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경기침체 조짐이 보이면 기업들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다. 무턱대고 다 줄이는 건 아니다. 여기에도 순서가 있다. 인건비는 뒤에, 홍보·마케팅 비용은 앞에 놓는다.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데 확실하게 도움이 되지 않는 홍보·마케팅 비용은 여지없이 잘린다는 얘기다.

지금 국내 프로골퍼 후원시장이 그렇다. 올해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에 꽁꽁 얼어붙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난해 6승을 거둔 ‘대세’ 박민지(25)가 국내 최초로 ‘후원금 연 10억원 시대’를 여는 등 광고효과가 검증된 ‘빅샷’의 몸값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반면 작년만 해도 따뜻한 겨울을 보냈던 1부리그 중하위권 선수 중 일부는 후원사를 찾지 못한 채 전지훈련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의류 브랜드들도 후원 규모를 줄이고 있는 만큼 ‘빈익빈 부익부’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민지에게 10억원 베팅한 NH

8일 금융권과 골프업계에 따르면 박민지는 작년 말 소속사인 NH투자증권과 ‘계약기간 2년, 연 10억원+α’에 합의했다. 그가 ‘NH 모자’를 쓰고 지난 2년간 12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걸 NH가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지는 2년 연속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6승씩 올렸다. KLPGA 투어에서 연 후원금 10억원 시대를 연 건 박민지가 처음이다.

업계에선 NH가 박민지에게 연봉과 비슷한 규모의 ‘성적 인센티브’도 약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몇 회 이상 우승할 경우 박민지가 NH로부터 받는 돈이 두 배가 된다는 얘기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박민지가 올해도 6승 이상 거둘 경우 인센티브 상한선에 다다르는 보너스를 받을 것”이라며 “여기에 상금, 서브 스폰서 후원금 등을 더하면 연간 30억원 이상 수입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KLPGA투어에서 통산 4승을 거둔 조아연(23)과 5승의 이소미(24)도 새 후원사와 계약했다. 지난해 나란히 2승씩 거둔 이들의 후원금도 지난 계약보다 상당폭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팬이 많은 박현경(23)과 지난해 신인상을 차지한 이예원(20), 첫 우승을 달성한 황정미(24)와 유효주(26) 등은 원 소속사와 재계약을 마치고 전지훈련 길에 올랐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S급(연 7억~10억원)과 A급(5억~7억원) 선수 후원금은 작년보다 줄어들지 않았다”며 “경기가 나빠져도 KLPGA 시청률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S급과 A급 선수들은 TV 화면에 꾸준히 노출되는 만큼 베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다는 얘기다.

중하위권은 골프옷 협찬도 끊길 판

기업들이 쪼그라든 스포츠마케팅 예산을 S급과 A급에 쏟아부으면서 ‘허리급’ 선수들은 스폰서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1부리그 상금순위 40~60위권 선수들의 계약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중하위권 선수들은 올해 소폭 인상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민모자’로 뛰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처지”라고 한숨 쉬었다. 골프단을 운영하는 기업 관계자는 “예산이 줄어든 만큼 ‘가성비’ 좋은 선수들로 선수단을 꾸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같은 돈이면 중하위권 선수를 후원하는 대신 주목도가 높은 특급 신인을 잡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부수입으로 짭짤하던 골프의류 후원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20~30대가 하나둘 골프시장을 떠나면서 골프의류 기업들도 씀씀이를 줄이고 있어서다. 골프의류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광고 효과가 미미해도 웬만한 프로선수들에겐 후원금 없이 옷만 주는 ‘현물 협찬’을 진행했는데, 앞으로는 선별해서 후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