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코나 '디 올 뉴 코나' 출시 현장 가보니
형광색 '네오테릭 옐로우' 컬러 눈에 띄어
차체 커지며 셀토스와 경쟁 예상
복합연비 기준 코나 연료 효율 더 높아
현대자동차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코나가 5년 만에 완전변경 모델로 돌아왔다. 신형 코나는 기존보다 차체 크기가 커졌고, 다양한 안전·편의 기술이 적용돼 소형 SUV 시장 1위인 기아 셀토스와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현대차 '디 올 뉴 코나'(The all-new KONA) 발표회에서 취재진이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현대차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코나 2세대 모델 '디 올 뉴 코나' 출시 행사를 열었다. 출시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던 '네오테릭 옐로우' 색상 차량과 고성능 모델 'N라인'도 전시돼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공개한 '디 올 뉴 코나' 네오테릭 옐로우 색상 차량. 영상=신용현 기자신형 코나의 외관은 기존 1세대와 비교해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7세대 그랜저를 연상시키는 전면 상단부의 수평형 LED 램프다. 현대차의 대형 레저용 차량(RV) 스타리아와 지난해 출시된 '디 올 뉴 그랜저'에 이어 적용됐다. 수평형 램프는 현대차의 패밀리룩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차, '디 올 뉴 코나' 영상=신용현 기자차체는 이전 모델보다 눈에 띄게 커졌다. 신형 코나의 전장은 4350mm로 기존보다 145mm 늘어났다. 휠베이스(앞바퀴 축에서 뒷바퀴 축까지 거리)는 2660mm이다. 기존보다 60mm 늘어났다. 기아 SUV 셀토스와 비교하면 전장(4390mm)은 40mm 짧지만 휠베이스(2630mm)는 30mm 길다.
현대차, '디 올 뉴 코나' 트렁크. 영상=신용현 기자신형 코나는 이전보다 차체가 커지면서 공간 활용성이 좋아졌다. 트렁크 용량은 기존 대비 30% 이상 늘어난 723L(SAE 기준)로 동급 최고 수준이다. 2열 시트는 풀 폴딩 기능으로 적재 편의성은 물론 차박이나 캠핑 등 아웃도어 활용성을 극대화했다.
현대차, '디 올 뉴 코나' 사진=현대차 제공파워트레인 구성은 코나가 셀토스보다 선택지가 더 많다. 코나의 파워트레인은 가솔린(1.6 터보 / 2.0 터보), 하이브리드 모델, 올 2분기 출시 예정인 전기차 모델까지 더해 총 3종으로 구성됐다.
기아차, 더 뉴 셀토스. 사진=기아 제공반면 셀토스의 파워트레인은 1.6 가솔린 터보 모델과 2.0 가솔린 엔진 모델로 구성돼있다.
셀토스의 1.6 가솔린 터보모델은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최고출력 198마력, 최대토크 27.0kgf·m를 발휘한다. 복합연비 12.8km/L이다. 2.0 가솔린 엔진 모델은 최고출력 149마력 최대토크 18.3kgf·m, 복합연비 12.9km/L다. 복합연비만 보면 코나의 연료 효율이 더 높다.
현대차, '디 올 뉴 코나' 실내. 영상=신용현 기자신형 코나에는 동급 최고 수준 안전 편의사양이 새롭게 들어갔다. 무선(OTA, Over-the-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이 적용돼 서비스센터 방문 없이도 차량을 항상 최신 사양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 '디 올 뉴 코나' 사진=현대차 제공12.3인치 클러스터와 12.3인치 내비게이션이 통합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에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ccNC(Connected Car Navigation Cockpit)가 내장됐다. 카페이와 연동해 실물 카드가 없어도 결제할 수 있는 e하이패스, 고해상도 카메라를 탑재한 '빌트인 캠2' 등이 동급 최초로 제공된다.
현대차, '디 올 뉴 코나' 컬럼식 기어노브. 영상=신용현 기자변속 기어는 아이오닉 시리즈와 7세대 그랜저에 탑재된 컬럼식 기어노브를 채택했다. 레버를 위·아래로 돌려 기어를 변경하는 방식이다. 조작 방향과 구동 방향이 같아 직관성이 높다. 1열에는 릴렉션 컴포트 시트가 동급 최초로 적용됐다. 리클라이너 소파처럼 쉴 수 있어 편의성을 높였다.
모델별 시작 가격은 셀토스보다 코나가 더 비싸다. 코나 가솔린 1.6 터보 모델 가격은 2537만원부터 시작한다. 가솔린 2.0 모델 가격은 2468만원부터, 하이브리드 모델은 3119만원부터 시작한다(개별소비세 3.5% 기준, 하이브리드 모델은 세제 혜택 적용 전 가격).
셀토스 가솔린 1.6 터보 모델의 가격은 2160만원부터 시작한다. 가솔린 2.0 모델은 2062만원부터 시작한다.
신형 코나 출고는 설 연휴 이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우선 내연기관 모델 출고가 시작된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인증이 완료되는 시점에 고객 인도가 이뤄질 예정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기차 모델은 올 2분기(4~6월) 중 출시 예정이다.
"신형 그랜저가 나올 땐 '스타리아 세단 버전이냐?'라고 하더니, 신형 코나가 나오니 '그랜저 SUV 버전이냐?'고 하네요."최근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현대자동차의 전면부 '일자눈썹' 디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미래형 자동차 느낌이 든다"거나 "세련됐다"는 의견부터 "차급별로 개성이 있었던 옛날 모습이 더 낫다"는 평가도 나왔다.현대차는 지난 18일 내놓은 2세대 코나 완전변경 모델 전면부에 이른바 '일자눈썹' 디자인으로 불리는 수평형 발광다이오드(LED) 램프를 적용하면서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주는 현대차의 차세대 대표(시그니처)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이 디자인은 2021년 출시한 대형 밴 스타리아와 지난해 6년 만에 완전변경 모델로 나온 신형 그랜저에도 적용됐다. 올해 출시 예정인 1~2개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에도 이 디자인이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이 디자인은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는 현대차가 과거 내연기관 시대부터 앞으로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까지 '끊김없이 연결된 자동차 회사'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다. 자동차 제조회사의 이 같은 '패밀리룩(동일착장)'은 원래 서양에서 가족끼리 행사에 참여할 때 통일성이 있는 옷을 맞춰 입는 전통에서 유래했다.자동차 업계에서는 같은 회사의 차량의 경우 동일한 디자인 유산(헤리티지)을 갖도록 해 브랜드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볼륨 모델(많이 판매되는 대중화 차량)에 패밀리룩을 처음으로 적용한 회사는 BMW. 1933년 공개된 모델 '303'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BMW의 패밀리룩인 전면부 '키드니 그릴'은 '327' 과 '328'로 이어지면서 현재까지도 BMW의 핵심 디자인 요소로 적용되고 있다.키드니(신장) 그릴은 콩 두 쪽을 나란히 배치한 모양과 같다고 해 지어진 별칭이다. 이는 사람의 내장 기관 중 신장의 모양을 생각나게 했고, '키드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초기에는 다른 회사들처럼 하나의 그릴로 전면부를 채웠지만, 다른 브랜드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두 개로 쪼갠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중앙 삼각별'을 패밀리룩으로 만든 벤츠는 1990년대 들어서야 유려한 캐릭터 라인을 앞세운 지금의 차체 외관을 완성했다. C클래스, E클래스, S클래스를 각각 벤츠 '소(小), 중(中), 대(大)'라고 불릴 정도로 벤츠는 디자인 변화에서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벤츠의 보수성은 '어차피 디자인은 같으니 사고 싶은 차 크기만 정하면 된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다.벤츠의 패밀리룩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 디자이너 브루노 사코는 "벤츠는 어딜 가나 벤츠처럼 보여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을 얘기한 바 있다.아우디는 '싱글 프레임 그릴', 렉서스는 '스핀들 그릴'을 패밀리룩으로 밀고 있다. 이 두 곳의 그릴 디자인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완성됐다. 포르쉐의 대표 패밀리룩 '개구리 램프'는 1940년대에 나온 모델부터 시작돼 여전히 회사의 상징적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돼 있다.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2006년 현대차가 '헥사고날(Hexagonal, 6각형) 그릴'의 콘셉트카를 선보이면서 본격적 패밀리룩 시대를 열었다.2005년 BMW 출신 토마스 뷔르클레 디자이너가 현대차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대차 패밀리룩 디자인은 '플루이딕 스컬프처' 모습을 띄게 됐다. 플루이딕 스컬프쳐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유연한 역동성을 보여준다는 디자인 철학이다.헥사고날 그릴을 끼우고 처음 등장한 양산차는 2009년 나온 '투싼ix' 모델이다. 이후 아반떼MD와 i30(2세대) 등 다양한 차종에 적용돼 소비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현대차는 2016년 3세대 i30를 내놓으면서 용광로에서 흘러내리는 쇳물과 한국 도자기의 곡선에서 영감을 받은 '캐스캐이딩 그릴'을 패밀리룩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캐스캐이딩 그릴은 이후 아반떼, 그랜저IG, 투싼 등에 반영됐고 팰리세이드 같은 대형 SUV에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기아가 패밀리룩 차량을 내놓기 시작한 건 2006년 피터 슈라이어 디자이너가 오면서다. 1980년부터 아우디에서 일했던 슈라이어는 자동차 유력 매체들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차(車)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아우디TT'를 디자인한 인물이다.그가 기아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오면서 만든 것이 '타이거노즈 그릴'이다. 첫 모습이 호랑이가 정면을 쳐다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에는 그릴이 헤드램프까지 이어지면서 '타이거 페이스'로 진화했다.타이거노즈 그릴이 처음 적용된 양산차는 2008년 나온 '로체'부터지만 큰 반향을 일으킨 건 2010년 출시된 'K5'다. K5의 날렵하면서도 유려한 디자인과 타이거노즈 그릴 모양이 잘 어울리면서 당시 연간 판매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쏘나타를 위협할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2010년 이후에는 타이거노즈 디자인이 그릴을 넘어 전면부 헤드램프까지 연결되며 '호랑이 얼굴'을 한 타이거 페이스로 변모해 K3, K5, K7을 비롯해 스포티지 등 차급을 가리지 않고 일괄 적용됐다.2020년대 들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다시 한번 패밀리룩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엔진 없이 모터를 동력으로 삼는 전기차에는 공기를 흡입해 엔진룸으로 유입시켜 냉각 창구 역할을 하는 '그릴'이 기능적으로 필요 없기 때문이다.전기차 시대에 BMW는 키드니 그릴을 수직으로 길게 키우면서 초기 디자인으로 돌아가고 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그릴에 블랙 패널을 덮는 디자인을 쓰고 있다. 현대차는 일체형 램프인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를, 기아는 전기차 고유의 패밀리룩 '디지털 타이거 페이스'를 적용하고 있다.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유럽차 텃밭인 영국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난해 점유율이 연간 기준으로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영국 신차 10대 중 1대가 현대차·기아 차량이 팔렸다는 의미다. 영국 자동차 매체 탑기어가 ‘현대차는 바퀴달린 냉장고’라고 혹평까지 했던 이 시장에서 진출 40년 만에 상품성으로 쾌거를 올렸다는 평가다.영국자동차산업협회(SMMT)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영국에서 18만1610대를 판매했다. 전년 16만624대에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점유율은 9.8%에서 11.3%로 올랐다. 폭스바겐그룹(21.5%), 스텔란티스(12.0%)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스텔란티스(19만4179대)는 1만3000여 대 차이로 맹추격하고 있다. 기아는 10만191대를 판매해 연간 판매량 10만대도 처음으로 넘어섰다.현대차그룹 뒤로 BMW(9.6%), 르노·닛산·미쓰비시(8.5%), 포드(7.9%), 도요타그룹(7.0%)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판매량 ‘톱 10’ 브랜드 중에선 현대차·기아와 도요타만 전년 대비 점유율이 올랐다.기아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스포티지와 현대차 준중형 SUV 투싼은 지난해 전체 판매량에서 각각 6위와 7위를 차지했다. 전기차 가운데선 기아 니로 EV가 1만1197대로 3위를 차지했다. 테슬라 모델 Y(3만5551대), 모델 3(1만9071대)에 뒤이은 판매량으로 폭스바겐 ID.3, 닛산 리프 등 쟁쟁한 경쟁차를 제쳤다.우수한 디자인과 가성비(가격대 성능)로 인기를 얻고 있는 현대차·기아가 유럽 시장에서도 영국에서 질주하고 있는 점은 의미가 크다. 영국 탑기어는 지난해 말 ‘베스트 패밀리카’에 투싼을, ‘올해의 인기 차량’으로 현대차 N비전74를, ‘올해의 자동차 회사’에 기아를 선정했다. 탑기어는 지난해 9월에도 “2020년대 자동차 시장은 현대차의 시대”라고 평가했다. 2004년 ‘바퀴달린 냉장고’라고 혹평했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라는 평가다.기아는 지난 20일 영국 ‘왓 카 어워즈’에서 스포티지로 올해의 패밀리 SUV 상을, EV9으로 ‘가장 기대되는 차’ 2관왕에 올랐다.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스페셜 리포트] 제네시스에 담긴 축적의 시간, 한국 자동차 60년한경비즈니스는 1년에 두 번 합본호를 냅니다. 설날과 추석 2주치를 한꺼번에 낸다는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때 약간은 숨을 돌릴 여유를 갖습니다. 물론 온라인 기사도 써야 하기 때문에 마냥 맘이 편할수 만은 없지만요. 이 정도로는 좀 아쉽다는 독자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경비즈니스 편집진은 올해 썼던 기사 가운데 ‘시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기사들을 추려봤습니다. 공부해두거나 읽어두면 상식이 되거나,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는 12개의 기사입니다. 이를 한곳에 정리했습니다. 연휴 기간 영상에서 벗어나 활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독자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설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엄청나게 낮다는 것을 한국이 보여줬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회원국 만장일치 합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후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큰 축을 담당했던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꼽을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도 늘었다. 2022년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00만 대를 돌파했다. 인구 2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판매량이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 다음인 3위에 올랐다. 2010년 글로벌 5위를 달성한 지 12년 만이다. 빛나는 현재가 있기까지 정부와 기업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히트작을 내놓았지만 과도한 투자로 흡수된 기업이 있었고 시장 진입에 가로막혀 너무 늦게 출발하다가 결국 손을 뗀 기업도 있었다.자동차는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집에 이은 둘째로 큰 자산이었고 자신의 부를 보여주는 수단과도 같았다. 대형 차를 좋아하는 특징이 생긴 배경이다. 1960~1970년대에는 자동차를 산 후 온 가족이 울산에 있는 공장에 내려가 하룻밤을 자고 차를 받아 오는 일이 흔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델들을 따라가며 한국 자동차 역사를 들여다봤다.◆1950~1970년대시발부터 포니까지1950년대 거리는 한산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미군용 택시만 어쩌다 보였을 뿐 승용차는 거의 볼 수 없었다. 1955년 6·25전쟁 직후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자동차가 나왔다. 자동차 정비소를 하던 최씨 3형제(최무성‧최혜성‧최순성)가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라는 회사를 차렸다. 미군이 폐차한 지프차 윌리스 MB를 가져다가 완전 분해한 뒤 쓸 만한 부품들을 모으고 모아 재조립해 ‘시발(始發) 자동차’를 만들었다. 차체는 가장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드럼통으로 제작했다. 엔진은 전통적인 대장간에서 거푸집 주조 형식으로 만들었다. 조악한 구조지만 택시 회사에 총 500대가 판매됐다. ‘시발택시’다. 1955년 10월 열린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우수상을 거머쥐며 유명세를 탔고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제작 기간을 4개월에서 1개월로 줄이면서 수요는 더욱 늘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새나라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 준 특혜에 밀려 1964년 문을 닫았다.1960년대부터 1970년대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 기아)·새한자동차(대우차 전신) 등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들의 자동차가 거리에 등장했다. 포니·브리사·제미니 등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포니의 탄생은 한국 자동차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이 계획을 주도한 것은 정부다. 정부는 1962년 자동차공업보호법을 제정해 외국산 수입을 금지했고 부품‧시설재 관세를 면제하며 한국 기업을 보호했다. 기업에는 ‘기술 제휴는 하되 외국 자동차 회사와 합작하지 않을 것, 자동차 부품 사업을 육성할 것’을 권고했다. 1973년 중화학 공업 선언을 발표했는데 1980년대 초 자동차 50만 대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장기 자동차 공업 진흥 계획이 이때 나왔다. 포니의 탄생 배경이다.정주영 현대 창립자는 고유 모델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제안에 “할 수 있다”며 3주 만에 포니차 생산 계획서를 제출했다. 연간 5만 대. 최소 경제 단위지만 인프라도 없었고 현대차가 조립만 해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포니는 ‘꿈을 꿨어요 포니, 갖고 싶어요 포니, 아름다운 포니, 현대 포니’라는 광고 문구처럼 1975년 데뷔에 성공한다. 디자인은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작품이었다. 엔진 기술은 일본 미쓰비시의 도움을 받았다. 차체만 고유형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포니는 세계에서 열여섯째, 아시아에서 둘째 고유 자동차 모델로 이름을 올렸다. 자동차 생산 이력도 짧고 개발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고유 모델을 개발한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기록이다. 포드자동차의 생산 기지에 불과했던 현대차가 조립차를 생산한 지 8년 만이다. 출시 이듬해인 1976년부터 아르헨티나·콜롬비아·에콰도르·이집트 등에 수출했다. ◆1980년대봉고 신화와 엔트리카의 등장,쏘나타와 그랜저까지1979년 아침마다 주유소는 장사진을 이뤘다. 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한국 경제 역시 엄동설한을 맞았다. 자고 일어나면 휘발유 값이 껑충 뛰자 당시 아버지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휘발유 통을 들고 주유소로 달려나간 것이다.휘발유 값이 오르고 세계 경제가 흔들리자 한국 자동차 기업들도 휘청였다. 여기에 이듬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섰다. 신군부는 ‘자동차 산업 통폐합’ 조치를 취했다. 현대와 새한(대우)을, 기아와 동아자동차(쌍용자동차 전신)를 통합하려고 했다. 결론적으로 두 건 모두 합병은 백지화됐다. 다만 현대와 대우는 승용차만, 기아는 중소형 상용차를, 동아는 특장차만 만들 수 있도록 교통 정리가 됐다. 이는 기아의 위기를 야기했다. 기아는 1980~1981년 2년간 500억원의 적자를 냈고 18개에 이르던 계열사 중 5개사를 매각했다. 이때 기아를 먹여 살린 히트작이 등장했다. 봉고차(봉고 코치)다. 승합차의 대명사인 봉고는 일본 마쓰다 봉고를 들여와 개조한 모델이다. 봉고차는 12인승에 디젤 엔진차여서 세금도 쌌고 기름값도 쌌다. 사람을 많이 태우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데다 가격도 착했던 것이다. 오일쇼크로 허덕이던 국민들을 홀렸다. 1981년 1022대가 팔렸고 1982년 1만 대를 돌파했으며 1983년엔 2만 대 가까이 팔렸다. 봉고 이후에 출시된 소형 승합차는 모두 봉고차로 불렸을 만큼 대박을 쳤다.이를 ‘봉고 신화’라고 부른다. 신화의 주역은 직원들이다. 이들은 일치단결해 회사 재건에 나섰다. 자진해 상여금을 반납했고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노력을 기울였다. 1983년 기아는 되살아났다.한국 경제에도 봄이 왔다. 1985년 9월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영국·프랑스·서독·일본 등 5개국 재무장관들이 모여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하고 플라자 합의를 체결했다. 이듬해 유가도 60% 가까이 급락했다. 1980년 중·후반 ‘3저 시대(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막이 오른 것이다. 단군 이후 최대 호황이란 평가를 받았던 1986~198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1~12%에 달했다. 대내외적 상황이 변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자동산 생산 자유화 조치’를 취했다. 기아가 다시 승용차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때 내놓은 모델이 프라이드(1987년)다. 프라이드는 기아, 미국 포드, 일본 마쓰다가 분업 체제를 통해 만든 모델이다. 디자인이나 승차감은 조금 떨어졌지만 순발력·가격·경제성이 좋아 장수한 소형 차로 꼽힌다.프라이드와 함께 이 시대를 달렸던 현대 엑셀과 대우 르망도 마찬가지였다. 연비가 리터당 13~18km 정도였다. 이들은 경제성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 여겼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자동차 가격이 1년 수입과 맞먹는 수준이 됐다. 1981년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500만원을 넘어섰는데 프라이드와 엑셀 가격은 각각 330만~400만원, 450만~500만원이었다. 엑셀은 특히 현대차가 최초로 미국 시장에 수출한 차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이 시기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점차 외국 업체에서 스타일을 지원 받던 방식에서 벗어났다. 디자인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거나 독자적으로 진행한 디자인을 평가하며 협업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이 과정에서 한국 자동차의 대표 브랜드가 하나 탄생한다. 중형 승용차인 현대차의 쏘나타다. 쏘나타는 1985년 ‘소나타’에서 출발했고 1988년 현대차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독자적인 스타일로 시장에 나왔다. 이후 1993년 쏘나타Ⅱ가 한국 베스트셀링 카에 오르며 ‘국민 차’로 사랑을 받았다.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 되기도 했고 한국 자동차업계 최장수 모델(37년)을 기록했다. 8세대 모델까지 나오며 900만 대 넘게 팔렸다. 한때 현대차가 회사 이름을 쏘나타주식회사로 바꿀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현대차는 대형 세단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1986년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와 손잡고 1세대 그랜저를 출시했다. 1세대는 각이 지고 직선적인 외관 때문에 ‘각 그랜저’로 불렸다. ‘모래시계’ 등 인기 드라마에서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인들이 타는 모습이 방영되며 부유층이 타는 고급 차로 자리 잡았다.12년 후인 1998년 3세대 그랜저(XG)는 일본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현대차가 독자 개발했고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했다.1990년대 말 이후 그랜저는 이미지 변화를 시도했다. ‘고급’ 이미지에 ‘성공’ 이미지를 추가했고 고객층을 넓혔다. 다이너스티·에쿠스·제네시스 등 현대차에 대형 플래그십 세단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는 쏘나타를 제치고 ‘국민 차’ 반열에 올랐다. 실제 그랜저는 한국 승용차 중 판매 1위다. 올해 1~8월 4만5055대 판매됐는데 경쟁 차종인 기아 K8(2만9108대)과 비교하면 1.5배 더 팔렸다.소형 차부터 중대형 세단까지 줄줄이 나오며 1988년 한국 자동차 총생산량은 100만 대를 넘겼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1990년대 초·중반엘란트라‧에스페로‧세피아 등 아빠 차부터엑센트‧아벨라 등 신세대 차까지 1987년 자동차 수입이 공식 허용되면서 벤츠와 BMW 등 이름만 들어봤던 외제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총성 없는 전쟁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1990년대 초·중반 개방화·세계화 흐름 속에서 한국 자동차 총생산이 250만 대를 넘겼다. 1995년 자동차 생산량은 영국·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을 제치고, 자동차 강국인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다음인 5위를 차지했다.같은 시기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는 500만 대를 돌파했고 국민총소득은 1500만원으로 올랐다. 가정마다 자동차를 한 대씩 보유하는 마이 카(my car) 시대가 열렸다.기아와 대우도 고유 모델을 내놓았다. 기아 세피아와 대우 에스페로다. 당시 자동차 산업을 주름잡았던 현대차·기아·대우 모두가 고유 모델 출시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각 세대를 겨냥한 다양한 모델을 쏟아냈다. 지갑이 넉넉해지면서 그 시대 아버지들은 엑셀·프라이드·르망 등 해치백 스타일의 소형차에서 현대 엘란트라, 대우 에스페로, 기아 세피아 등 세단 형태의 준중형차로 갈아탔다. 특히 엘란트라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엘란트라는 중형급으로 급을 높이기 전 좀 더 나은 패밀리 카로 주목을 받았다. 배기량·성능·크기만이 아니라 스포티한 스타일로 세련미를 강조했다. 화려한 색채는 생동감을 줬다.기아 세피아는 마쓰다의 설계를 응용했지만 마쓰다의 패밀리아보다 균형이 잘 잡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엔진룸과 데크가 짧아 실내 공간도 넓어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예쁘고 색깔 있는 차, 이제 거리에 컬러 혁명이 시작된다’, ‘신세대 신감각’은 현대 엑센트와 기아 아벨라의 광고 문구다. 엑센트와 아벨라는 2030세대를 겨냥해 출시된 모델이다. 당시 2030세대들은 일정한 교육과 미디어 문화를 접해 왔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자식의 욕망을 표현하면서 오렌지족, 감성 세대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이들의 욕망을 차량의 색깔로 자극했다. 과거 엑셀 등의 차량이 무난하고 보편적인 디자인을 구현했다면 엑센트는 주홍색·청록색·진보라색 등 밝고 채도 높은 색으로 승부를 봤다. 아벨라도 진분홍색·자주색·남청색 등 뚜렷한 유채색을 사용했다.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선 현대 아반떼가 인기였다. 아버지의 그랜저나 사회 선배들의 쏘나타와는 다른 차를 원했던 이들은 준중형의 대표 주자 ‘아반떼’를 선택했다. 아반떼는 1990년 출시된 엘란트라의 후속 모델로, 1995년 탄생했다.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베타 엔진을 탑재했다. 베타 엔진은 튼튼한 주철 블록과 가볍고 강성이 뛰어난 알루미늄 합금 헤드가 적용돼 내구성이 우수했는데 자동차 마니아들은 터보차저나 슈퍼차저를 베타 엔진에 이식하기도 했다.현대차는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로 세단 라인업을 완성했다.이에 맞서 대우차는 1990년대 중반 세 가지 차종을 동시 개발하며 경쟁을 벌였다. 1996년부터 차례로 나온 소형 라노스, 준중형 누비라, 중대형 레간자 등이다. 하지만 대우그룹의 몰락 과정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다.1990년대 또 다른 큰 사건은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이다. 사실 삼성은 197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지만 시장의 장벽이 높았고 해외 업체와의 기술 제휴에 실패하면서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1994년 닛산자동차와 기술 제휴에 성공해 1995년 SM5를 내놓으며 쏘나타의 자리를 위협했다. 하지만 외환 위기의 후폭풍으로 프랑스 르노에 매각되는 비운을 맛봤다. 이후 르노삼성이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삼성은 2021년 완성 차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외환 위기 이후어려운 시기 빛난 마티즈와 카니발, 레저 붐과 도시형 SUV의 인기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했다. 자동차 산업도 외환 위기의 풍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대우·대우조선·기아·아시아·현대·현대정공·삼성자동차·쌍용차 등 8개 업체가 경쟁했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외환 위기 후 현대차‧기아와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등 4개사로 재편됐다. 기아는 부도 나고 삼성차는 팔렸다.어려운 시기 소비자들의 소비 키워드는 ‘경제성’이었다. 경제성을 따지자 인기 차종은 두 가지로 분류됐다. 우선 경차. 외환 위기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경차 만한 차가 없었다. 1998년 대우에서 선보인 마티즈는 이 같은 상황에 적중한 모델이었다. 마티즈는 나오자마자 젊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경차라는 이름 대신 마티즈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실내를 캐릭터 상품으로 꾸미고 초보 운전을 알리는 메시지에는 ‘완전 초보’ 등 귀여운 문구가 등장했다.실내 공간은 크지만 연료비가 싼 액화석유가스(LPG)와 디젤 차량이 주목받기도 했다. 1998년 생산된 카니발이다. 카니발은 크라이슬러의 캐러밴과 포드의 윈드스타를 모델로 개발한 차량이다. 저렴한 유지비에 넓은 실내 공간과 가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좌석 등 활용도가 좋았다. 또 각종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단 점도 인기 요인이었다. 2000년대 전후에는 레저 붐이 일었다. 2001년 국민총소득이 2000만원을 넘었고 2002년 금융권에서 주5일제가 처음 도입됐다. 사람들은 치열한 도시에서 벗어나 산과 바다로 나가길 원했다. 각종 짐과 스포츠 장비를 싣고 나가기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만한 차가 없었다.SUV의 대중화는 카니발과 함께 2000년 출시된 현대 싼타페가 이끌었다. 싼타페는 승용차처럼 안정감 있는 주행 성능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같은 해 기아도 쏘렌토를 출시했고 2004년엔 현대 투싼이 나왔다. 대중화는 2000년대 들어 이뤄졌지만 사실 SUV는 1990년대 초반 시장에 나왔다. 처음 출시된 도시형 SUV는 1993년 탄생한 기아의 스포티지였다. 스포티지는 박스형에서 벗어났다. 강하지만 완만한 곡면이 살아있는 부드러운 스타일을 강조했다. 같은 해 쌍용차도 무쏘를 출시했다. 무쏘는 전통적인 오프로드카를 일상생활에 맞게 변형한 차량이다. 다만 차체 무게와 크기에 비해 실내 공간이 좁았다.또 한 가지 짚고 갈 점은 도시형 SUV가 시장에 나오기 전 앞서 나온 모델은 지프차다. 지프차는 험로를 달리며 여행을 즐기기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쌍용차는 1974년 신진자동차와 업무 제휴를 시작해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을 합작 설립하고 그해 5월 신진지프를 선보였는데 이는 훗날 코란도의 전신이 됐다. 1983년 탄생한 코란도는 ‘한국 땅을 뒤덮는 차’, ‘한국을 지배하는 차’ 등의 뜻을 지녔다. 다만 패밀리형 차량을 선호했던 시기 나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았다. 또 지프형 차량은 가격도 비쌌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1996년 출시된 신형 코란도(3세대)는 벤츠 엔진에 독창적인 스타일로 변신하며 대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은 차로 각광받는다. 코란도를 갖고 싶어 쌍용차에 입사했다는 신입 사원이 있을 정도로 절대적 인기를 누렸다. 3세대는 2005년 단종되기까지 36만 대가 판매됐다. 어쨌든 코란도는 한국 SUV의 출발점인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