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는 고용노동부가 30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관련, 정책 방향이 사후 규제·처벌에서 자기 규율 예방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개선책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은 노동 규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추광호 경제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하는 정책 방향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행법의 합리적 개선 없이 위험성 평가 의무화가 도입되면 기업에 대한 '옥상옥'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대재해법은 적용대상과 범위가 모호하고 처벌이 지나치게 높아 현장 혼란만 가중하고, 중대재해 수도 줄이지 못하고 있다"며 "향후 입법과정에서 로드맵의 취지가 잘 반영되도록 기업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안전 주체의 자기 규율과 예방 역량을 기본원칙으로 삼은 데 대해서는 경영계도 공감한다"면서 "하지만 로드맵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자율은 명목뿐이고 오히려 처벌과 감독을 강화해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총은 위험성 평가 의무화에 대해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중복규제 정비, 자의적 법 집행 방지를 위한 명확한 기준 마련 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는) 또 다른 규제에 불과할 뿐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개선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중대재해법에 따른 현장 혼란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이른 시간 안에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전 세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중대재해법과 산안법의 강한 처벌 규정을 그대로 둔 채 위험성 평가 의무화를 통한 새로운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 규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는 "위험성 평가 의무화는 중대재해법의 처벌 수준을 완화하거나 중대재해법과 산안법의 일원화 등 법률 체계 정비와 함께 점진적이고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의무설치 대상을 기존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가뜩이나 자금·인력난에 시달리는 영세 중소기업들의 행정 부담을 가중할 우려가 크므로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의 논평에서 "안전책임 주체인 노사 책임에 기반한 자기 규율과 예방역량 향상 지원이라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기본원칙에 공감한다"면서 "다만 처벌 중심에서 예방 감독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성 제고와 인원 확충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로드맵에 담겨 있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과 과잉처벌 문제에 대한 개선 방향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적 제재까지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처벌중심의 감독이 이어질까 우려된다"며 "정부가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 등 보완 입법에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대재해 로드맵을 통해 오는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수준인 10만명 당 2.9명인 0.29 퍼밀리아드까지 감축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장관은 30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이 장관은 "자기 규율 예방 체계가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관된 정책을 지속 추진함으로써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겠다"고 강조했다.이어 "독일, 영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은 각각 0.07, 0.08 퍼밀리아드로우리의 1/5~1/6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자기규율 예방체계는 선진국의 중대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고 진단했다.이 장관은 "정부가 제시하는 하위 규범과 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할 것"이라며 "위험성평가를 핵심 위험요인 발굴, 개선과 재발 방지 중심으로 운영하고 오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장관은 "위험성평가 제도가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안전보건법령과 감독 체계를 전면 개편할 것"이라며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획 감독을 통해 엄중한 결과 책임을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중대재해는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에서 80.9%, 업종 별로는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72.6%, 사고유형별로는 추락, 끼임, 부딪힘이 62.6%, 원·하청별로는 하청에서 40%가 발생하고 있다.이 장관은 "건설업과 제조업은 위험한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AI 카메라, 건설 장비 접근경보 시스템, 추락 보호 복 등 스마트 장비, 시설을 집중 지원하고 근로자 안전확보 목적의 CCTV 설치도 제도화하겠다"고 언급했다.이 장관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참여의 중심기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대상을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현장 근로자의 안전 개선 제안 활동과 작업 중지를 활성화하고 명예산업 안전감독관 위촉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정부는 이와 관련해 위험성 평가 결과가 현장 근로자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을 진행하고 위험성평가 결과가 실시간 공유되는 모바일 앱을 개발 및 보급할 방침이다. 또 오는 2026년까지 사업장 내에 CPR이 가능한 근로자를 50%까지 확대하는 등 응급의료 비상 대응체계를 정비할 예정이다.이민재기자 tobemj@wowtv.co.kr
국민의힘과 정부가 국내 중대 재해 발생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까지 낮추기로 뜻을 모았다.성일종 정책위의장은 28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 재해감축 로드맵' 당정협의회 종료 후 브리핑에서 당정이 국내 중대재해 사고사망 만인율을 2026년까지 OECD 38개국 평균인 0.29까지 낮추는 것으로 목표로 관련 정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사고사망 만인율은 근로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를 의미한다. 지난해 국내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이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당정은 기존의 규제·처벌 중심에서 사업주와 근로자가 모두 책임을 지는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노동 안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당은 이를 위해 공공부문에서 낙찰 금액이 아닌 설계 금액이 하청업체에 그대로 지급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성 정책위의장은 "예를 들어 설계 금액이 100원인데, 낙찰 금액이 70원이라고 하면 30원이라는 안전 금액이 깎이는 것"이라며 "깎이지 않고 (설계 금액대로) 지불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해달라고 했다"고 강조했다.또 중대 재해율이 높은 중소기업과 건설·제조·하청 현장에 정부의 안전 관련 예산·장비 지원을 더 집중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성 정책위의장은 "인공지능(AI) 카메라나 웨어러블 에어백 조끼와 같은 스마트안전 장비와 시설을 집중 보급할 수 있도록 여러 측면에서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앞서 성 정책위의장은 당정 협의회 모두발언에서 "우리나라 사망사고 발생률은 지난 20년간 3분의 1 수준으로 줄기는 했지만, OECD 38개국 중에서는 34위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매년 800명 이상의 소중한 생명이 중대재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이어 "하청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가 40%에 달하고 있고, 고령자나 외국인 특고(특수고용 노동자) 등 취약계층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또한 중소기업, 건설·제조업 분야서 중대재해가 집중돼 실질적인 대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금리 급등과 증시 침체 등으로 투자은행(IB)업계가 한파를 맞으면서 대형 로펌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높은 성장률의 토대가 됐던 인수합병(M&A)과 투자 유치 등 기업들의 투자 관련 자문 일감이 1년 만에 급감해서다. 기세등등했던 로펌들의 성장세가 한풀 꺾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년 만에 불어닥친 ‘찬바람’20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이뤄진 국내 경영권 이전(바이아웃) 거래는 총 28조588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4% 감소했다. 금리 상승에 따른 인수자금 조달 부담 증가와 증시 침체로 인한 기업 몸값 하락 등이 겹친 여파다. 매수자와 매도자 측 모두 관망하는 분위기가 펼쳐지면서 거래 자체가 줄었다는 평가다.거래가 급감하면서 로펌들의 M&A 법률자문 실적도 대폭 줄었다. 지난해 1000억원 이상 매출을 거둔 국내 7개 로펌 중 올해 M&A 법률자문 실적(9월 말 누적 기준)이 전년 동기보다 늘어난 곳은 세종 한 곳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앤장법률사무소와 태평양, 광장, 율촌, 화우, 지평 등 나머지 6곳 모두 지난해만 못 한 실적을 냈다. 한 대형 로펌 M&A 담당 변호사는 “특히 하반기 들어 신규 딜이 씨가 마르면서 법률자문 수임 기대를 접은 일부 변호사는 장기 휴가를 떠났을 정도”라며 “적어도 내년 초까진 가뭄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기업들의 투자 유치 관련 자문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9월 국내 기업이 IPO(기업공개)와 유상증자 등 신주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20조25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7% 감소했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분위기도 꽁꽁 얼어붙었다. 9월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자금 규모는 3816억원으로 올 들어 처음 5000억원을 밑돌았다. 내년엔 분쟁·구조조정 효과 보나이 같은 상황에서 중대재해 자문이 새 수익원으로 등장해 기업 투자 관련 자문의 부진을 다소 상쇄하고 있다.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로펌을 찾는 기업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후 9월 30일까지 발생한 중대재해는 총 443건에 달한다.일감이 꾸준히 증가하는 금융규제 분야도 효자로 꼽힌다. 각종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및 환매 중단 사태에 따른 소송·자문 수요가 여전한데다 핀테크, 암호화폐,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새로운 금융산업이 탄생하면서 관련 규제 리스크를 파악하려는 기업이 적지 않다.검찰이 5월 이른바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키는 등 금융범죄에 대한 강력한 수사 의지를 보이는 것도 금융규제 자문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그럼에도 M&A 자문 등이 줄어든 충격을 완전히 보완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 어느 정도의 성장세 둔화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어두운 경기 전망에도 로펌들은 내년엔 영업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금융, 증권, 부동산 등 주요 시장이 침체된 여파로 이해관계자 간 분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9월 미래에셋금융그룹과 브룩필드자산운용이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매매 무산에 따른 보증금 반환 여부를 두고 중재 절차에 돌입하는 등 이 같은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는 분위기다.M&A 시장에서도 경영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새 주인을 찾거나 사업을 매각하는 구조조정 성격의 거래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이와 관련한 자문뿐만 아니라 기업 파산·회생 자문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