이었고.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은 것은 2013년부터입니다. 지금도 HD현대의 수장은 전문 경영인인 권오갑 회장이에요. 정기선 사장이 언제가 회장 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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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가 사명에서 중공업을 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조선이 주력이긴 한데 조선 회사라고 하기엔 사업이 너무 많아요. 사실 매출만 보면 정유 회사가 더 잘 어울립니다. 절반 이상이 정유거든요. 또 두산에서 인프라코어까지 인수해서 포클레인, 휠로더 같은 건설 기계 분야도 엄청나게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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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더구나 작년까지 정말 안 좋았어요. 중국이 갑자기 치고 올라오니까 피 튀기는 레드오션이 됐거든요. 심지어 한국 회사들끼리 경쟁도 심해졌어요. 일감이 없어서 배 만드는 공장인 도크가 노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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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온 게 출혈 경쟁이에요. 적자 나도 배 만들어 주겠다는. 배 만드는 데 1000억원이 든다 치면 700억, 800억원에 만들어 줬습니다. 놀리는 것보단 이게 낫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싸게 줘도 선주가 안 찾아간 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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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탓에 HD현대그룹 안에서 조선 사업 총괄하는 중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이 2021년 1조원 이상 마이너스가 납니다. 작년에도 적자가 이어져서 3000억원 이상 손실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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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만 그런 건 아니고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적자가 더 했습니다. 이 탓에 대우조선행양은 망해서 한화에 넘어갔고, 삼성은 조선 사업을 정리 하느니 마니 하다가 우선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기간 HD현대가 휘청휘청했을 것 같죠. 또 그러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룹 전체적으로 보면 실적이 좋았어요. 지난해 매출이 사상 처음 60조원을 넘겼고, 영업이익은 세 배 넘게 늘어서 3조3000억원이나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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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 사업을 하는 현대오일뱅크 덕분인데요. 작년에 러시아가 우크라나이를 침공한 뒤 유가가 뛰면서 현대오일뱅크가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매출이 35조원. HD현대그룹 매출의 절반을 넘었고. 이익은 2조8000억원. 그룹 전체의 80%를 책임졌습니다. 현대오일뱅크 덕분에 먹고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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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유에 더해서 산업 기계 분야도 갖고 있죠. 원래 현대건설기계란 계열사가 있었는데, 여기에 두산인프라코어까지 더해져서 매출, 이익이 확 커졌습니다. 이런 건설기계 사업은 현대제뉴인이란 중간지주사가 거느리고 있죠. 현대제뉴인 매출이 작년에 8조5000억원이나 됐고, 영입이익은 4600억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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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물 세트 같은 주식을 투자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죠. 더구나 지분만 들고 있는 껍데기 지주사는 더 안 좋아하고요. 주가수익비율(PER)이 3배 수준이니까, 코스피 평균의 10배 대비 크게 낮은데. 이런 이유입니다. 대신 사업 하나가 잘 안되면 하나가 잘 되고, 서로 보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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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가 지난해 HD현대를 끌고 갔다면, 올해는 조선이 주역이 될 것입니다. 과거에 저가 수주를 받아놓은 배들이 거의 다 나가서 그런데요. 배는 수주를 받은 뒤에 실제 공사에 들어가는 시간이 꽤 길어요. 2~3년씩 걸립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주문받아놓은 저가 물량은 도크에 지금 거의 없습니다. 대신 비싸게 주문받은 물량이 들어오고 있어요.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유조선 같은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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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들의 공사를 진행하면 매출, 이익이 확 좋아질 겁니다. 증권사들이 실제로 그렇게 보죠.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을 8000억원가량으로 예상합니다. 잘하면 1조원도 넘길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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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데요. 이들 자회사는 작년 말 기준 2~3년 치 일감을 확보해놓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회사들은 세계 조선소 순위로 각각 2등, 4등, 8등인데. 다 합치면 압도적인 1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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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이 많아서 요즘은 주문도 가려서 받고 있습니다. 돈 안 되는 중소형 화물선 같은 건 잘 안 하고. LNG 운반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혹은 메탄올 추진선 같은 친환경 선박에 집중하고 있어요. 정기선 사장은 CES 2023에 참석해서 "적자 수주 관행은 앞으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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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선박에서 HD현대는 강점을 갖고 있는데요.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빠르게 강화되고 있어서, 선주들이 옛날처럼 벙커C유로 가는 배를 쓰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벙커C유는 저렴한 기름인데, 오염 물질이 엄청나게 나옵니다. 대안으로 LNG나, 공업용 알코올인 메탄올을 연료로 쓰는 배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HD현대는 얼마 전 메탄올로 가는 컨테이너선 7척을 한꺼번에 수주하기도 했습니다. 계약 금액이 1조원을 넘습니다. 메탄올 추진선을 HD현대는 지금까지 54척 수주했는데, 세계 최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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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는 선박뿐 아니라 엔진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름이 '힘센 엔진'이에요. 요즘은 수소와 LNG를 함께 연료로 쓰는 엔진을 개발 중인데, 2년 뒤면 실제 배에 달 수 있다고 합니다. 수소로 가는 배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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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조선업이 좋아지긴 하는데요. 아직 어려움도 많습니다. 우선 일할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과거 안 좋은 시절에 사람들이 조선소를 많이 떠났는데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돈은 많이 안 주는데 위험하고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작년 3분기 국내 조선소 전체로 1만명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당장 급한 대로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서 채운다고 하는데. 인력난 탓에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있어서 이건 회사에 부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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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배 만들 때 쓰는 두꺼운 철판, 이걸 후판이라고 하는데. 후판 가격이 많이 오른 것도 부담이죠.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만 해도 톤당 60만원쯤 했는데, 작년 한때 120만원까지 갔습니다. 지금은 조금 떨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100만원은 넘어요.후판은 조선 원가의 20%쯤 차지하는데요. 원가가 올라가면 당연히 마진이 줄 여지가 있습니다. 사실 인건비 상승, 후판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영향도 큰데요. 올해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작년 보다는 덜 하니까 상황이 나아질 수 있습니다. 또 새로 수주한 배는 이런 원가 인상 요인을 반영하기 때문에 나중에 물가가 낮아지면 마진은 반대로 높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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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가 5년여 만에 가동을 시작해 윤석열 대통령까지 찾아갔는데요. 조선업이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고, 세계 1위 경쟁력을 가진 만큼 잘 되길 바라는 맘이었을 겁니다. HD현대는 경기도 성남에 신사옥을 짓고 계열사들을 한데 입주시켰어요. 사옥이 첨단 IT 회사나 게임사 못지않게 엄청 좋다고 합니다.
조선사인줄 알았는데...HD현대의 정체는 '이것' [안재광의 대기만성's]
회사 이름도, 로고도, 사옥도 예전의 중공업 시절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새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리더십, 정기선 사장은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새로운 총수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요. 정기선 사장이 보여줄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새로운 50년 준비하는 HD현대, 눈여겨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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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