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스케치북 '페더' 개발 김용관 스케치소프트 대표

대단한 손재주꾼이 아니라도 문제없다.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그리고 싶은 걸 선(線)으로 표현하면 된다.

그러면 2차원(2D)의 태블릿 표면에 그린 선이 입체성을 가진 3차원(3D) 창작물로 만들어진다.

신생 스타트업인 ㈜스케치소프트가 지난달 1일 정식으로 출시한 클라우드 기반의 3D 스케치 소프트웨어(SW) '페더'(Feather)로 구현되는 현실이다.

스케치소프트는 개발을 마치고 1년 3개월간의 검증 과정(베타 테스트)을 거친 페더를 애플리케이션(앱)과 웹 버전으로 세계 시장에 무료로 내놓았다.

페더는 출시 1주일여 만에 애플 앱스토어 디자인 부문에서 내려받기 20위권에 들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3D 모델링(설계)을 하는 데 필요한 값비싼 장비가 없더라도 태블릿과 펜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는 디지털 3D 창작 도구로 호평을 받은 영향이다.

[스타트업 발언대] 선(線)만 이어주면 3D 창작물로
디자인 창작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 가는 김용관(31) 스케치소프트 대표를 지난달 25일 팁스타운 사무실에서 만나 창업 동기와 페더 개발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민관협력 사업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로 일대에 조성된 팁스타운은 유망 스타트업들이 독립형 업무공간으로 활용하는 대규모 시설이다.

◇ 어떤 상상도 바로 그린다…선 그으니 금세 3D 그림으로
"이 화면 위에 선을 하나 그려 놓으면 선이 눈 바로 앞에 있는지, 저 멀리 떨어져 있는지 (원근을) 알 수 없겠죠.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추가하면 입체감을 나타낼 수 있어요.

컴퓨터가 이런 정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이렇게 다른 시점(視點)에서 한 번 더 그리면 입체로 바뀝니다.

옆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생겼고 위에서 봤을 때는…."
김 대표가 직접 아이패드를 사용해 시연한 페더의 작동 메커니즘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격자무늬가 바탕으로 깔린 아이패드 화면에 펜과 손가락 놀림만으로 손쉽게 입체화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펜으로 선을 쓱쓱 그어 이어주니 2차원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손가락으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2차원 이미지를 계속 더하자 평면 형상의 꽃 한 송이는 순식간에 입체적으로 변모했다.

김 대표 설명에 따르면 소프트웨어가 입력된 선에 맞춰 자동으로 면을 생성하고 입체화하기 때문에 원근법을 배우지 않아도 선만 잘 그리면 3D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사용자 환경(UI)이 단순해 머릿속 아이디어를 3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해 익혀야 할 복잡한 기능과 불필요한 버튼이 적은 것도 페더의 장점으로 꼽힌다.

데이터 호환 기능을 갖추어 페더로 만든 3D 창작물을 전문가들이 주로 쓰는 오토캐드(AutoCAD) 같은 다른 SW로 옮겨 한층 정교한 형상으로 가공할 수도 있다.

[스타트업 발언대] 선(線)만 이어주면 3D 창작물로
SW 브랜드명인 페더의 사전적 의미는 새의 깃털이다.

창작에 뜻을 둔 모든 사람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3D 창작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김 대표의 염원을 담은 작명이다.

김 대표는 창업 3주년을 앞두고 자신의 꿈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페더를 이용해 누구나 손쉽게 머릿속 생각을 3차원 형상으로 펼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표현하고 싶은 게 떠오를 때 페더를 사용하면 종이에 수십 장 그리는 것보다 한층 즐겁고 편하게 3D 이미지를 창작할 수 있게 됐어요.

"

◇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3D 창작 도구
김 대표는 페더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기존의 3차원 디자인 창작 기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입체(3차원) 이미지는 통상 3가지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

종이와 펜을 이용한 스케치가 그 가운데 하나다.

가장 원시적이라 할 수 있는 이 방법은 간편하지만, 입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일일이 그려 넣어야 한다.

3D 디자인에 특화된 오토캐드 같은 SW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SW 가격이 비싸고 조작 기술 배우기가 쉽지 않아 범용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다른 하나는 실물 모형을 제작하는 것이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많은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가 집단인 건축설계사나 디자이너는 물론 일반인도 쓸 수 있는 3D 창작 도구로 고안된 것이 페더라는 설명이다.

[스타트업 발언대] 선(線)만 이어주면 3D 창작물로
페더를 작동시키는 요소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태블릿 같은 디바이스를 통해 누구나 간편하게 쓸 수 있는 형태로 3D 창작 도구를 상용화한 것은 페더가 처음일 것이라고 김 대표는 전했다.

그는 미국 스타트업 멘탈캔버스가 태블릿을 사용하는 3D 스케치 SW를 내놓았지만, 이를 사용해 만든 창작물은 2차원 평면에 그린 데이터를 3차원상에 배치한 것이기에 표현할 때부터 바로 입체형상이 생성돼 저장되는 페더가 3차원 아이디어 표현에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자평했다.

그런데도 스케치소프트는 페더를 여전히 '만들고 있다'고 진행형으로 표현한다.

그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페더로 할 수 있는 3차원 스케칭이 현 단계에선 멈춰 있는 정적인 형상으로 제한되는 점을 들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움직임 표현과 애니메이션 만들기 기능을 추가하고, 클라우드 기반을 활용해 여러 명이 실시간으로 그리는 3차원 스케치를 AR, VR 등으로 확인하며 협업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더해 나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 건축·車 설계, 디지털 콘텐츠 제작 등 활용 분야 무궁무진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로봇 만드는 걸 꿈꿔온 김 대표는 과학고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해 석·박사 통합 과정까지 마쳤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연구원 생활을 1년 남짓 하다가 2020년 2월 전격적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원 시절에 3D 스케치 기술을 접한 것이 창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종이에 그린 2D 스케치에서 3차원 모델링(설계)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길고 복잡합니다.

이걸 쉽고 빠르게 하는 방법을 5년 가까이 연구했는데, 아무리 연구를 많이 하고 논문을 써서 발표해도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컸죠."
그래서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자신이 연구한 기술이 실제 사용자들과 만나게 할 방법으로 창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발언대] 선(線)만 이어주면 3D 창작물로
김 대표는 페더를 유용하게 쓸 주된 사용자층으로 3차원 창작에 몸담은 전문가들을 우선 꼽는다.

입체적인 조감도가 있어야 하는 건축이나 자동차 등의 제품 설계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유망한 영역으로는 급속히 성장하는 메타버스 관련 산업과 교육시장을 들었다.

김 대표는 일반인이 3차원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창작하는 일이 점점 더 보편화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 교육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스타트업 발언대] 선(線)만 이어주면 3D 창작물로
◇ 광고 수익모델 배제 이유…"창작은 몰입이 중요"
세계 시장에 페더를 무료로 내놓은 스케치소프트는 기본적으로 무료 제공 원칙을 고수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3D 스케칭 기술 자체가 아직 보편화하지 않은 상태여서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수익 모델을 갖춰야 하기에 유료 구독 모델도 강구하고 있다.

내년 중 선보일 유료 구독 모델은 특정 산업군이나 전문 분야에서 필요한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3D 그림을 그리는 필수적인 기능을 계속 무료로 제공하겠지만 상업적 창작이나 전문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경우 등은 구분해 유료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페더에 광고를 얹는 수익 모델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창작은 몰입이 중요하죠. 여러 수익 모델을 검토할 수 있지만 정말로 그림 그리는 순간만큼은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스타트업 발언대] 선(線)만 이어주면 3D 창작물로
스케치소프트는 3D 콘텐츠 수요를 키우는 메타버스 산업을 배경으로 한 페더의 시장 장래성에 힘입어 지난해 8월 소프트뱅크벤처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등 유력 투자사들로부터 시리즈 A 단계로 38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 자금을 활용해 제품 안정화와 추가 기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페더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김 대표는 이미지 편집 도구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Adobe)가 200억 달러(약 28조원)에 올 9월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디자인 SW 스타트업 '피그마'(Figma)에 필적하는 3차원 창작 협업 도구로 페더를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메타버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이런 트렌드들은 3D 정보를 소비하고 유통하는 데 집중돼 있죠. 페더는 이런 3차원 정보를 누구나 직접 창작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3차원 창작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공유하면서 3차원 창작물로 소통하고 협업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