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CJ제일제당이 상품 납품 단가와 마진율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쿠팡은 비비고 만두와 햇반 등 CJ제일제당 주요 상품의 발주를 중단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유통시장에서의 장악력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제판(제조사·판매사) 전쟁’이 유통 최강자로 떠오른 e커머스와 제조업 분야 1위 업체 간에 치열하게 전개되는 추세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비비고 만두와 김치, 햇반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 발주를 중단했다. 아직은 쿠팡에서 CJ제일제당 제품이 팔리고 있지만, 재고가 소진되면 판매는 중단된다.

CJ제일제당은 “내년에 적용될 상품 마진율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쿠팡이 일방적으로 발주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발주를 중단한 건 마진율 협상 문제가 아니라 CJ제일제당의 계약 불이행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초부터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인해 햇반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차례로 인상해왔다. “CJ제일제당이 가격 인상 전에는 계약한 물량보다 적은 양의 상품을 공급하다 가격을 인상하고 나서야 물량을 늘리는 행태를 보였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유통·식품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가격 결정권 등을 쥐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던 양사 간 신경전이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최저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쿠팡은 경쟁 유통업체보다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것을 제조사에 요구하고 있다. 제조사는 “유통업체에 끌려다닐 수 없다”며 버티는 상황이다.

쿠팡은 LG생활건강과도 비슷한 문제로 다툼을 벌인 바 있다. LG생활건강은 “쿠팡이 다른 온라인 유통업체에 판매하는 가격은 올리고, 쿠팡에 납품하는 가격은 무리하게 낮추라고 했다”며 2019년 쿠팡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쿠팡은 “생활용품 업계 1위인 LG생활건강이 쿠팡에만 가격을 더 비싸게 납품하는 식으로 우월적인 지위를 활용했다”고 맞섰다.

e커머스와 제조사 간 주도권 전쟁은 패션·명품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에르메스, 나이키 등은 최근 약관에 ‘재판매 금지’ 조항을 포함했다. 최근 리셀(되팔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명품회사가 쥔 가격 결정권이 스탁엑스 같은 플랫폼으로 넘어가려는 조짐이 보이자 내린 조치다. 업계 관계자는 “e커머스 강자들은 비대면 쇼핑이 일상화한 이후 대형마트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제조사들에 행사하고 있다”며 “주요 소비재업체가 e커머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