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당초 예정대로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의 절반 수준인 10조원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감산 기조도 이어간다. 다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추가적인 투자 감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반도체 업황이 조금씩 개선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SK하이닉스는 1일 지난해 4분기 확정 실적을 발표한 직후 연 콘퍼런스콜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날 이 회사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실적은 ‘어닝 쇼크’ 수준이다. 영업손실이 1조7000억원으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 1조2105억원)를 5000억가량 웃돌았다. 이 회사가 분기 단위 적자를 기록한 건 2012년 3분기 후 처음이다. 매출은 7조69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 감소했다. 영업외손실(2조5200억원)을 반영한 당기순손실은 3조5235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메모리반도체 불황이 실적 악화의 원인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가 이 회사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SK하이닉스는 콘퍼런스콜에서 “고객사와 반도체 공급사를 합친 업계 전반의 반도체 재고가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수요 급감으로 창고에 쌓여 있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다. 솔리다임 등에서 발생한 낸드플래시 관련 무형자산 손실(1조5500억원)이 순손실로 잡혔다는 점도 눈에 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까지 반도체 수요 절벽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 측은 올해 1분기 D램 출하량이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낸드플래시 역시 8~9% 안팎의 수요 감소를 예상했다. 이를 대비해 SK하이닉스는 작년 3분기 실적발표 때 밝힌 투자 50% 기조를 유지하기로 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중국 우시 등 주요 생산라인과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는 감산 기조도 이어간다.
다만 이 외에 올해 추가적인 투자 감축 계획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필수적인 인프라 투자 등을 고려하면 투자 규모는 이미 적정 수준으로 축소했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SK하이닉스는 내부적으로 올해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반도체 재고 수준이 올 상반기에 정점을 찍고 점진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며 “하반기부터는 수급 상황이 개선되는 등 재고 정상화가 이뤄지고 내년엔 예상을 뛰어넘는 호황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차세대 메모리 규격인 DDR5(더블데이터레이트5)와 HBM3(고대역폭메모리) 등 주력 제품 양산에 집중하고 미래 성장 분야엔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올해 내에 차세대 제품인 1b나노 D램과 238단 4D(4차원) 낸드플래시 양산 준비를 완료하겠다는 방침도 그대로다. 이와 함께 첨단 극자외선(EUV) 장비 투자를 늘려 생산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최근 출시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사파이어 래피즈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서버용 DDR5 D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사장이 임직원에게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위적 감산’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의 콘퍼런스콜 이후 일각에서 제기된 “자연적 감산이 사실상의 감산”이라는 해석에 선을 그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경 사장은 1일 DS부문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경영설명회에서 “업계 전반적인 움직임과 달리 삼성전자는 투자를 축소하지 않는다”며 “미래를 위한 것이고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 메모리 사업 분야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반도체업계에선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발언이란 해석이 나온다. 투자 축소와 감산에 동참해서는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은 40.6%로 전 분기(43.4%) 대비 2.8%포인트 하락했다. 삼성전자와 업계 2위 SK하이닉스의 D램 점유율 격차는 작년 1분기 15.6%포인트에서 3분기 10.7%포인트로 줄어든 상황이다.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임원은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올해 투자(CAPEX)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고의 품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 등을 진행하고 미래 선단 노드로의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며 “단기간에 의미 있는 규모의 비트(생산량)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술적 감산’에 대한 언급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사실상의 감산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대한항공이 최대 실적을 1년 만에 경신했다.대한항공은 지난해 별도 기준으로 매출 13조4127억원, 영업이익 2조8836억원을 올렸다고 1일 공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다. 전년 대비 각각 53%, 97% 증가했다.영업이익은 2021년(1조4644억원)에 올린 기존 최고 기록을 1년 만에 경신했다. 회사 관계자는 “항공화물 운임이 지난해 3분기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며 “하반기부터 각국 정부의 코로나 방역 완화로 여객 운항이 가파른 회복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화물사업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실적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5201억원으로 26% 감소했다.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하는 챗GPT가 화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비슷한 인공지능(AI) 서비스에 노출돼 있다. 넷플릭스 영화 추천, 아마존의 도서 추천, 쿠팡의 쇼핑 추천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네이버의 파파고나 아이폰의 다음 단어 추천 알고리즘 등도 챗GPT와 비슷한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AI 발전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반도체의 발전으로 이뤄졌다. 그러므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의 성장은 AI칩 수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AI용 컴퓨터는 서버컴퓨터 시장에서 5%가량을 차지하지만 트랜지스터 사용량은 일반컴퓨터 대비 7배 이상 많다.챗GPT만을 가지고 전체 IT 시장 수요가 강하게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AI용 트레이닝 컴퓨터가 전체 서버컴퓨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이기 때문이다. IT 관련 업체라고 모두 AI 시장의 구조적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AI칩 시장의 성장은 일반 CPU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보인다. GPU나 주문형 반도체(ASIC) 등 게임이나 그래픽 시장보다는 AI 서버용으로 판매하는 회사들이 더 큰 수혜를 볼 것이다. 예를 들어 게임용 GPU보드를 판매하는 대만의 기가바이트나 마이크로스타 같은 회사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낮다.미국 회사 가운데는 GPU와 AI용 비중이 높은 엔비디아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은 서버시장에서 점유율이 하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서버컴퓨터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서버용 매출 비중은 반도체 사업의 40% 수준이다. 이들 회사 가운데 AI용 비중이 비교적 높은 곳은 TSMC다.서버컴퓨터 시장의 강자인 Wiwynn이나 콴타 등은 기존 서버시장 사업은 침체를 맞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대만의 중소형업체 중에서는 Alchip이나 GUC와 같은 업체들이 AI용 ASIC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해당 사업의 매출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