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화점 명품 담당 바이어는 지난해부터 이전에는 마주칠 일이 없던 사람들과 미팅하는 일이 잦아졌다. 유럽 주요국 대사관 관계자다. 이 바이어는 “해외 브랜드들이 주한 대사관과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지 귀찮을 정도로 문의한다”고 했다.
< 아무리 추워도 신상은 못 참지… >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이 미국, 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오를 정도로 시장이 급성장하자 글로벌 명품업계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위상도 덩달아 뛰고 있다. 지난해 서울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소비자들이 건물 바깥까지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 /김범준 기자 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이 글로벌 명품업계의 명실상부한 ‘큰손’으로 떠오른 실상을 보여주는 일단이다. 럭셔리산업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한국은 세계 명품 시장의 별”(이탈리아 전국지 ‘일 솔레 24 오레’)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9일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명품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약 17조8600억원)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세계 7위 규모다.
1인당 소비는 세계 최고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0만4000원)로 미국(280달러)과 중국(55달러)을 제쳤다.
이에 따라 명품으로 분류되는 해외 주요 브랜드는 급을 가리지 않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2021년 이후 한국 직진출을 선언한 명품 브랜드는 총 9개다. 메종마르지엘라, 질샌더 등을 보유한 OTB그룹은 한국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톰브라운 역시 삼성물산과의 10년 계약을 종료하고 한국에 톰브라운코리아를 세울 예정이다. 시계 브랜드로는 오데마르피게가 지난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최고경영자(CEO)를 뽑았다.
최근 명품 판매로 큰 재미를 본 국내 백화점과 면세점은 명품 부문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서울 소공동 옛 제일은행 본점 매장을 명품 부티크로 꾸미기 위해 샤넬, 카르티에 브랜드 등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명품시장이 꾸준히 성장함에 따라 해외 브랜드의 한국 투자도 계속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에만 21조 쓴 '명품 사랑'에…"한국서 직접 팔자" 앞다퉈 진출 한류스타 내세운 홍보효과 커…18개사 앰버서더로 한국인 선택
코로나19 창궐 후 이어진 국내에 부는 명품 열풍을 관련 업계에선 ‘세 번째 물결’로 지칭한다. 1990년 수입 자유화 이후 ‘3대 명품’으로 불리는 루이비통(1991년), 샤넬(1991년), 에르메스(1997년)가 한국 법인을 설립한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길거리에서 3초마다 하나씩 보인다는 의미의 ‘3초백’이라는 별명이 루이비통 스피디백에 붙은 2000년대 중반 대중화 시기다. 이후 10~15년 만에 다시 한번 ‘명품 물결’이 찾아왔다는 얘기다.
○달라진 한국 위상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021년 이후 한국 수입사와 계약을 종료하고 직접 진출을 선언한 해외 브랜드는 9개에 이른다. 올해는 ‘메종마르지엘라’ ‘질샌더’ 등 신명품을 상당수 보유한 OTB그룹과 ‘톰브라운’ 등이 국내 패션기업과 수입 계약 종료를 선언하고, 한국 법인에서 근무할 직원 채용에 나섰다.
이미 진출해 있는 명품 브랜드의 한국 시장 공략도 거세다. 티파니는 2021년 50억원을 들여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한 달간 250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구찌가 2021년 5월 서울 한남동에 선보인 ‘구찌 가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핫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곳엔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가면 들러야 할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구찌 오스테리아’가 들어섰다. 앞서 4월엔 디올이 서울 성수동에 연면적 1500㎡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인사 정책에서도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본부장은 통상 홍콩이나 일본 법인에서 나왔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지사가 아·태 지역을 맡는 브랜드가 많다. 버버리와 보테가베네타는 한국지사장이 일본과 아시아 지역 전체 사업을 총괄한다. 티파니와 부쉐론 등은 아·태본부를 거치지 않고 본사에 직보하는 체제다.
○성장세 어떻길래
명품 기업들이 너도나도 한국 공략을 강화하는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첫 번째는 매력적인 시장 성장세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명품 소비액은 2021년 대비 24% 증가한 총 168억달러(약 21조1000억원)에 달했다.
명품을 사는 데 1인당 325달러(약 40만9000원)를 써 미국(280달러·약 35만3000원), 중국(55달러·약 6만9000원)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전국지 ‘일 솔레 24 오레’는 최근 “한국은 세계 명품시장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란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한류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K팝 스타들은 중국 등 아시아와 남미에서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엔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가 구찌와 함께 출시한 177만원짜리 니트가 중국에서 판매 시작과 동시에 동 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명품 기업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글로벌 패션쇼를 한국에서 여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올이 지난해 5월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개최한 게 대표적이다. 구찌도 오는 5월 한국에서 ‘크루즈 패션쇼’를 연다.
○‘중국發 충격 완화’도 노려
명품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게 한국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인앤드컴퍼니 럭셔리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의 명품시장은 지난해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명품 기업들은 중국에서 받은 타격을 한국 등에서 만회했다. 버버리의 경우 지난해 중국에서 매출이 전년보다 23% 감소한 가운데 한국(10%)에선 증가해 충격을 줄였다.
한 백화점 명품 담당 바이어는 지난해부터 이전에는 마주칠 일이 없던 사람들과 미팅하는 일이 잦아졌다. 유럽 주요국 대사관 관계자다. 이 바이어는 “해외 브랜드들이 주한 대사관과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지 귀찮을 정도로 문의한다”고 했다.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이 글로벌 명품업계의 명실상부한 ‘큰손’으로 떠오른 실상을 보여주는 일단이다. 럭셔리산업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한국은 세계 명품시장의 별”(이탈리아 전국지 ‘일 솔레 24 오레’)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달라진 한국 위상9일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명품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약 17조8600억원)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세계 7위 규모다.1인당 소비는 세계 최대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0만4000원)로 미국(280달러)과 중국(55달러)을 제쳤다. 이에 따라 명품으로 분류되는 해외 주요 브랜드는 급을 가리지 않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2021년 이후 한국 직진출을 선언한 명품 브랜드는 총 9개다.메종마르지엘라, 질샌더 등을 보유한 OTB그룹은 한국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톰브라운 역시 삼성물산과의 10년 계약을 종료하고 톰브라운코리아를 세울 예정이다.이미 진출해 있는 명품 브랜드의 한국 시장 공략도 거세다. 티파니는 2021년 50억원을 들여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한 달간 250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구찌가 2021년 5월 서울 한남동에 선보인 ‘구찌 가옥’은 MZ세대의 ‘핫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앞서 4월엔 디올이 서울 성수동에 연면적 1500㎡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명품 기업들의 인사 정책에서도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본부장은 통상 홍콩이나 일본 법인에서 나왔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지사가 아·태 지역을 맡는 브랜드가 많다. 버버리와 보테가베네타는 한국지사장이 일본과 아시아 지역 전체 사업을 총괄한다.○성장세 어떻길래명품 기업들이 너도나도 한국 공략을 강화하는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첫 번째는 매력적인 시장 성장세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명품 소비액은 2021년 대비 24% 증가한 총 168억달러(약 21조1000억원)에 달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글로벌 명품업계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란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한류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K팝 스타들은 중국 등 아시아와 남미에서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2021년엔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가 구찌와 함께 출시한 177만원짜리 니트가 중국에서 판매 시작과 동시에 동 나는 일도 있었다.이런 추세에 맞춰 명품 기업들이 글로벌 패션쇼를 한국에서 여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올이 지난해 5월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개최한 게 대표적이다. 구찌도 오는 5월 한국에서 ‘크루즈 패션쇼’를 연다.○‘탈(脫) 중국’ 흐름도 영향명품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게 한국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인앤드컴퍼니 럭셔리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의 명품시장은 지난해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 10% 역성장했다.명품 브랜드들은 중국에서 받은 타격을 한국 등에서 만회했다. 버버리의 경우 지난해 중국에서 매출이 전년보다 23% 감소한 가운데 한국(10%) 일본(28%)에서 증가하며 충격이 작았다.배정철/박종관 기자 bjc@hankyung.com
지금 글로벌 명품업계에선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를 빼고는 얘기가 안 된다. 이들이 입고, 차고, 드는 패션 아이템이 아시아는 물론 남미, 유럽에서까지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주요 명품기업들은 이 효과를 노려 K팝 스타를 앰버서더(모델)로 모시기 위해 혈안이다.9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 디올, 샤넬, 구찌 등 내로라하는 18개 명품 브랜드가 한국인 ‘글로벌 앰버서더’를 두고 있다. 글로벌 앰버서더는 아시아, 한국 등 일부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지역 앰버서더’와 달리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한다.그런 만큼 명품 기업들도 선정하는 데 신중을 기한다. 디올은 BTS 지민과 블랙핑크 지수, 샤넬은 빅뱅 지드래곤과 블랙핑크 제니를 글로벌 앰버서더로 낙점했다.콧대 높기로 유명한 명품 기업들이 한국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근본적 이유는 오너 일가 등 최고경영진이 이들의 인기를 현장에서 실감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일가의 K팝 스타 사랑은 유명하다.아르노 회장은 지난해 12월 블룸버그통신이 꼽은 세계 최고 부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작년 6월 열린 셀린느의 파리 패션쇼에서 블랙핑크 리사와 BTS 뷔 등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천 명의 팬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놀라워하는 장면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셀럽(유명인)의 존재는 국내 유통·면세업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주요 면세점들이 한류 스타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를 수시로 열어 재미를 보고 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아르노 회장의 손주들이 K팝 스타의 열성 팬”이라며 “유럽 출장길에 오를 때 BTS 등의 사인을 챙겨가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글로벌 명품업체는 가격을 올리는 데 거리낌이 없다. 제조원가·물류비 상승을 이유로 코로나19 이후 1년에도 몇 차례씩 가격을 인상한 브랜드가 대다수다. 그런데도 국내 소비자들은 없어서 못 살 정도로 명품에 열광한다.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은 지난 7일 주요 제품 가격을 7~8% 올렸다. 불가리도 이달 들어 인기 상품 가격을 4~7% 인상했다.에르메스, 롤렉스, 쇼파드 등은 해가 바뀌자마자 앞다퉈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유통업계에선 루이비통과 디올도 올 상반기에 가격을 올릴 게 확실시된다는 얘기가 나온다.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버킨백 가격이 1000만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치솟았지만, 한국에서 명품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새해 첫날 가격을 올린 롤렉스의 경우 주요 백화점 매장 앞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명품업체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대부분 해외 본사로 보낸다. 루이비통코리아는 2021년 순이익의 69%인 1560억원을 프랑스 본사로 부쳤다. 에르메스코리아는 76%인 960억원을 본사에 배당했다. 이런 까닭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과소비로 남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하지만 명품 열풍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많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명품 e커머스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백화점보다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판매하는 e커머스 플랫폼도 따라서 커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국내 빅3 명품 플랫폼인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의 기업가치 합을 한때 2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기도 했다.리셀(되팔기)이 활성화하면서 명품 검수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 크림, 무신사 솔드아웃, 번개장터 등 7개 기업이 서울에 검수센터를 열었다. 크림은 올해도 당산동에 연면적 4727㎡ 규모의 제3검수·물류센터를 지을 예정이다.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