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사고 걱정 때문에 현장 순찰만 수백 번 돌았습니다. 미래 전략이나 생산성 향상 계획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경남의 한 조선기자재업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노이로제에 걸렸다. 퇴근 후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사고가 났을까 봐 식은땀부터 난다.
25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중소기업 현장을 취재한 결과, 27일 시행 1년을 맞는 중대재해법이 중소기업 경영과 미래 투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 노릇을 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중대재해법이 중소기업에 중대 재해가 됐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특히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대표이사가 ‘징역형’을 받을 수 있어 중소기업계의 혼란이 심해지는 모습이다. 대표가 곧 오너인 사례가 많은 중소기업에서는 한 번의 사고가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대재해법을 다룰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점도 우려를 키운다. 4~5년 이상 경력의 안전 전문가 연봉은 8000만~9000만원대로 웬만한 중소기업 임원 연봉을 크게 웃돈다.
내년에는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중대재해법을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어서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68만 개로 50인 이상 사업장의 15배에 달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안전센서 달아도 직원이 꺼버리는데…中企 CEO '중대재해 포비아' 中企에 더 가혹한 중대재해법…모든 사고 책임은 사장 몫?
충남지역 한 용기 제조업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생산라인 작업자를 대상으로 휴대폰 수거함을 만들었다가 근로자의 반발로 철회했다. 현장 안전을 위해 모든 차량에 후방센서와 사각지대용 카메라도 달았지만 직원들이 “작업 속도를 높이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장치를 꺼버리는 사례가 많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았지만 주요 중소기업 현장에선 실질적인 사고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 안전 규정 위반 시 사업주만 처벌하고 근로자에겐 이렇다 할 제재 수단이 없는 ‘반쪽 규정’에 대한 불만이 많다.
○“근로자가 법 안 지키면 무슨 수로…”
중대재해법에서 사고의 책임은 사업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 한 번의 사망사고라도 발생하면 사업주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여기에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4중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중기 현장에서 벌어지는 재해 상당수가 ‘근로자의 부주의 탓’에 빚어지는 현실엔 눈감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중대재해법 시행 100일 실태조사’ 결과 산재사고 원인의 80.6%를 ‘근로자 부주의 등 지침 미준수’가 차지했다.
실제로 사업주가 안전장치를 강화해도 근로자가 이를 무시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수도권 한 플라스틱제조업체 대표는 지난해 60개 대형 설비에 자동정지 센서를 달았다. 거액을 들여 안전 시스템을 강화했지만 근로자들은 이마저도 “불편하다”며 임의로 코드를 뽑고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업체 대표는 “안전 수칙을 어긴 근로자에겐 아무런 처벌 수단이 없고 사업주만 형사 처벌하는데 어떻게 안전이 지켜지냐”고 호소했다.
중기 업계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근로자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고 안전 수칙 미준수 시 처벌 등 불이익 조치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중대재해 사건 전문 변호사는 “독일은 안전 수칙을 어긴 근로자를 처벌하는 등 선진국은 노사 공동 책임을 강조하는 추세”라며 “한국은 대부분 15만원 이하 과태료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회사가 대신 내는 실정”이라고 했다.
○‘태풍의 눈’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중기 현장의 혼란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으로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50인 이상 기업도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정 때문에 좌충우돌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으로까지 중대재해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경남의 한 용접기자재 업체 대표는 “원자재값 상승, 인력 부족, 금리 인상 등 눈앞에 닥친 압박이 많은데 중대재해법에 대응할 자금, 시간, 인력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이 68만 개에 달하는 점도 고민이다. 4만6000개 50인 이상 사업장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세 사업장으로의 법 적용 확대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기 업계에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2년간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50인 미만 사업장의 93.8%가 ‘준비 기간 부여 또는 법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 1만6000곳에 대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원 물량이 전체 사업장 수 대비 약 2%에 불과하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20조원 넘게 쌓인 산재보험기금을 활용해서라도 정부가 영세기업의 안전 기반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간 사고 걱정 때문에 현장 순찰만 수백 번 돌았습니다. 미래 전략이나 생산성 향상 계획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경남의 한 조선기자재업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노이로제에 걸렸다. 퇴근 후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사고가 났을까 봐 식은땀부터 난다. 25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중소기업 현장을 취재한 결과, 27일 시행 1년을 맞는 중대재해법이 중소기업 경영과 미래 투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 노릇을 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중대재해법이 중소기업에 중대 재해가 됐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특히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대표이사가 ‘징역형’을 받을 수 있어 중소기업계의 혼란이 심해지는 모습이다. 대표가 곧 오너인 사례가 많은 중소기업에서는 한 번의 사고가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중대재해법을 다룰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점도 우려를 키운다. 4~5년 이상 경력의 안전 전문가 연봉은 8000만~9000만원대로 웬만한 중소기업 임원 연봉을 크게 웃돈다.내년에는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중대재해법을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어서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68만 개로 50인 이상 사업장의 15배에 달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민경진/안대규/강경주 기자 min@hankyung.com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우리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혁신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윤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첫머리 발언에서 “규제, 노동 이런 모든 시스템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제도를 정합시켜 나가지 않으면 (해외 기업이) 한국에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 기업이 국제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윤 대통령이 6박8일 해외 순방 후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투자 유치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 및 노동 개혁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특히 마무리 발언에서는 해외 순방에서 느낀 점을 약 30분에 걸쳐 밝히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 개혁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윤 대통령은 “2023년엔 국가 정상화, 일류 국가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부 시스템을 바꿔 나가자”며 “국무위원들이 타성에 젖지 않고 일류 국가 시스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제도와 시스템을 바꾼다면 한국은 자연스럽게 초일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선 “세계에서 가장 큰 지식시장, 즉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여 경쟁하고, 가장 좋은 것이 선택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미국 등의 사례를 국무위원이 연구하고 점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국무위원들에겐 “이번 출장에서 보고 느낀 게 많다”며 “장관들도 해외 출장을 자주 가서 많이 배워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윤 대통령은 과학기술과 관련, “한국 사회의 갈등 해소를 위해선 도약과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필수이며, 이는 과학기술로 가능함을 각 국무위원이 인식해 달라”며 “한국이 글로벌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인정받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과 이를 만들어내는 인재공급 시스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순방 후 첫 번째 일정으로 소장 과학자들과 오찬한 것은 신진 연구자와 미래 세대에 자극을 주고 정부도 많은 뒷받침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윤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30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것과 관련해선 “관계 부처는 한·UAE 투자 협력 플랫폼 구축 등 국부펀드 투자와 관련된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진행해 주길 바란다”며 “저도 이른 시일 안에 수출전략회의와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이 사안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부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겠다”며 “국무위원 모두 다 이 나라의 영업사원이라는 각오로 뛰어 주길 부탁드린다”고 주문했다.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1년간 기소된 사건 11건 모두가 중소·중견기업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해 발생 후 검찰 기소까지 평균 8개월이 걸릴 만큼 수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한 11건 중 10건은 중소기업, 1건은 중견기업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7건이 건설업, 4건이 제조업 현장이었다.기소된 사건의 평균 수사 기간은 237일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청은 평균 93일, 검찰은 평균 144일을 수사했다. 수사 장기화 원인에 대해 경총은 고의성과 인과관계 등 법 위반 입증이 어렵고, 기존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에 신규 사건이 발생해 수사가 누적되는 점을 꼽았다. 경총 관계자는 “노동청과 경찰 등 수사기관 간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