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와이어 로프 '한우물'…中·유럽 이어 중동에도 깃발
지난 8월 아랍에미리트(UAE)의 유명 항만 운용사가 진행하는 선박 크레인용 와이어로프 입찰에 전 세계 기업이 벌떼처럼 몰렸다. 중동의 물류 허브에서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운용사의 다른 지역 수요까지 넘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몇 주에 걸친 심사가 끝난 뒤 낙찰자 발표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유럽 메이커의 텃밭인 UAE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 중견기업 DSR제강이 선택됐기 때문이다.

홍석빈 DSR제강 대표(사진)는 “가장 중요한 수명 테스트에서 타사 대비 150%가 넘는 성능을 과시했다”며 “한국산 와이어로프가 오는 12월 사상 처음으로 중동 시장에 대규모로 진출할 예정”이라고 16일 밝혔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DSR제강은 크레인과 컨테이너를 이어주는 밧줄 역할의 와이어로프를 주력으로 제조하는 강소기업이다. 100년을 넘는 유럽 회사들에 비해 역사가 짧을 뿐 와이어로프에 바친 세월이 적지 않다. 홍 대표가 건넨 명함 우측 상단엔 ‘창립 50주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DSR제강은 홍 대표 부친인 홍순모 회장이 1971년 창업해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거래를 튼 고객사만 세계 120개국 2500개 기업에 달한다. 20년 이상 거래해 온 고객이 전체의 35%, 15년 이상 24% 등 장기 고객이 많다. 북미 22%, 아시아 35%, 유럽 17% 등 지역별로도 다변화돼 있는 게 강점이다. 전방산업도 기계·자동차 26%, 조선업·항만 22%, 어업 19%, 건설 14% 등 다양하다. 연간 이들 고객사에 공급하는 와이어로프 길이만 지구 반 바퀴에 해당하는 2만1000㎞에 육박한다.

철저한 맞춤형 전략이 최대 경쟁력이라는 평가다. 홍 대표는 “크레인이 사용되는 지역의 기후 환경, 크레인이 주로 취급하는 제품의 종류 등이 수명을 결정한다”며 “단순히 크레인 사양만 고려하는 대신 다양한 변수에 대한 종합 분석을 통해 원자재부터 구조 설계까지 현장에 100% 최적화시킨 제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수명이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유럽·일본산만 고집하던 중국 시장도 사로잡았다. 그는 “중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유럽 및 일본 제품만 사용했지만 우리 제안에 따라 로프 구조 등 디자인을 바꾼 뒤 수명이 늘어난 걸 필드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후부턴 DSR제강 제품을 가장 많이 쓴다”며 “이제는 현지 크레인용 와이어로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DSR제강은 올해 3분기(누적) 매출 1924억원, 영업이익 185억원을 달성했다.

홍 대표는 친형 홍하종 각자대표와 함께 회사를 100년 이상 지속하는 명문 장수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각오다. 그는 “선진국처럼 기업승계 규제를 완화해 기업인이 본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김병근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