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출범후 금융지주 회장 연임 줄줄이 좌절…우리·BNK·기업은행도 관료 출신 등 거론돼
짙어지는 관치 그림자에 금융노조 "낙하산 저지 투쟁 전개"
NH농협 회장에 이석준…금융권에 '관치·낙하산' 본격 신호탄
NH농협금융 회장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낙점되면서 금융권 인사에 낙하산 신호탄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현 회장이 3연임을 앞두고 사퇴한 데 이어 윤석열 정부 금융권 인사 기조를 점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NH농협 최고경영자(CEO) 인사에서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낙점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관치 금융 행태가 갈수록 노골화되는 가운데 향후 잇따라 예정된 다른 금융기업 인사에서도 이 같은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포함한 전직 관료의 귀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NH농협, 사실상 첫 내부출신 회장 연임 좌절돼
NH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12일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현 손병환 회장의 임기가 연말까지인 만큼 내년 1월 1일부터 이 전 실장이 향후 2년간 NH농협금융을 이끌게 된다.

당초 농협금융 안팎에서는 손 회장이 연임하면서 임기가 1년 더 연장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지난 2020년 3월 NH농협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9개월 만에 지주 회장에 오른 손 회장은 2012년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면서 농협금융이 출범한 이래 사실상 첫 내부 출신 회장이다.

농협 출신인 초대 신충식 회장이 3개월 만에 물러났고, 이후 신동규·임종룡·김용환·김광수 전 회장까지 모두 옛 재무부 관료 출신들이 수장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손 회장 취임 이후 내부 직원들의 신망은 두터웠고, 연임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NH농협금융 회장에 다시 전직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올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새 정부 출범에 공을 세운 경제관료들이 논공행상 차원에서 농협금융 회장 자리에 욕심을 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NH농협 회장에 이석준…금융권에 '관치·낙하산' 본격 신호탄
게다가 2024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연임을 추진하면서 힘 있는 관료 출신을 영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농협중앙회는 2009년 회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으로 인한 비리 등을 막기 위해 연임제를 단임제로 바꿨다.

그러나 최근 다른 기관장과의 형평성, 농협 경영 활동의 지속성 등을 이유로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성희 중앙회장 입장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친분이 있으면서 대선 캠프 초기에 활동했던 이석준 전 실장 카드가 매력적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협중앙회는 그러나 법 개정은 국회 권한인 만큼 이 전 실장 선임이 이성희 회장의 연임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내부에서는 비단 농협중앙회장 연임건 외에도 농협중앙회나 농협금융의 각종 현안을 추진하는 데는 내부 출신보다는 과거 회장들처럼 관료 출신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분위기도 있다.

◇ '구태의연' 모피아·올드보이 귀환 본격화되나
이른바 5대 금융지주 중 NH농협금융은 외풍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실제 손병환 회장 외에 전직 회장들은 관료 출신이었던 만큼 낙하산 인사가 딱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내부 출신 회장이 단명했다는 점이다.

좋은 선례를 이어가지 못한 만큼 앞으로도 낙하산 인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NH농협금융 사례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신한금융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정부 입김이 커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신한금융 내부는 물론 금융권에서도 조용병 현 회장의 3연임(세번째 임기)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예상을 깨고 조 회장은 지난 8일 스스로 후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결국 진옥동 현 신한은행장이 낙점됐다.

갑작스러운 조 회장의 후보 사퇴와 진 행장 후보 선임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정부와의 교감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조 회장의 결단이 형식상 자진 사퇴지만 정부 눈치를 본 결과라는 것이다.

NH농협 회장에 이석준…금융권에 '관치·낙하산' 본격 신호탄
실제 윤석열 정부 들어 금융당국은 연일 금융지주 및 은행권 인사와 관련해 관치금융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금융 손태승 회장을 둘러싼 징계 문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9일 정례회의를 열고 라임펀드를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한 우리은행에 대해 업무 일부 정지 3개월, 손 회장에 대해 문책경고 상당의 제재를 내리기로 의결했다.

당장 금융권에서는 금융위가 1년 6개월간 미뤄왔던 징계를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이 손 회장을 밀어내고 특정 인사의 낙하산 인사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금융권에서 손 회장 후임으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전직 금융당국 수장 출신 여러 관료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중징계를 받은 손 회장이 소송을 통해 연임을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이런 관치금융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원장은 지난달 14일에는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 모아 CEO 선임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 원장은 금융사 지배 구조의 핵심축인 이사회와 경영진의 구성 및 선임과 관련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고 강조하면서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 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각 금융사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금융지주 회장들이 마치 재벌그룹 총수처럼 장기 연임하는 데 윤석열 정부가 불만을 갖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NH농협 회장에 이석준…금융권에 '관치·낙하산' 본격 신호탄
◇ BNK금융·기업은행장 후보에도 이팔성·정은보 등 올드보이 거론돼
이같은 노골적인 관치·낙하산 인사는 당분간 금융권 인사에서 계속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자녀 관련 특혜 의혹을 받는 BNK금융지주 김지완 회장이 임기를 5개월 앞둔 지난달 사퇴를 결정하면서 BNK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현재 공석이다.

BNK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오는 13일 차기 회장 1차 후보군(롱리스트)을 확정할 예정인데, 내부 출신과 함께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등 외부 출신의 낙하산 가능성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1월 2일 임기가 끝나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후임 인사도 관심사다
기업은행장의 경우 금융위원장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통해 선임된다.

현재 기업은행 안팎에서 윤 행장의 후임으로 관료 출신 외부 인사인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도규상 전 금융위 부위원장 등이 김성태 현 기업은행 전무, 최현숙 IBK캐피탈 대표 등 내부 인사들의 이름과 함께 오르내린다.

NH농협 회장에 이석준…금융권에 '관치·낙하산' 본격 신호탄
노골화되는 관치 낙하산 인사 분위기에 노조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금융권 모피아 낙하산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10만 조합원 단결대오로 낙하산 저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대통령의 철학과 다르게 금융권 낙하산이 연이어 거론된다.

BNK금융지주의 경우 이사회 규정까지 바꿔 외부출신 최고경영자 임명을 준비하고 있고 기업은행은 직전 금융감독원장의 행장 임명이 유력하다는 설이 있다"면서 "법에 의한 공정이 아니라 법을 이용한 불공정"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