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난방비 폭탄’ 하소연이 속출하면서 난방비 부과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실내 설정 온도를 지난달보다 거의 올리지 않았음에도 난방비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어느 쪽의 잘못인지 난방비 폭탄의 책임 소재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1) 누가 언제 요금을 올렸나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앙·개별난방 가구에 부과되는 도시가스 요금은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한국가스공사가 도매요금을 책정한 뒤 각 시·도가 공급비용을 감안해 소매요금을 결정한다. 가스공사가 공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요금을 책정한다는 뜻이다. 지역난방 가구에 부과되는 열요금은 한국지역난방공사 같은 집단에너지 사업자가 도시가스 요금에 연동해 조정한다.
도시가스 요금은 2020년 7월부터 1년8개월간 동결됐다가 작년 4월과 5월, 7월과 10월 네 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현 정부가 출범한 작년 5월 10일 기준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 말기에 두 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두 번 요금이 인상됐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무적 판단에만 몰두한 채 단계적인 요금 인상을 외면하다가 한꺼번에 요금을 올리면서 ‘난방비 폭탄’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 난방비 얼마나 올랐나
도시가스와 열요금은 최근 1년 새 각각 38.4%, 37.8% 올랐다. 전년 동기 대비 같은 양의 가스를 사용했다고 가정할 경우 난방비는 이 정도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정부는 소비자가 내는 도시가스 요금이 1년 새 월평균 1만1390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까지 이달 난방비가 올랐다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직전 납부한 달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올랐다는 가구도 적지 않다.
가스업계는 한파로 난방·온수 사용량이 늘면서 예상보다 가스비 부담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 겨울은 한파가 일찍 찾아오면서 지난겨울보다 훨씬 추웠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하 2.8도로, 전년 동기(0.6도) 대비 3.4도 낮았다. 가스업계 관계자는 “대개 전년 동기보다는 직전 월에 낸 가스요금과 비교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체감하는 요금은 훨씬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 왜 우리 집만 많이 올랐나
국내 주택의 난방 방식은 중앙난방과 지역난방, 개별난방으로 나뉜다. 2020년 기준 전국 주택 중 52.4%는 개별난방을 사용하고 있다. 지역난방 가구가 22.2%이며, 중앙난방이 16.1%다. 개별난방은 주택마다 설치된 보일러를 통해 난방하는 방식이다. 계절과 관계없이 온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난방비도 사용한 만큼 부과된다.
중앙난방은 초기 아파트들이 많이 사용한 방식이다. 단지 안에 큰 굴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택 단지 내 중앙보일러실이나 개별 동 지하실 등에 설치한 대형 보일러를 가동해 가정으로 열과 온수를 공급한다.
지역난방은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에 많이 도입되는 방식이다. 대형 열병합발전소에서 생산한 고온의 물을 공급받아 아파트 단지 보일러실에 설치된 열교환기를 통해 각 가정에 적정한 온도의 난방을 공급한다.
가스업계는 난방 방식보다도 계량기나 배관 등의 열손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여의도, 목동, 상계동 등 지어진 지 수십 년 된 노후 아파트에 적용된 중앙·지역난방은 열손실 증가에 따른 운영 효율 저하로 난방비 폭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스업계의 설명이다.
이달 들어 전국 곳곳에서 난방비가 수십만원씩 불어난 ‘난방비 폭탄’ 현상이 속출하면서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 국제 가격 상승과 환율 급등 등 잇단 인상 요인에도 인위적으로 장기간 도시가스 요금을 억제한 부작용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일반 국민에게 적용하는 민수용(주택용) 도시가스 도매요금은 메가줄(MJ·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8.3951원이다. 제조업체가 공장 가동을 위해 사용하는 산업용 도시가스 도매요금은 MJ당 33.2550원이다. 산업용 요금이 민수용의 1.8배에 달한다.통상 기업에 부과하는 산업용 가스요금은 주택용보다 저렴하다. 가스를 많이 사용할수록 싼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요금 부과 방식이다. 하지만 2021년 3월 산업용 요금이 처음으로 주택용을 추월한 데 이어 두 요금 간 격차가 두 배 가까이로 벌어졌다. 산업용 요금은 2020년 7월 이후 2년5개월 사이 세 배 가까이 폭등했다. 정부가 LNG 등 원료비가 특정 범위를 초과해 오르락내리락하면 이에 연동해 요금을 조정하는 원료비 연동제를 산업용 요금에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가스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정무적 판단을 앞세워 주택용 요금 인상은 억제하고 산업용 요금은 잇달아 올리면서 두 요금 간 역전 현상이 심화했다”고 말했다.정부는 2020년 7월 주택용 요금을 MJ당 12.9284원으로 내린 뒤 지난해 3월까지 1년8개월 동안 가격을 동결했다. 이 기간 LNG 수입단가는 t당 350달러대에서 1000달러대로 치솟았다. LNG 수입단가가 세 배로 올랐지만 정부는 소비자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주택용 요금을 동결했다. "文정부, 가격 억눌러 왜곡…한번에 터져나와"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수금은 가스 판매가격을 낮게 책정해 발생한 일종의 영업손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주택용 요금을 동결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2020년 7월부터 작년 3월까지 주택용 요금이 동결된 1년8개월 동안 산업용 요금은 MJ당 10.8878원에서 21.7685원으로 두 배로 올랐다.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단가에 인건비 및 적정 투자보수를 합친 천연가스 총괄원가는 예상보다 빠르게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0년 22조3414억원이던 천연가스 총괄원가는 지난해 44조1723억원으로 두 배로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면서 한국가스공사의 민수용 미수금은 2021년 1조8000억원에서 작년 8조8000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정부도 더 이상 요금 인상을 억제하며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봤다. 문재인 정부는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4월과 5월, 두 달 연속 주택용 요금을 올렸다.윤석열 정부도 출범 이후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 주택용 요금을 인상했다. 최근 1년 새 도시가스 요금이 42.3% 오른 것이다. 가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 인상 요인에도 요금을 억누르다가 버티지 못하고 한꺼번에 올리면서 난방비 폭탄이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산업용 요금도 추가 인상됐다. 지난해 4월 MJ당 22.4239원에서 같은 해 12월 33.2550원으로 8개월 새 48.3% 인상됐다. 동·하절기 구분 없이 매달 일괄 부과되는 주택용 요금과 달리 산업용 요금은 동절기(매년 1~3월·12월), 하절기(6~9월), 기타 월(4~5월·10~11월)로 나뉘어 별도 부과된다.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난방비 폭탄’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설 연휴 기간 난방비 급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민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여야의 판단이다.더불어민주당은 25일 도시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집도 난방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올라 깜짝 놀랐다”며 “최근 국제 유가 상승과 강추위로 국민들이 난방비 폭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차, 국민이 체감하는 민생 현장의 고통지수는 상상 초월”이라며 “역대급 난방비 폭탄으로 집집마다 비명이 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스요금 인상을 방치해 가스요금 급등이 윤석열 정부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반격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정부에서 LNG 도입 단가가 2~3배 이상 급등했는데도 요금을 13%밖에 인상하지 않아 한국가스공사 등의 누적 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탈원전 한다고 해서 전력생산단가가 올랐던 것과 판박이”라고 맞받았다.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때문에 난방비가 올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자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했다.민주당이 지난 12일 제시한 30조원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구도 난방비 급등과 맞물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추경안 중) 5조원 규모의 핀셋 물가지원금이 있는데, 여기에 에너지 문제도 포함돼 있다”며 “정부가 소액 에너지바우처 지원 예산을 대폭 늘려 취약계층 난방비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6일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간담회를 열고 난방비 문제 해결책을 논의할 계획이다.이에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예산이 확정된 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30조원 추경안으로 국민 호도를 하고 있다”며 “잘못된 에너지 정책의 후폭풍이 가스요금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사정을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일 년새 38% 이상 뛴 도시가스 요금, 20% 이상 오른 전기요금…. 우리에게 최근 닥친 ‘공공요금 폭탄’은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일본과 미국도 올해 전기요금 인상을 피하지 못할 전망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글로벌 에너지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발전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뛰어오른 영향이지요.日, 전력업체 요금 인상 요청 줄이어일본은 올 여름부터 전기요금이 확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데다 엔저 현상으로 전력 회사들의 실적에 빨간 등이 켜졌기 때문입니다.25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지난 23일 일본 경제산업성에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6월부터 평균 29.31%를 올리는 방안입니다. 적용 대상은 약 1000만 가구입니다.일본은 2016년 전력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요금을 정할 수 있는 ‘전력거래 자유화’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요금제는 여전히 정부가 심사한 후 가격 인상 여부를 결정합니다. 전력회사가 정하는 요금은 자유요금, 정부가 심사하는 요금은 규제요금으로 분류됩니다. 도쿄전력이 인상하려 하는 요금은 규제요금이지요.일본 정부는 인상안을 검토한 후 인상 폭과 시기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도쿄전력이 신청한 인상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전기 사용량이 평균적인 가정이 한 달에 지불하는 요금은 1만1737엔(약 11만1000원)으로 기존 대비 2611엔(약 2만5000원) 늘어납니다.앞서 도호쿠전력과 주코쿠전력, 시코쿠전력, 호쿠리쿠전력, 오키나와전력 등 일본의 5개 전력업체들도 올 초 전기요금을 28.1%~ 45.8% 올리는 방안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일본 전력회사들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전연료 가격이 급등하며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도쿄전력은 LNG 가격 급등 여파 등으로 올 1분기 3170억엔(24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해 56억4000만엔의 순이익을 낸 전년 동기 대비 적자전환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도쿄전력은 가격 인상을 요청하며 “연료비 급등 장기화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일본 정부는 에너지 가계 부담이 커질 가계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달부터 9개월간 각 가정의 전기요금을 20%가량 지원하기로 했지요. 다만 도쿄전력을 비롯한 각 전력업체들이 신청한 인상폭이 이보다 커 가계의 부담이 심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美 “인플레 완화돼도 전기요금은 오를 것”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점차 완화되는 미국에서도 전기요금은 오름세입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핵심 발전연료인 LNG를 유럽에서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미국 종합일간지 USA투데이는 24일(현지시간) “가스와 가구, 가전과 의류 등 장기간 올랐던 품목들의 가격 상승세가 완화되고 있지만 전기요금만큼은 당분간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미국 에너지지원관리자협회(NEADA)의 마크 울프 이사는 “경제학자들은 올해와 내년 인플레이션율이 3~4%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전기요금은 같은 기간 연 평균 10%씩 오를 수 있다”라고 예측했습니다.미국의 전기요금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LNG입니다. LNG는 미국 전력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을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러 제재의 보복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 유럽이 미국산 LNG 수입을 대폭 늘렸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분기 가스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EU의 미국산 LNG 수입량은 52bcm(1bcm=10억㎥)로 전년 같은 기간 수입량(22bcm)의 두 배를 넘습니다.글로벌 LNG 시장은 향후 불확실성도 큽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가늠하지 못하며,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중국은 제로 코로나 방역에서 벗어나 경제회복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뜻입니다.미국에선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도 전기 인상 요인입니다. 델라스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 제시 톰슨은 “특히 전력 같은 숙련된 근로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노동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며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전기요금도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