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 29일 오전 11시4분

디지털 구강스캐너 기업 메디트를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약 2조6000억원에 인수한다. 미국 칼라일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유럽 CVC 등 글로벌 PEF들이 치열하게 인수 경쟁을 벌였지만 최종 승자는 ‘깜짝 등판’한 MBK가 차지할 전망이다.

'깜짝 등판' MBK, 메디트 2.6조에 인수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메디트 경영권 매각을 진행 중인 국내 PEF 유니슨캐피탈과 매각자문사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이날 MBK파트너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 측은 지난달 말 1차 우선협상자로 칼라일-GS컨소시엄을 낙점했지만 협상 기간이 종료되자 입찰에 참여한 KKR, CVC 등 다른 원매자들과도 협상해왔다. 이 과정에서 당초 불참했던 MBK파트너스가 등장해 빠른 의사결정으로 승기를 잡았다. 거래 금액은 칼라일이 제시한 3조원보다 소폭 낮아졌다.

대형 PEF들이 ‘역전 드라마’까지 쓰며 메디트 인수에 공을 들인 이유는 이 회사의 기술력과 성장성 때문이다. 메디트는 치과 진료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업체 중 하나다. 치아의 본을 뜨고 보철물을 만들 때 메디트의 3차원(3D) 구강 스캐너를 사용하면 고무찰흙이나 석고틀을 사용하지 않고 수십초 안에 치아구조를 형상화할 수 있다. 과거 1주일 이상 걸리던 보철물 제작 기간도 하루면 충분하다. 환자의 치아 상태 및 구조는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돼 치과와 연구소, 기공소 등이 공유한다.

이 같은 디지털 구강스캐너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시장침투율이 세계적으로 10~20%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도 30%가 채 안 된다.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경쟁자는 쓰리쉐입 엔비스타 얼라인테크 등이 있다. 메디트는 경쟁사 대비 빠르고, 정확하고, 가벼운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으며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메디트는 지난해 매출 1906억원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1039억원을 기록했다. 유니슨이 인수한 2019년 매출 722억원, EBITDA 367억원보다 각각 2.5배, 3배 가까이 늘었다. 유니슨이 인수한 뒤 글로벌 영업조직을 신설하고 해외 시장을 공격적으로 두드린 결과다. 올해도 매출이 지난해보다 약 60%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10월 실적이 회사가 제시한 목표치에 크게 못 미쳐 칼라일과의 인수 계약이 불발됐다. 업계 관계자는 “메디트의 최대 경쟁력은 가격 경쟁력인데 글로벌 경쟁사들 역시 신제품을 출시하고 가격을 낮추는 등 메디트를 견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예고하고 있어 향후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MBK는 2020년 65억달러 규모로 결성한 5호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메디트를 인수할 예정이다. 이 펀드의 국내 투자 건으로는 e커머스 전문기업 코리아센터, 신발 원단 업체 동진섬유와 경진섬유 등이 있다. 메디트를 인수하면 5호 펀드의 대표 포트폴리오가 될 전망이다. MBK는 5호 펀드의 투자금 중 약 35%를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MBK는 2019년 10월 롯데카드 인수 이후 국내에서 ‘조 단위’ 거래를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올해 약 10조원 규모의 카카오모빌리티와 2조원 규모의 메가스터디교육 인수를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IB업계 관계자는 “MBK가 올해 추진한 딜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내년 펀드레이징을 앞두고 메디트 인수에 뛰어든 것 같다”며 “다만 아직 제대로 실사하지 않은 상태라 끝까지 협상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