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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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 세단을 모는 김모 씨(33)는 최근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양옆으로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밀착 주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없이 주차장을 돌고 돌아 다른 곳에 겨우 주차했다. 김 씨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울 때 옆 차와 문 사이 공간이 너무 좁아 아이가 머리를 부딪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소연했다.

주차구획 늘렸는데도...점점 커지는 차

김 씨처럼 주차 고민을 겪는 사례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주차장 규격은 변화가 없는데 '큰 차'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려 갈수록 차체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행 주차 단위 구획은 국토교통부의 '주차장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2019년 3월부터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차량 제원 증가(13㎝)와 '문 콕'(자동차 문을 열 때 옆에 주차된 차량 문에 흠집을 내거나 파손하는 것) 사고 방지를 위해 열림 여유 폭(30도 기준)을 고려해 일반형 주차장 길이는 5m로 동일하되, 폭의 최소 기준을 기존 2.3m에서 2.5m로 늘리고, 확장형 주차장도 기존 2.5m(너비)x5.1m(길이)에서 2.6m(너비)x5.2m(길이)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같은 개선책을 뛰어넘는 자동차 대형화 트렌드가 주차 고민을 낳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세단인 현대차 그랜저의 경우 신형 모델의 전장(길이)은 그랜저 사상 최초로 5m를 넘긴 5035㎜로 커졌다. 카니발 전장(5155㎜)에 육박하는 길이다.

신형 그랜저를 일반형 주차장(2.5mx5m)에 주차한다고 가정해보자. 길이는 꽉 차는 수준이다. 폭은 620㎜가량 남지만, 정부가 제시했던 최대 문 열림 폭이 600㎜임을 고려하면 그랜저가 조수석 쪽 주차 라인에 딱 붙여 주차해야만 운전자가 겨우 문을 열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확장형 주차장의 경우 일반형보다 폭이나 길이 측면에서 여유가 있긴 하지만, 신축 건물에만 전체 주차장의 30%가량 설치되므로 일상 생활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세단 등의 차체도 커지고 있지만, 차량 자체가 커 공간 활용도가 좋은 SUV 선호 현상도 주차 문제에 한몫 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포터·봉고 제외) 10개 중 절반이 SUV였다. 쏘렌토(4810㎜·1900㎜) 카니발(5155㎜·1995㎜) 스포티지(4660㎜·1865㎜) 팰리세이드(4995㎜·1975㎜) 등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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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힘들다"...차주들 '원격 주차 옵션' 선호

때문에 신차를 구매할 때 주차 보조 시스템을 필수 옵션으로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차량 후방 영상 화면에 차량의 예상 주차 가이드라인을 표시하는 서라운드뷰모니터(SVM)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원격으로 주차를 제어하는 시스템이 '큰 차'를 모는 차주들 사이에서 꼭 필요한 옵션으로 꼽힌다. 스마트키로 차량을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 이 기능을 활용하면 차를 반만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원격으로 주차를 마칠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더 뉴 팰리세이드'에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시스템을 팰리세이드 모델로는 처음 도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 공간을 넉넉히 활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 때문에 대형차가 주목받으면서 주차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땅은 좁고 인구가 많아 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주차 구획을 마냥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보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