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인 한국에 ‘냉전의 부활’과 블록 경제는 커다란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탈냉전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공식화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기반한 자유무역 질서의 해체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원자재·식량·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에 기반한 세계무역 질서는 미·중 패권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미 상당히 무너져 내린 상태다.

미국은 특히 효과적인 대중 견제를 위해 동맹국과의 연대를 중시하고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통한 새로운 경제블록 형성, 칩4(미국이 주도하는 한국·일본·대만과의 반도체 협의체)를 통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특히 반도체는 첨단산업에 없어선 안 될 핵심 기술이기 때문에 반도체를 통제하면 중국의 ‘기술 굴기(우뚝 일어섬)’는 물론 패권 도전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런 논의에 모두 참여하면서 한·중 간 긴장도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대만 등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와 활발한 통상을 통해 혜택을 본 나라들엔 커다란 위기다. 특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해온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전략적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됐다.

한국은 아직까지 자유진영의 새로운 국제질서 논의에 발을 담그는 동시에 중국과의 대화 채널도 계속 열어두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유지하는 한 한국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단칼에 무 자르듯 자를 순 없지만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도 불가피해졌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