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오송역에서 내려 세종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줄
KTX 오송역에서 내려 세종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줄
매주 월요일 아침 KTX 오송역을 나서면 사람들이 30~40m 줄을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충북 청주에 있는 오송역에서 세종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이들이 만든 줄이다. 오송역에 KTX가 도착하면 정장을 입은 사람 수십명이 동시에 뛰는 장면도 연출된다. 버스를 타기 위해 달리는 공무원들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정부 청사가 몰려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에 KTX역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정부세종청사를 가려면 KTX 오송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약 30분 더 이동해야 한다.

이런 불편이 10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최근 다시 세종 KTX 설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는 세종시장과 충북지사가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왜 세종에 KTX가 없을까

세종시에 KTX역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2012년 정부세종청사가 입주한 이후 계속됐다. 업무상 서울과 세종을 오갈 일이 많은 공무원들이 답답함을 토로했고, 정부청사를 찾는 민원인들도 문제를 제기했다. 세종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는 KTX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데, 오송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면 최소 30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국무조정실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같은 부처 청사에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서 10분을 더 걸어야 한다. 급한 마음에 오송역에서 택시를 타면 1만5000원이 넘게 나온다. 서울~오송 KTX 요금(1만8500원)에 맞먹는 금액이다.

세종이 아닌 오송에 KTX역이 만들어진 것은 호남고속철도 건설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설립이 별도로 진행된 결과다.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현 세종지)가 결정됐을 때 이미 경부고속철과 호남고속철의 분기역으로 오송역이 결정됐고, 별도 KTX역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충청북도 등은 오송역이 세종시 관문역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일각에서 나오던 별도 역 건립 주장을 반대했다.

KTX 세종역 관련 논란은 2014년 본격화됐다. 당시 세종시는 2030 세종시 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KTX 세종역 신설을 공론화했다. 이후 세종시장 후보들이 공약을 내세웠고, 이춘희 전 시장 등도 이를 반복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늘 경제성이 발목을 잡았다. 2017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실시한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대비편익(B/C)은 0.59를 기록했다. 통상 B/C가 1.0을 넘어야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 세종시가 아주대에 의뢰해 실시한 사전 타당성 조사(2020년 발표)에서도 B/C는 0.86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토부는 2020년 보도자료를 통해 “KTX 세종역은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검토돼 현재 여건 하에서는 역신설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신설 세종역은 부본선(본선 외 정차 등을 위한 별도 선로) 없이 본선에 고속열차를 정차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안전에 취약하다”며 “인접 역 수요 감소 등에 따른 지역간 갈등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다시 불붙은 KTX 세종역 논란

KTX 세종역은 한 동안 수면 아래에 머물렀지만, 최근 다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종에 제2 대통령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다. 세종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 용역을 다시 맡겼고, 최민호 세종시장은 윤 대통령을 만나 KTX 세종역을 설치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세종시는 지난달 6일 열린 한덕수 총리 주재 세종시지원위원회 회의에서도 KTX 세종역을 국가계획을 반영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세종시는 올해 예비타당성조사 결과가 나오면 KTX 세종역 신설 관련 논의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2027년 세종 국회의사당 및 대통령 세종 집무실이 들어서기 전까지 세종역을 설치하겠다는 목표다. 세종시 관계자는 “지난 예비타당성 조사가 이뤄진 2020년만 해도 인구가 크게 늘지 않았고, 세종 대통령제2집무실 및 국회 세종의사당 설립 등도 확정되지 않은 시점이었다”며 “최근에는 세종시와 가까운 유성 인구도 늘어서 2년 전보다도 경제성이 높아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2020년 말 35만6000명 수준이던 세종시 인구는 지난해 말 38만4000명 수준으로 늘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KTX 세종역 신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채익 의원은 지난해 10월 세종시 국정감사에서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들어서면 교통 수요가 증가할텐데 현재 서울과 세종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이 없어 큰 불편이 예상된다”며 “국회도 KTX 세종역이 설치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의원도 “세종시는 명실공히 행정수도가 되는데 KTX 역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현재 진행 중인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고, 충북 등 인근 지자체의 반대도 크다. KTX 세종역이 만들어지면 기존 오송역 등이 타격을 입는다는 이유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최근 SNS에 "세종 KTX역은 기술적으로 설치가 불가능하고, 이미 결론이 난 문제인데 (세종시가) 고집을 하고 있다"며 "충청권의 단결을 세종시가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세종시는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해 하마처럼 공룡이 되어 무한확장해 충청권의 인구를 깎아먹고 있다"며 '충청밉상'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최 시장은 김 지사의 표현에 대해 "정치인, 공직자는 말을 소중히 해야 하며 타산지석으로 오히려 가르침을 받았다"고 받아쳤다. 그는 "세종 KTX 역은 지역 간 분열 문제가 아니다"며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경제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이 나올 것이고, 그에 따라 중앙과 협의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와 최 시장은 지난 5일 국토교통부 장관과 충청권 시·도지사의 회동에서도 세종 KTX역 신설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KTX 세종역이 들어선다해도 정부세종청사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선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 등 때문에 현재 가장 유력한 역 후보지는 금남면 발산리 지역이다. 이 곳에서 정부세종청사까지는 약 6㎞ 거리다. 기존 오송역~정부세종청사 거리(18㎞)와 비교하면 1/3 수준으로 줄지만, 여전히 버스 등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점은 같다. 이밖에 KTX 정차역이 자꾸 늘어나게 되면 열차 속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