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8% 진입을 눈앞에 뒀던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연 7% 초반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완화되고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대출금리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 의존도가 높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건전성 우려도 나온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 연 7% 밑돌아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이날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연 5.25~7.36%로 집계됐다. 이들 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지난달 11일 연 5.18~7.71%까지 올랐다가 점차 하락하면서 금리 상단이 0.35%포인트 낮아졌다.
고정형(혼합형) 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6% 후반대까지 내렸다. 이날 5대 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연 4.85~6.85%로 지난달 11일(연 5.30~7.27%)과 비교하면 상·하단이 0.42~0.45%포인트 하락했다. 신용대출 금리(신용등급 1등급 기준) 하단도 연 6% 초반까지 떨어졌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대출금리 책정 기준인 금융채 금리 상승세가 꺾인 게 주담대 금리를 끌어내렸다. 고정형 주담대 지표금리인 금융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는 지난달 8일 연 5.262%까지 치솟았지만 지난 6일엔 연 4.707%로 하락했다. 신용대출 금리와 일부 변동형 주담대 금리 산정에 반영되는 금융채 6개월물(AAA·무보증) 금리도 같은 기간 연 4.611%에서 연 4.499%로 내려갔다.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과 대출금리 상승을 우려한 금융당국이 은행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권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뜻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해 대출금리도 덩달아 뛴다. 당국은 올해 3분기 기준 187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금융사 대출금리까지 모니터링하는 등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다.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산정하는 가산금리를 낮춰 대출금리를 내리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가산금리를 내리고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2금융권 건전성 우려도
예금금리 인상 자제령에 이어 대출금리 규제까지 시행되자 저축은행 등 2금융권 금융사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저축은행 1년 만기 기준 정기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는 6.09%포인트를 기록했다. 9월(7.27%포인트)에 비해 1.18%포인트 내렸다. 올 들어 처음으로 저축은행 예대금리차가 전달보다 하락했다.
금융권에서는 제2금융권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국이 신용협동조합 등 상호금융권에도 고금리 특판 상품 출시를 자제할 것을 주문하면서 수신 자금을 끌어올 통로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2금융권은 단순 예대마진 수익 의존도가 높다. 일각에선 예대금리차가 계속 줄어들면 대출에 따른 수익보다 지급할 예금 이자가 더 많아지는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자금시장의 ‘돈맥경화’를 이유로 예금금리 인상에 제동을 건 데 이어 대출금리 모니터링에 들어가면서 금융업계에서 ‘관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을 억제하는 금융당국의 개입이 예금자들의 손해는 물론 금융시장의 혼란을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장금리 왜곡 우려 커져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지난달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지만 은행 예금금리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경고 이후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떨어뜨리며 수신 경쟁을 포기하자 저축은행도 앞다퉈 예금금리를 내리고 있다. OK·다올·애큐온·상상인 등 주요 저축은행 예금금리가 연 5%대로 주저앉았고 시중은행에선 연 5%대 정기예금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올해 들어 기준금리는 지속적으로 올랐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가파른 물가 상승 탓에 작년(-1.42%)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다.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는 지난 6월 -3.59%까지 내려갔다. 은행에 예·적금을 들었더라도 물가상승분만큼 이자를 받지 못해 실질적으론 손해를 본 셈이다. 10월엔 은행 수신금리가 연 4.01%까지 상승해 그나마 실질금리가 -1.69%로 올랐다. 노후 자금 3억원을 은행에 예치 중이라는 70대 은퇴자 김모씨는 “연 4% 금리라고 해도 이자소득세(15.4%)를 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이자는 연 1000만원에 그친다”며 “요즘 물가로는 부부가 살기에도 빠듯한 형편”이라고 했다.금융당국이 개별 금융회사들의 대출금리 모니터링을 통해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려는 점도 논란거리다. 대출금리 인상은 전체 가계대출의 70%를 차지하는 변동금리 대출의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10월 코픽스(신규 취급액 기준)는 3.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금리를 거스르는 대출금리 인하는 은행의 정상적인 영업을 방해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금융시장 왜곡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돈맥경화·가계부채’ 고육지책금융당국이 예금·대출금리 인상 억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은 막으면서 동시에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고육지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10월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9월보다 56조2000억원이나 불었다.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높은 이자를 주는 고금리 예금이 늘어날수록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은 증가한다. 은행 고금리 예금 증가→코픽스 인상→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대출금리가 오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1756조8000억원(카드 대금 제외)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게 된다. 한은은 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전체 차입자의 이자가 약 3조30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대출금리는 계속 오르는데 예금금리만 뒷걸음질하면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커진다는 점도 당국이 예금금리는 물론 대출금리 규제까지 나선 배경으로 꼽힌다.김보형/빈난새 기자 kph21c@hankyung.com
시중은행에 이어 저축은행도 예금 금리를 내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을 막기 위해 예금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면서 금융권의 수신 경쟁 요인이 줄어든 영향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을 무시한 채 예금 금리를 억누르는 ‘관치 금융’에 노년층 이자생활자 등 예금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예금자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5.52%로 전날보다 0.01%포인트 하락했다. 2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연 5.01%로 1주일 새 0.5%포인트 내렸다.저축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지난달 23일 연 5.53%로 정점을 찍은 뒤 전날까지 제자리걸음했다. 업계 2위인 OK저축은행은 최근 1개월 새 ‘중도해지 OK정기예금’(-0.70%포인트)과 ‘OK법인대박통장’(-1.0%포인트) 등 주요 예금 상품 금리를 낮췄다. 상상인저축은행은 최고 연 6.1%였던 회전정기예금 금리를 연 5.9%까지 내렸다.은행권에서는 연 5%대 정기예금이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13일 연 5.18%로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중 가장 먼저 ‘연 5%’를 뚫었던 우리은행 ‘우리 WON플러스 예금’ 금리는 이날 연 4.98%로 낮아졌다. 국민은행 ‘KB 스타정기예금’도 지난달 14일 연 5.01%를 찍은 뒤 연 4.70%로 뒷걸음질쳤다.올 들어 기준금리 인상 효과로 예금 금리가 올랐지만 가파른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예금은행 저축성 수신금리는 연 4.01%로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하지만 같은 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보다 5.7% 상승해 실질금리는 -1.69%로 집계됐다. 은행에 예금을 맡겨도 물가 상승으로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금리 인상기에 예금 금리만 뒷걸음치면 예금 이자로 생활하는 퇴직자와 노년층의 피해가 커진다”고 지적했다.김보형/빈난새 기자 kph21c@hankyung.com
대기업인 A사는 지난 10월 은행으로부터 시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5년 이상 장기로 대출받았다. 시설자금은 기업의 공장이나 설비 확충을 위해 쓰이는 자금으로, 일반적으로 1~3년 내 상환한다. 5년 이상 장기로 대출을 받은 건 이례적이다. 상환 기간이 길어진 만큼 대출금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A사는 연 5%가 넘는 금리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0월 대기업 대출 평균 금리(연 5.08%)가 전달 대비 0.7%포인트 급등했는데, A사의 대출이 영향을 미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금 조달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기업도 자금난에 허덕이는 모습"이라고 했다.지난 10월 은행에서 자금을 빌린 대기업의 절반은 대기업 대출 평균 금리 이상으로 대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월 연 5% 이상 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은 대기업은 48.1%에 달했다. 전달 같은 조건으로 대출받은 대기업은 40.6%였다. 한 달 사이 대출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졌다는 분석이다.연 5% 이상 금리로 대출받은 대기업 가운데 금리 수준별로 살펴보면 △연 5~6% 미만은 32.9% △연 6~7% 미만은 12.6% △연 7~8% 미만은 2.4% △연 8~9% 미만은 0.2%였다.1년 전과 비교하면 상황은 크게 악화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기업 평균 대출금리는 연 2.67%였다. 당시 은행에서 대출받은 대기업의 76.4%가 연 3% 미만 수준으로 돈을 빌렸다. 평균 대출금리 이상인 연 3% 이상으로 대출받은 대기업은 23.6%에 불과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대출금리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금리 측면에서 대기업이 과거와 달리 대출 우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중소기업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지난 10월 연 5% 이상 금리로 대출받은 중소기업은 69.5%였다. 이 중에서 △연 5~6% 미만은 40.6% △연 6~7% 미만은 22.2% △연 7~8% 미만은 4.8% △연 8~9% 미만은 1.1%였다. 연 9% 이상 초고금리로 대출받은 중소기업(0.8%)도 있었다.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