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당국을 향해 ‘돈을 풀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가, 지방자치단체에선 적자 사업에 돈을 보전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벌써부터 ‘용두사미’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추덕영 기자
그래픽=추덕영 기자

예산안 통과되자마자 추경론

야당은 연초부터 추경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일 “정부는 국민의 고통을 언제까지 방치할 생각인지 묻는다”며 “30조원 민생 추경 논의, 특히 7조2000억원 에너지 물가 지원 추경에 대해 신속한 협의에 임해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30조원 규모의 ‘긴급 민생 프로젝트’를 제안한 뒤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물가 인상에 따른 지원금 지급과 코로나 부채 이자 감면, 지역화폐 예산 증액 등을 위해 총 30조원 규모의 추경을 시행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추경을 통해 확보한 예산으로 전 국민의 80%(소득 하위 80%까지)에 난방비 등 에너지 물가 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도 추경 요구가 나온다. 김태호 의원과 조경태 의원이 대표적이다. 조 의원은 모든 가구에 3개월간 10만원씩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제시한 안에 따르면 총 6조4000억원이 더 필요하다. 추경론이 나올 때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당과 대통령실이 나선다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가까운 시일 내 추경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당국은 가뜩이나 고물가로 어려운데 각종 요금 인상에 따른 서민의 부담을 경감할 방법을 고민해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중산층까지 난방비를 지원하려면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발(發) 재정지출 요구까지 가중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해마다 노인 무임승차로 30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 비용을 부담해달라고 기재부에 요구했다. 기재부가 “지자체 고유 사무”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히자 지난 5일에는 공식 반박문까지 발표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6일 “중앙정부가 공익비용을 부담하는 게 옳다”며 기재부를 압박했다.

총선 앞두고 ‘재정 요구’ 더 커질 수도

기재부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급격히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선언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무력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건전 재정 기조가 무너지면 위기 때 쓸 수 있는 ‘안전판’이 사라진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1045조5000억원으로 5년 전인 2017년 말(627조4000억원)과 비교해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지난 정부의 확장재정 운용 탓이다. 게다가 하반기가 되면 재정 확대 요구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내년 4월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선심성 공약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추경을 하거나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기엔 상황이 너무 이른데도 곳곳에서 곳간을 풀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출을 통제하는 취지의 재정준칙(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헛바퀴만 돌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9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재정준칙을 발표했다. 당초 목표는 지난해 법 개정을 마무리하는 것이었지만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