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량 등급으로 분류되는 신용등급 A급 기업들이 자금 조달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기관의 투자 수요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하자 △모회사 지급보증 △정부 기관의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 △기업어음(CP) 발행 등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외면 받는 '신용 A급' 기업들, 자금 조달 총력전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이투자증권은 1500억원어치 공모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9일 수요예측을 한 뒤 다음달 8일 발행하는 게 목표다. 흥행 여부에 따라 3000억원까지 증액이 가능하다. 만기 구조는 1년과 1년6개월, 2년 등으로 단기물 위주로 구성했다.

하이투자증권의 독자 신용등급은 ‘A+(긍정적)’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엔 모회사 DGB금융지주가 지급보증을 해 신용등급을 ‘AAA’로 끌어올렸다. 모회사의 지급보증으로 채권 투자 수요를 최대한 확보하자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대기업 계열사임에도 정부 기관의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A급 기업도 나타났다. 한화에너지(A+, 안정적)는 지난 18일 1000억원 규모의 2년 만기 사모 녹색채권을 연 6.696%로 발행했다. 녹색채권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중 하나로, 환경 개선과 친환경 목적 프로젝트에만 사용할 수 있다. 한화에너지는 이번 녹색채권 발행 과정에서 산업은행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지난 6월에도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1000억원 규모 2년 만기 사모채를 발행했다.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을 받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활용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무림페이퍼(A-)는 지난달 26일 P-CBO를 통해 사모채 500억원을 조달했다.

회사채 대신 단기 조달 창구인 CP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화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는 18일 500억원어치 361일 만기 CP를 조달했다. 한화의 신용등급은 ‘A+(안정적)’ 수준이다. 롯데건설(A+)은 14일 1000억원어치 364일 만기 CP를 발행했다.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화학(A)과 효성중공업(A)도 10일 각각 400억원과 300억원어치 177일 만기 CP를 발행했다.

회사채 시장 냉각기가 이어지면서 A급 기업 투자 수요는 씨가 말랐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AA급 이상 우량 채권의 금리가 치솟으면서 기관들이 A급 채권에 투자할 유인이 크게 약화됐다. 고금리를 노리는 개인투자자는 BBB급 채권을 주로 매수하고 있다. 정부가 도입한 채권시장안정펀드도 매입 대상이 AA급 이상 우량채에 한정돼 있어 A급 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