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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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의 변호사인 엘리 알브레히트는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근무 시간을 대폭 줄였다. 2019년까지 매주 80~90시간을 근무했지만, 최근 60~70시간으로 단축했다.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필수 업무는 화상회의 앱인 '줌'을 활용해서 처리한다.

알브레히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게 아버지가 할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자녀와 친구 같은 관계가 되려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고소득 노동자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뒤 근무 시간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 노동 시장에서 상위 10%의 남성 고소득자의 평균 근무 시간이 2019년 대비 평균 77시간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매주 1.5시간(3%)씩 더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여성 고소득자(상위 10%)의 근무 시간은 29시간 단축됐다. 미국 전체 노동자를 기준으로 2019년에 비해 지난해 평균 18시간 근무 시간이 줄었다. 남성 노동자는 28시간, 여성 노동자는 9시간 감소했다. 지난해 남성 노동자는 평균 2006시간을 일했고, 여성은 1758시간을 근무했다.

논문을 집필한 신용석 워싱턴대 교수는 “흔히 ‘워커홀릭’이라 불리는 25~39세 고소득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초과근무를 그만두고 있다”며 "이 집단에 속하는 근로자들은 다른 집단에 비해 비교적 근무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여전히 평균 근무 시간을 웃돈다"고 설명했다.

가족이 있는 고소득 남성의 경우에 근무 시간이 더 줄었다. 미 노동통계국과 인구조사국이 공동으로 조사하는 '시간 사용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9~2021년에 기혼 남성은 하루 평균 13분씩 근무 시간을 줄여왔다. 반면 미혼 남성은 3년간 근무 시간이 그대로 유지됐다.

신 교수는 "고소득 노동자들은 협상력을 지닌 사람들이다"라며 "생계비에 시달리지 않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할지 결정할 특권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이런 현상 때문에 경기침체가 도래해도 미국의 노동시장이 견고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가 확산한 결과다. 고소득 노동자들은 다른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주와의 협상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큰 폭으로 줄었다는 설명이다. 전미경제조사국에 따르면 고소득 노동자일수록 유연 근무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하위 계층보다 높았다.

저임금 노동자는 근무 시간은 되레 증가했다. 소득 하위 10% 남성은 2019년보다 지난해 평균 41시간 더 일했다. 여성의 경우 3년 전보다 52시간 늘었다. WSJ은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육아 및 집안일 등 ‘무급 노동’을 집계하면 조사 결과보다 더 장시간 일했다"고 짚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