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흔들리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자금 시장 경색이 재무 안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원·달러 환율과 금리 상승 등으로 무역 수지까지 악화하면서 내년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향 조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1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는 전날 수시 평가를 통해 롯데케미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로 변경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지주의 통합 신용도를 결정하는 핵심 계열사다. 원재료인 유가가 오른 데다 인도네시아의 나프타분해시설(NCC) 증설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올 하반기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 2분기 214억원이었던 영업적자가 3분기엔 4239억원으로 불어났다.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데다 지난달 롯데건설에 5000억원을 단기 대여한 것도 재무 구조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롯데케미칼의 실질 순차입금은 작년 말 -8844억원에서 지난 6월 말 8646억원으로 늘었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총 차입금도 지난해 1.5배에서 올 상반기 4.3배로 증가했다.

롯데케미칼의 등급 전망이 변경되면서 롯데지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로 하향 조정됐다. 유준위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내년에도 석유화학 업황이 악화되면서 롯데케미칼뿐 아니라 여천NCC 등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롯데 계열사뿐 아니다. 앞서 넷마블, SK하이닉스, 한화생명보험, 한온시스템 등도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20여 개 기업을 등급 하향 검토 리스트에 추가로 올려놓은 상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푸르덴셜생명보험을 하향 검토 대상에 등록했고 LG디스플레이, HDC현대산업개발 등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번복 사태 이후 생명보험사의 신용도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게 신용평가사들의 전망이다.

제레미 주크 피치 아시아태평양 신용등급 담당 이사는 이날 ‘불안정한 시대의 위험과 기회 요인’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반도체 경기 둔화로 수출이 감소하고 가계 부채가 증가하는 등 한국의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위험 요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장현주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