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고덕동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3라인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경기 평택시 고덕동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3라인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반도체 불황에 따른 어닝쇼크에도 감산 대신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메모리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후공정 외주기업(OSAT), 반도체 장비 업계가 반색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1일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매출 70조4600억원, 영업이익 4조31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97%, 영업이익은 68.5% 각각 감소했다.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DS부문은 매출 20조700억원, 영업이익 2700억원을 기록했다. 적자는 면했지만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7% 급감했다. 스마트폰·PC·서버 등 주요 메모리 고객사가 재고 조정을 지속하면서 메모리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영향이다.

이같은 실적 악화에도 삼성전자는 감산 대신 투자 강화를 선택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실적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객사 재고 조정이 이어지고 있어 회사 실적에 우호적이지 않지만 미래를 준비할 좋은 기회"라며 "투자 계획 안에서 연구개발(R&D) 항목 비중도 이전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에서도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거나 생산 라인을 멈춰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4분기에도 역대 최악의 메모리 반도체 수익성 급감이 이어지자 삼성전자도 감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일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반도체 중소기업계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 OSAT 업체 관계자는 "뉴스나 각종 보고서에는 올해까지 업황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삼성에서는 하반기부터 업황이 좋아지니 걱정 말라고 한다"며 "삼성이 그렇다고 하니 중소기업은 삼성만 믿고 하반기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시기에 삼성의 조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굉장히 고마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의 장기적인 안목도 높게 평가했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삼성전자가 감산을 하지 않겠다는 건 사업으로 엮여있는 반도체 중소기업의 일감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라며 "당장의 손해만 줄이겠다는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행보"라고 치켜세웠다. 한 메모리 업체 대표는 "지금의 불황은 삼성의 계산 안에 다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협력사도 삼성의 계획에 맞춰 변동 없이 납품 일정을 짜고 있다"고 부연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전체 반도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5.8%인데 메모리반도체의 연평균 성장률이 6.9%에 달해 전체 시장의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이 반등을 시작하는 올해 중반부터 2026년까지의 메모리반도체 연평균 성장률은 17.9%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현재의 생산량을 유지해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전체 반도체 생태계의 체력 강화를 꾀해 시장 수요 회복을 대비했다는 평가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낸 삼성전자에 대해 "단기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업경쟁력 및 재무 건전성은 여전히 견조하다"며 "어려운 경영환경이 이어지겠지만 탄탄한 재무구조, 견조한 현금흐름창출력, 선도적 기술력을 기반으로 힘든 시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