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은행 주택담보대출 현수막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시내 은행 주택담보대출 현수막 모습. /사진=뉴스1
#. 30대 직장인 A씨는 2016년 약 1억원을 담보대출 받아 이자 한 번 밀리지 않고 성실히 갚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연 3.4%였던 이율이 연 4.9%로 인상됐다는 소식에 A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했고 3번째 시도만에 받아들여졌다. 금리를 0.7%포인트 낮출 수 있었고, 대출이자만 매월 5만6000원가량 아끼게 됐다.

현재의 대출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자를 낮출 수 있는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출금리 급등으 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불어나면서 0.1%라도 금리 인하가 절실해서다. 실제 이용률이 1%대에 불과한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금융당국과 정치권도 팔을 걷어 부쳤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내달부터 고객의 대출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해 금리를 얼마나 내렸는지 공시해야 한다. 금감원은 "금리인하요구권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단순 신청 건 위주였던 수용률 공시를 개선하고 수용률 공시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이란 대출을 받았을 당시보다 신용 상태가 좋아진 대출자가 금융사에 대출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함께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나,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기존의 금리인하요구권 공시가 신청 건수, 수용 건수, 이자 감면액, 수용률을 게재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한 달에 5만원이 어디냐…3번 시도 끝에 이자 깎았습니다"
금감원은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할 시, 영업점에 직접 방문할 경우와 온라인으로 진행할 때 차이를 알 수 있도록 비대면 신청률을 추가로 공시할 계획이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에 따른 평균 금리 인하 폭도 공시해 건수 위주의 공시도 보완한다. 아울러 가계·기업으로 구분하고 신용, 담보, 주택담보대출로 수용률을 따로 공시해 정보 제공도 확대할 예정이다.

2019년 법제화된 금리인하요구권은 은행에서 소비자에게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러나 금융취약계층을 포함한 소비자들은 금리인하요구권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은행별로 금리인하 기준이 상이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4대 시중은행(KB국민·우리·신한·하나)의 금리인하요구권 이용률이 평균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적게 이용한 은행은 하나은행(0.7%) 이었고, 우리은행(0.94%), KB국민은행(1.17%), 신한은행(4.98%) 순이었다.

또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하더라도 수용되는 비율은 30~40% 수준이었다. 작년 상반기 4대 시중은행 수용률은 신한은행(30.4%)이 가장 낮았고 하나은행(33.1%), KB국민은행(37.9%), 우리은행(46.5%) 순으로 모두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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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인하요구권은 소비자가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고객이 생각보다 많다"며 "본인의 소득 상황, 신용등급 등에 변화가 있다면 수용 여부를 예단하지 말고 금융기관에 우선 신청부터 하길 권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고객에 금리인하요구권을 미리 안내하지 않은 금융회사에는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개인 대출자라면 본인의 취직, 승진, 소득 증가, 우수고객 선정, 신용등급 개선 등에 따라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할 수 있다. 조건이 충족됐다면 영업점을 방문해 본인의 신용상태가 개선됐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자영업자나 기업은 매출액 증가 또는 특허취득이나 담보제공이 가능한 경우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신용상태가 금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품은 금리인하 요구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소득이 늘었어도 부채 비율이 올랐다면 금리 인하 요구가 거절될 수 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