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알바생→대표이사' 처조카마저 이수만에 등 돌린 이유 [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당분간 카톡 메시지 확인 및 회신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공동대표는 설 연휴 직전이었던 지난 20일 이 같은 카카오톡 알림말을 써놓고 전화를 끈 채 잠적했다. SM엔터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 상의 없이 이사회 직권으로 얼라인파트너스과 손잡고 합의문을 발표한 직후였다.

이 대표는 이 총괄의 처조카로 혈연 관계다. 그는 20살이던 1998년부터 'SM기획'의 아르바이트생으로 PC통신의 팬 동향을 회사에 보고하는 업무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이후 2005년 SM엔터에 정식 입사해 A&R팀 일원으로 프로듀싱 업무를 맡았다. 아이돌 F(x)의 매니저를 거쳐 2009년 A&R 팀장에 부임한 후 그해 소녀시대 'Gee', 슈퍼주니어 'Sorry, Sorry, 동방신기 '주문' 등을 연이어 히트시켜 입지를 굳혔다. 2014년 첫 등기이사에 올라 실장, 그룹장, 이수만 총괄 직속의 프로듀싱 본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20년엔 대표이사까지 고속승진한 인사다.

그는 얼라인과 공방이 치열했던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삼프로TV에 출연해 “이수만 프로듀서 같은 사람을 또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그게 제일 큰 걱정”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사내에서도 '이수만 선생님'의 의도를 가장 잘 읽는 측근으로 알려졌던 이성수 공동대표가 돌아선 것이다. 이 총괄의 대변인과 마찬가지였던 이 대표가 '선생님'을 등지고 행동주의 펀드와 한배를 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SM 알바생→대표이사' 처조카마저 이수만에 등 돌린 이유 [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얼라인 파급력 두고 갈등한 이수만 vs 이사진

이수만 총괄은 SM엔터의 메타버스 세계관을 뜻하는 SMCU의 선장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는 SM엔터에 직이 없다. 대주주지만 그 또한 한명의 주주일 뿐이다.

이 총괄이 사내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밖에서 제작자로서 회사를 돕겠다고 선언한 게 2010년 일이다. 경영, IR 등 엔터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전문경영인 등에게 맡기고, 자신은 창의성을 극대화해 K팝의 해외진출과 아티스트 관리를 전담하겠다는 포부였다. SM엔터에 직함을 두고있지 않다보니 연봉과 상여 등을 전혀 제공받지 않았다. 대신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는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으로 용역을 주고받는 형태로 SM엔터의 사업구조가 재편됐다. 회사의 이익이 아닌 '매출'의 6% 가량을 수수료로 수취하다보니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SM엔터한테 받은 수수료만 1600억원에 달했다.

이런 이수만 총괄과의 사적거래는 2019년 KB자산운용의 주주제안으로 수면 위로 올랐다. 이 때만 해도 SM엔터는 라이크기획과 계약 해지는 없다는 '강공'으로 맞섰다. 2020년 신생 운용사인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이 시작됐을 때 창업자인 이수만 총괄은 크게 새로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3월 주주총회 현장에서 주주들의 반응을 직면한 이 대표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 점을 체감했다는 후문이다. 독립계 운용사인 얼라인은 KB자산운용와 달랐다. 금융 모회사 눈치 보지 않고 주주제안에서 감사인 선임, 적극적인 주주 캠페인 등을 통해 주주제안을 펼 수 있었다.

작년 3월 주총 때 얼라인이 선임한 곽준호 감사인이 회사로 들어오면서 SM엔터의 경영환경도 급변했다. 회사에 소속된 감사인은 법상 내부에서 취득한 정보를 기관 및 주주에 알릴 수 없지만, 이사회에서 논의되는 모든 논의와 발언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간 SM엔터에 어떤 직책도 갖지 않았지만 아티스트 활동을 모두 총괄해온 '선생님'의 활동 하나하나가 감시대상이었던 셈이다. 아티스트의 육성에서 데뷔 시점, 곡 선정,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라이크기획을 통해 개입해온 이 총괄의 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이 총괄과 이 대표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사진은 별도의 주주환원책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체감했지만, 이 총괄은 얼라인 공세에 대해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불만이었다. 이 총괄은 지난해 여름 이후 사석에서 "회사가 얼라인 편에 선 것 같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수(왼쪽부터)와 탁영준 SM엔터테인먼트 공동 대표이사.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이성수(왼쪽부터)와 탁영준 SM엔터테인먼트 공동 대표이사.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위법' 확인되자 기관 손잡은 이사진

얼라인은 지난 15일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 주주대표소송 소제기와 함께 자회사 문제들 중 일부에 대한 '위법행위 유지청구'를 진행해 공세에 나섰다. 유지청구권이란 회사의 위법행위로 손해가 우려될 때 주주들이 사전에 이를 유지(留止·멈추게 하는 것)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지난 10월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사회 의사록과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를 통해 해당 자회사로의 부당 지원 등을 검토한 데 이은 후속조치였다.

SM엔터 이사회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진은 얼라인의 주주 대표소송이 제기되자 가장 먼저 사내 법무팀을 찾아 법적책임을 질 수 있는지 여부부터 검토했다. 이후 이사진들은 자칫 자신 또는 이 총괄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긴급 회동을 열어 얼라인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이 총괄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틴 박준영 사내이사와 지창훈 사외이사도 결국 얼라인과의 합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가장 큰 위법 요인은 무엇보다 '라이크기획' 문제였다. SM엔터는 얼라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라이크기획과 계약을 해지하겠다 발표한 바 있지만, 그동안 이뤄진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었다. 그간 이 총괄이 라이크기획을 통해 SM엔터로부터 수취한 금액이 1600억원까지 거론됐다는 점에서 또 한번 회사가 격량에 빠질 위기였던 셈이다. SM엔터의 이사회는 주주대표소송 결과에 따라 당시 의사결정을 내린 이사진과 이 총괄을 대상으로 즉각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해야 했다. 이 총괄은 등기임원에 올라있지 않았지만 '업무 지시자'로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 임원으로 이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이사진과 외부에서 의사결정만 지켜보던 이 총괄간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라이크기획 외 이 총괄이 직접 보유한 관계사들과의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2008년 싱가포르에 설립된 에스엠브랜드마케팅은 SM엔터테인먼트가 지분 42.04%를 보유 중이고 이수만 총괄과 가족들이 41.73%를 갖고 있다. 나머지 16.23% 지분 대다수도 이 총괄과 관련된 인사들이 나눠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NFT, 블록체인 등을 접목한 팬클럽 서비스 플랫폼인 광야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SM엔터가 최대주주가 아니다보니 재무제표엔 연결회계로도 잡히지 않은 관계사로 분류된다.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을 활용한 굿즈를 판매하고 공연 기획을 도맡는 드림메이커도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수익을 내고 있지만 이 총괄과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다.

얼라인을 포함한 기관들은 이미 SM엔터가 엔터 사업과 무관한 와이너리, 외식업, 부동산업 등 무분별한 신사업 진출로 계열사들의 적자를 키운 점을 두고도 공세에 나섰다. 미국 법인인 SM USA의 자회사들이 대표적이다.

이사회를 움직인 두 번째 요인은 얼라인을 제외한 다른 기관들의 행보가 물밑에서 감지되면서다. 몇몇 기관은 얼라인 캠페인에 동조하는 동시에 별도로 더 공격적인 행보를 준비해왔다. 지분 4.9%까지 매집한 A운용사 등 기관들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이들은 SM엔터가 얼라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시간을 끌 경우 3월 주총에서 별도의 주주제안을 통해 사내이사 전원을 교체하는 계획도 세웠다.

강경파들은 기존 사내이사와 이 총괄이 전담한 아티스트 관리 업무는 별도의 M&A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하이브 등을 후보로 놓고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브는 이 총괄이 2021년부터 자신의 지분 매각을 진행하던 과정에서도 "하이브는 제외하라"고까지 엄명을 내렸던 회사였다. 그야말로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한순간에 빼앗길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M&A는 행동주의가 정착된 미국에선 일상적인 주주행동 사례다. '팰로톤'이 대표적이다. 실내 자전거 팰로톤은 한 때 홈트레이닝 업계 넷플릭스로 불릴만큼 세를 불렸지만 잇따른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주주들은 존 펠리 대표를 해임하고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 CEO를 역임한 배리 매카시를 새 CEO로 선임했다. 이 회사 지분 5%를 보유하던 자산운용사 블랙웰스 캐피털(Blackwells Capital)은 아예 “진지하게 사업을 매각할 때”라면서 주주제안을 통해 넷플릭스·구글·나이키·아마존에 매각을 촉구하기도 했다.

'경영권 매각' 쉽지 않아진 이수만의 행보는

시장에선 이사회 통제권을 잃은 이수만 총괄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도 행동주의에 휘둘리는 SM엔터 경영진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해 회사에 다시 복귀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 등 중동국가로 K팝·K컬처 전도사를 도맡은 동시에 신사업인 NFT 등으로 성과를 보여 여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즉 '이수만 없는 SM엔터'가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가 이끄는 세계관인 '광야 유니버스'는 그 일환이었다.

이는 2년여간 엔터업계 큰 화두였던 지분 매각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총괄은 주식매매계약과 별도로 CJ그룹과 카카오와 협상 과정에서 '사업협력' 계약을 따로 협상해왔다. SM엔터 지분 매각 이후에도 해외에 인수한 회사와 자신이 공동으로 출자한 조인트벤처(JV)를 만들고, 이 회사가 아티스트와 음원 퍼블리싱 사업 업무를 담당한다는 골자였다. 당분간 업에서 손을 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행보로 풀이된다. 특히 CJ그룹과 논의가 장기화된 배경은 가격보다 이 사업협력을 둔 이견이 컸던 데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확인된 점은 대주주 지분 18%로는 SM엔터 경영권을 온전하게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총괄의 지분을 인수해 단일 최대주주에 오르더라도 기관투자가 및 소액주주의 지지를 받은 이사회가 구성된 상황에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이 총괄의 경영권 매각 계획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IB업계 관계자는 "인수자 입장에선 기관과 주주 동의 없이는 지분인수 과정에서 돈은 돈대로 쓰고 이사진 선임에서 자기 의사를 못펴는 상황인 셈"이라며 "경영권 프리미엄이 아니라 기존 이사회에 대한 '적대적 M&A'가 된 상황인데, 이 총괄이 지난해까지 논의됐던 가격을 받아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총괄이 이번 사태로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가 정기 주총을 앞두고 SM엔터 대주주로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이번 SM엔터 이사회와 얼라인 측 합의의 핵심 중 하나인 '멀티 프로듀싱' 체제 구축이 어떻게 구현될 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SM엔터는 지난해 12월 이수만 총괄의 라이크기획과 계약 해지를 발표했는 데, 최근까지 SM엔터가 구축해온 SMCU, 광야, 메타버스 세계관 모두 라이크기획이 SM엔터로 위탁받아 진행해온 사업 컨셉 중 하나였다. 라이크기획과 계약 해지로 이 총괄의 역할이 제한되면서 소속 아티스트들의 컨셉 등에도 대규모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