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쿠팡서 '햇반' 못 산다…CJ 제품 발주 중단 '초강수' [박종관의 유통관통]
쿠팡과 CJ제일제당이 상품 납품 단가와 마진율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쿠팡은 비비고 만두와 햇반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상품 발주를 중단하는 등 초강수를 던졌다. 가격 결정권을 쥐기 위한 '제통(製通·제조사와 유통사)' 전쟁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비비고 만두와 김치, 햇반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 발주를 중단했다. 쿠팡에서 아직 CJ제일제당 제품을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추가 발주를 중단한 상황이라 가진 재고가 소진되면 판매는 중단된다.

CJ제일제당은 "내년도 상품 마진율 협상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벌어지자 쿠팡이 일방적으로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고 주장한다. 쿠팡은 "상품 발주를 중단한 건 마진율 협상 문제가 아닌 CJ제일제당의 계약 불이행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CJ제일제당은 올 초부터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인해 햇반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차례로 인상해왔다. CJ제일제당이 가격 인상 전에는 계약한 물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으로 상품을 공급하다가 가격을 인상한 뒤 상품을 대거 공급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의 납품률은 50~60%대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개의 상품을 공급하기로 약속했으면 50~60개밖에 공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형 식품업체의 평균 납품률은 90% 수준이다.

양측은 상대방이 "갑질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가격 결정권을 쥐기 위한 신경전으로 보고 있다. '업계 최저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쿠팡은 경쟁 유통업체보다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것을 제조사에 요청하고 있다. 반면 제조사는 "유통업체에 가격 결정권을 빼앗기고, 끌려다닐 수 없다"며 버티는 상황이다.

쿠팡은 과거 LG생활건강과도 비슷한 문제로 다툼을 벌였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쿠팡을 공정거래법 및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했다. 쿠팡이 판매 가격을 무리하게 낮추라고 요구했다는 게 LG생활건강 측 주장이었다.

공정위는 2년 넘게 조사를 이어간 끝에 LG생활건강의 손을 들어줬다. 쿠팡은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선 쿠팡과 LG생활건강 사이의 전쟁은 사실상 쿠팡의 승리로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쿠팡과의 거래 종결을 선언했던 LG생활건강이 최근 쿠팡 측에 입점 요청을 지속해서 보내고 있어서다.

유통업체와 제조사와의 전쟁은 패션·명품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에르메스와 샤넬, 나이키 등은 최근 약관에 '재판매 금지' 조항을 포함했다. 최근 리셀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제조사가 쥐고 있던 가격 결정권이 리셀 플랫폼 등으로 넘어가면서 내린 특단의 조치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