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포도 품종으로 뜬 샤인머스캣이 출하량 급증의 여파로 품질 논란에 휩싸여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산지에서 ‘대목’이었던 작년 추석을 앞두고 출하를 지나치게 서두른 바람에 불량 샤인머스캣이 유통된 게 화근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샤인머스캣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유통업계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 품질관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수년간 이 품종을 키우는 농가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만큼 품질 제고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위기의 샤인머스캣

샤인머스캣 조기출하 '부메랑', 맛·당도 뚝…"上品 어디 없소"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샤인머스캣 산지의 농가 중 상당수가 도산 위기에 몰렸다. 출하량은 크게 늘었는데, 품질 저하에 따른 소비자 우려가 확산해 수요는 감소했기 때문이다. 경북 영천에서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는 김모씨(49)는 “올 들어 매출이 지난해 비슷한 시점과 비교해 반 토막 났다”며 “작년 추석을 전후로 샤인머스캣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안 좋아진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주요 대형마트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달부터 해발 고도가 1000m 넘는 산지에서 고품질 샤인머스캣 물량을 확보해 판매하고 있다. 홈플러스도 샤인머스캣 농장 20여 곳을 엄선해 고당도 상품 확보에 전력투구 중이다.

주요 산지가 속한 지자체 차원의 대책도 나오고 있다. 경북 영천시와 김천시 등 산지에서는 농가가 덜 익은 샤인머스캣을 조기 출하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

불량 샤인머스캣이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된 것은 지난해 추석 전후다. 일부 농가가 대목을 노려 덜 익어 맛과 당도가 떨어지는 샤인머스캣을 시중에 풀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샤인머스캣을 키우는 농가가 급증하면서 기술력이 떨어지는 농가에서 재배한 상품이 많이 출하되고 있다”며 “품질이 나쁜 포도를 먹어본 소비자들이 샤인머스캣에 등을 돌리는 일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공급 과잉 만성화 조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샤인머스캣 상품(上品) 가격은 2㎏당 평균 2만3855원으로, 작년(3만7611원)에 비해 36.5% 하락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평균 3만7000~3만80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샤인머스캣 공급은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1만2795㏊였던 포도 재배 면적은 2021년 1만3388㏊로 넓어졌다. 이 중 26.7%인 3579㏊가 샤인머스캣 재배지다.

공급은 늘었는데, 소비는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농가에서 작년 9~11월 재배해 저장한 샤인머스캣이 지난달 설 연휴를 맞아 대거 출하됐다. 경기 둔화로 판매량이 저조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샤인머스캣 재배 농가의 어려움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수 특성상 한 번 재배하기 시작하면 묘목을 베어내지 않는 한 재배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민수 록야 대표는 “블루베리, 아로니아도 열풍이 지나자 가격이 폭락했다”며 “전체적으로 시세가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