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팀쿡 달려갔다…TSMC "美반도체 투자 3배로"
파운드리 격전지 된 미국
애플 "미국산 칩 첫 고객 될 것"
"TSMC 없으면 우리도 없다"
AMD·엔비디아 CEO도 찬사
'슈퍼 乙' 위상 보여준 TSMC
'대만 내 생산' 창업 원칙 깨고
120억弗→400억弗 투자 확대
"실익 없다" 경영진 속내는 착잡
‘슈퍼 갑’ 애플도 고개 숙이는 TSMC
TSMC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가 설계한 칩을 주문대로 만들어주는 파운드리업체다. 고객 체형에 따라 디자인한 양복을 딱 맞게 제작하는 재단사처럼 고객사가 원하는 기능의 칩을 적시에 생산하는 게 파운드리 경쟁력의 척도다.1987년 사업을 시작한 TSMC는 단순히 고객의 요청대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축적한 생산 노하우를 활용해 고객사의 설계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데 주력했다.
이뿐만 아니다. TSMC는 역량 있는 후공정(반도체를 기기에 부착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 업체까지 연결해주며 고객사에 한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같은 기술·서비스 경쟁력을 앞세워 TSMC는 시장점유율 53.4%(올 2분기 기준)로, 파운드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품질을 꼼꼼히 따지고 여차하면 ‘납품가 후려치기’로 유명한 애플도 유독 TSMC 앞에선 큰소리를 못 친다. TSMC가 없으면 자사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칩의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어서다. 엔비디아, AMD 같은 반도체 큰손들도 TSMC에 “우리 제품을 생산해달라”고 읍소한다. TSMC가 반도체업계의 ‘슈퍼 을’로 불리는 이유다.
“TSMC 없으면 우리도 없다”
원래 TSMC의 기본 생산 전략은 ‘자국 내 생산’이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지켜온 원칙이다. 기술 노하우 유출을 막고 근면한 대만 근로자들을 생산시설에 투입해 고성능 칩을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반도체가 전략물자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2~3년간 미국 정부는 ‘메이드 인 USA’ 반도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압박을 못 이긴 TSMC는 2020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17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신축하기로 했다. 이날 열린 이 공장의 장비 반입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미국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 팀 쿡 애플 CEO,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리사 수 AMD CEO 등 반도체업계 거물들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TSMC의 칩은 세계 최고”라며 “미국의 제조업이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CEO들도 TSMC를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젠슨 황은 TSMC에 대해 “반도체 회사 그 이상의 기적을 이뤄내는 기업”이라고 평가했고 리사 수는 한술 더 떠 “TSMC 없이는 우리 사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팀 쿡은 “TSMC의 미국 공장에서 제조된 칩을 구매하는 첫 고객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내부에선 “미국 공장 실익 없다”
TSMC도 화답했다. 이날 마크 리우 TSMC CEO는 “12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400억달러까지 늘리겠다”며 “공장도 하나 더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장에 구축하는 생산 라인도 5나노미터(㎚·1㎚=10억분의 1m)에서 4㎚ 공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2026년부터는 3㎚ 공정에서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TSMC 고위 경영진의 속내는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러브콜에 화끈한 투자를 결정했지만 업황 악화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반도체 수요가 꺾이며 UMC, 글로벌파운드리즈 같은 3~4위권 파운드리업체들은 투자 축소와 인건비 절감에 나섰다. 업황 부진이 지속되면 TSMC에도 대규모 투자가 부메랑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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