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규제혁신 TF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규제혁신 TF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개인이 해외로 외환을 송금할 때 정부가 증빙서류 제출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송금액 한도가 5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확대된다. 외환 거래 유형에 따라 예외의 예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전신고 및 사후보고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외화유출은 악(惡)'이라는 인식 아래 운영돼온 기존 외환제도를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효율적이고 개방적으로 바꾸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기획재정부는 10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4차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환제도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추 부총리는 "외환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선진적으로 개선하고 외환분야 금융산업을 혁신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우선 올 상반기 외국환거래규정을 개정해 무증빙 해외송금 및 자본거래의 사전신고 면제 기준을 현재 5만달러 이하에서 10만달러 이하로 완화하기로 했다. 현행 제도는 개인이나 연간 수출입 실적이 3000만달러 이하인 기업이 해외로 한 번에 5000달러 이상을 송금하거나 연간 누계 송금액이 5만달러를 초과할 경우 외국환은행에 정확한 송금 목적이 담긴 증빙서류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해외취업에 성공한 청년이 출국하기 전 해외에서의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증빙서류를 구비하지 못해 송금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증빙 송금한도 규정이 완화되면서 이 같은 피해는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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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또 해외와의 자본거래를 위한 사전신고 의무도 완화하기로 했다. 우선 올 상반기 사전신고가 의무화된 111가지의 자본거래 유형 가운데 46개(41%)에 대해 사전신고 의무를 폐지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법률을 고쳐 외환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은행에 대한 사전신고 제도를 대부분 폐지하고 사후보고 체계로 전환할 방침이다.

기업의 외화조달과 해외투자 과정에서 적용되는 외환 규제도 완화된다. 정부는 우선 기업이 대규모 외화를 차입할 때 반드시 기재부나 한국은행에 신고하도록 한 현행 규정의 신고 기준을 3000만달러 초과에서 5000만달러 초과로 완화하기로 했다.

현지금융 별도규율 제도는 완전히 폐지된다. 현지금융 별도규율 제도란 한국 기업이나 기업의 해외지점·해외법인이 외국에서의 영업활동을 위해 외국에서 외화자금을 차입하거나 지급보증을 받은 경우 해당 금액을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197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던 시절 해외에서 발생한 채무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기 위해 만든 제도로, 기업의 해외진출이 확대된 오늘날엔 기업의 외화운용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기업이 해외직접투자에 나설 때 적용되는 복잡한 수시보고 절차도 단순화하기로 했다. 현행 외국환거래규정은 해외직접투자에 나선 기업이 현지법인의 지분율 변동 사항이 생기거나 투자업종이 변경되는 등 국경간 자본이동이 없는 거래를 할 때에도 정부나 은행에 사후보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송금 직후, 증권취득을 한 후, 청산시점 등에도 보고 의무를 부과한다. 정부는 이 같은 수시보고 제도를 연 1회 정기보고로 통합하기로 했다. 사전신고가 불필요한 해외직접투자 금액 기준도 1만달러 이하에서 5만달러 이하로 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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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제도 변경은 시행령·규정 개정으로 가능해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이에 정부는 올 상반기 중 시행령·규정을 개정하고 입법예고 등 절차를 거쳐 이르면 올 상반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재부는 '외자유출은 억제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철학 자체를 폐기하고 외환규제 체계를 '원칙적자유·예외적규제' 방식의 네거티브 규율로 전환하기 위해선 법률 개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2026년 시행을 목표로 내년 중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자본거래, 송·수금 등 대부분의 거래유형에서 사전신고 제도를 사후보고 체계로 바꿀 예정이다.

법률 개정시 현행 형벌 조항도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현재는 단순한 절차적 실수라도 10억원 이상의 자본거래에 대해 사전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데, 이 같은 형사처벌 적용 기준을 2배로 높이는 등 절차위반 형벌 규정들을 과태료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너무나 규정이 복잡해 개인이나 법인이 외환을 거래할 때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구조"라며 "개미지옥과 같은 현행 외국환 관련 규정을 네거티브 규율로 바꾸면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외국환거래법 시행령 및 관련 규정을 개정해 대형 증권사가 고객을 대상으로 환전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현행 법령은 은행사와 자기자본이 4조원 이상이면서 금융위원회로부터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4개 대형 증권사만 기업을 상대로 환전 업무를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를 완화해 외환전산망 직접 연결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확충한 9개 증권사(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도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일반환전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증권사가 외환 스왑시장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 증권사의 외화조달 및 유동성 공급 역량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