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학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전당에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헌액됐다. 신 창업주의 장남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 최고경영진이 22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헌액식에 참석해 상패를 수여받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조대규 부사장, 편정범 사장, 신 회장, 류삼걸 부사장, 박진호 부사장. 교보생명 제공
한국경영학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전당에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헌액됐다. 신 창업주의 장남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 최고경영진이 22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헌액식에 참석해 상패를 수여받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조대규 부사장, 편정범 사장, 신 회장, 류삼걸 부사장, 박진호 부사장. 교보생명 제공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한국경영학회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기업가 부문에 헌액됐다.

한국경영학회는 22일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열고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은 한국경영학회가 2016년부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 및 기업인을 선정해 그 업적을 기리는 행사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가들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바 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헌액


한국경영학회는 "신 창업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서 탁월한 경영 성과를 올렸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후대의 많은 기업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헌액식에는 신 창업주의 장남이자 현재 교보생명을 이끌고 있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등이 참석했다.

생명보험 외길 인생을 걸어온 신 창업주는 한국 보험산업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해 인재 양성을 통한 경제발전의 주춧돌을 놓았고, '국민책방' 교보문고를 설립해 국민의 교육과 의식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보험 산업과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198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보험협회(IIS)가 주최하는 ‘세계보험대상’을 받았으며 1996년 기업인 최초의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같은 해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도 수상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1983년 세계보험협회가 주최하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모습. 교보생명 제공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1983년 세계보험협회가 주최하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모습. 교보생명 제공
신창재 회장은 "선친을 대신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교육과 보험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 기업가로 영원히 남고 싶다'는 선친의 소신은 지금도 교보생명이 더 좋은 기업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 창업주는 1917년 전남 영암의 한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큰 꿈을 펼치라는 뜻에서 대산(大山)으로 지었다. 어린 시절 병마와 싸우느라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천일독서(千日讀書)’로 배움의 열망을 채워나갔다. 뒤늦게 시작한 독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했다.

스무 살이 된 청년 대산은 중국으로 건너가 다롄, 베이징 등지에서 사업을 펼쳤다. 이 시기 이육사 등 애국지사와 교류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민족 기업의 꿈을 키웠다..

해방 후 귀국한 대산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 민족의 미래다’라는 신념으로 생명보험의 원리에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1958년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창립 이념은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으로 결정했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고, 보험을 통해 자립 경제의 바탕이 될 민족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창립과 동시에 선보인 교육보험은 세계 어디에도 없던 독창적인 상품으로, 국민들에게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30년간 300만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았으며 이들은 1960년 이후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1987년 세계보험협회가 주최한 서울총회에 참석해 협회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교보생명 제공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1987년 세계보험협회가 주최한 서울총회에 참석해 협회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교보생명 제공
교보생명은 교육보험의 선풍적인 인기로 1967년 창립 9년만에 업계 정상에 오르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후에도 대산은 국내 최초로 암보험과 종업원 퇴직적립보험 등을 개발해 계약자배당금 시대를 여는 등 보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를 통해 한국 보험산업이 세계 8위권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대산의 ‘국민 교육’ 철학은 국내 최대의 서점 교보문고로 이어졌다. 광화문 네거리, 금싸라기 땅에 돈도 안 되는 서점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돈이 되지 않는다"며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대산은 "사통발달 대한민국 제일의 목에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1981년 6월 광화문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다. 서점 단일 면적, 세계 최대 규모로 서가 길이만 무려 24.7km에 달했다. 교보문고는 개장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명소가 됐다. 현재 회원수 1800만 명, 연간 방문객 50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교보문고 입구의 표지석에 새겨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는 대산의 신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보문고는 대산의 소망대로 국민 누구나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지식과 문화의 광장이자 평생 교육의 장이 됐다. 또 독서문화 저변 확대에 공헌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평가받는다.

대산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서도 ‘국민교육’의 신념을 놓지 않았다. 대산농촌재단, 대산문화재단, 교보교육재단 등 3개 사회공익재단을 설립해 선진 농업연구, 교육과 문학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을 펼치며 소외 지역에 교육과 지식의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서울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광화문글판’도 대산의 아이디어였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부터 33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