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런' FTX 유동성 위기에 암호화폐 시장 또 '패닉' [코인 스캐너]
글로벌 암호화폐거래소 FTX가 촉발한 유동성 위기로 코인 시장이 또 한 번 폭락했다.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의 최고경영자(CEO) 창펑 자오가 "이용자 보호를 위해 FTX 인수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지만 거래 성사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며 암호화폐 시장 전반이 흔들렸다.

FTX의 자체 토큰인 FTT 가격은 80% 폭락했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코인 가격도 하루 만에 10% 안팎 급락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1만9000달러 밑으로 다시 떨어져 약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테라USD·루나 사태, 셀시우스발 위기에 이어 또 한 번 시장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FTX와 그 모회사 격인 헤지펀드 알라메다 리서치에 돈을 대줬거나 투자를 받은 곳들도 줄줄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FTX는 지난 사흘 사이 60억 달러(약 8조3000억 원)의 '코인런'을 겪고 모든 이용자의 암호화폐 출금을 중단했다.

9일 암호화폐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0분 기준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10.4% 하락한 1만8459달러에 거래됐다. 비트코인 가격이 1만8000달러대로 떨어진 것은 2020년 12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이더리움 가격도 24시간 만에 15.6% 급락해 1325달러에 거래됐다.

다른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 암호화폐)도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FTX와 그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강력하게 지원해온 솔라나(SOL)는 24시간 만에 20.3% 급락했고, FTX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앱토스도 22.6% 떨어졌다.

'파산' 셀시우스 닮은꼴 알라메다-FTX
FTT 80% 급락에 유동성 위기 일파만파

FTX가 자체 발행하는 유틸리티 토큰 FTT는 76% 폭락했다. FTT는 이번 FTX발 유동성 위기의 핵심에 있는 토큰이다.

지난 2일 코인데스크는 알라메다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상 총자산이 대부분이 FTT로 채워져 있다"며 "FTT를 담보로 많은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알라메다가 보유한 58억 달러어치 FTT는 총 발행량의 80%로 알려졌다. 알라메다는 샘 뱅크먼프리드가 FTX를 창업하기 전에 설립한 헤지펀드다. FTX와 사실상 한 몸으로 여겨진다.

시장에서는 FTX가 FTT를 발행하면 알라메다가 그 대부분을 매입해 가격을 올리고, 대차대조표상 이익을 얻은 것처럼 꾸미는 식으로 몸집을 불려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욱이 알라메다는 그 FTT를 담보로 여러 곳에서 대출과 투자를 받았다. FTT의 가격이 무너지면 알라메다, FTX를 시작으로 줄줄이 부실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진 것이다.

창펑 자오는 이 우려에 불을 붙였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작년 FTX 지분을 매각하며 받은 21억 달러(약 2조9000억 원) 상당의 BUSD와 FTT 중에서 바이낸스 장부에 남아있는 모든 FTT를 청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FTX와 알라메다의 FTT 거래 구조를 지적하며 "루나 사태에서 배운 리스크 관리의 일환일 뿐"이라고 첨언했다. 바이낸스가 이미 5억8000만 달러 상당의 FTT 2300만 개를 이미 바이낸스 지갑에서 빼낸 것도 포착됐다.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FTX는 괜찮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지만 효과는 없었다. 투자자들은 앞다퉈 FTX에서 자산을 빼내는 '코인런'에 나섰고, FTX가 인출 중단을 반복하며 파산 우려가 커졌다.

업계에서는 샘 뱅크먼프리드의 적극적인 정계 로비와 암호화폐 규제 찬성, FTX의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도 등에 자극을 받은 창펑 자오가 경쟁자 제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뱅크먼프리드는 루나·셀시우스 사태 이후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시장에 구제금융 역할을 자처하고 지분을 사들이며 업계 장악력을 높여왔다. 블록체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이낸스가 오로지 리스크 관리만을 위해 FTT를 매도할 것이었다면 굳이 사전 예고를 날려 가격을 급락시킬 유인이 없다"며 "FTT 붕괴를 통해 FTX를 약화시키는 것도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낸스 "FTX 인수 착수"...법적 구속력 無

창펑 자오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
창펑 자오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
시장 혼란이 커지자 창펑자오는 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FTX에 중대한 유동성 경색이 발생했고 (바이낸스에) 도움을 요청했다"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FTX를 모두 인수하는 목적의 LOI(인수 의향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LOI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라며 바이낸스는 언제든지 이번 거래에서 손을 뗄 재량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불과 하루 전 "FTX는 괜찮다"고 했던 샘 뱅크먼프리드도 "현재 정리 작업 중이며 유동성 경색을 해결할 것"이라며 창펑 자오와 바이낸스에 감사를 표했다.

바이낸스의 '구조' 가능성에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2만 달러 위로 반등했다. 하지만 시장의 안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양사의 인수 의향서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설사 인수가 성사되더라도 상당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주목받으며 시장은 다시 하락 반전했다.

크립토컴페어의 데이빗 모레노 다로카스는 블룸버그에 "인수 의향서에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며 "다른 이슈가 제기되면 창펑 자오와 바이낸스가 언제든 거래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 사태가 FTX와 알라메다의 부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FTT의 가격 급락이 계속되면 알라메다가 FTT를 담보로 받은 대출과 알라메다에 투자한 벤처캐피탈도 줄줄이 부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펀드인 아르카의 제프 도먼 최고투자책임자는 CNBC에 "FTT 가격 하락이 이어지면 알라메다는 마진콜과 모든 종류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암호화폐 트레이딩업체 오안다의 에드 모야는 "신뢰의 위기가 다시 왔다"며 "암호화폐 업계 핵심 인물과 관련된 자산이 불안정해지면 위기가 시장 전반에 전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