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면담한 뒤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면담한 뒤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미국 중간선거 투표 결과가 9일(현지시간)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완성차 업계도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조 바이든(민주당) 행정부가 대표 치적으로 내세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수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자체의 폐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이기면 정책 추진력이 약해져 법 개정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IRA에 관심이 쏠린느 것은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는 조항 때문이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돼야 하고, 북미에서 제조된 배터리 소재가 일정 비율 이상인 전기차에 한해서만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도록 규정했다. 현지에 전기차를 수출하는 완성차 업체들로선 걸림돌이 된다.

이날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현대차그룹 등은 앞서 이달 4일 IRA 전기차 세액 공제 규정에 대한 의견서를 미국 재무부에 제출했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기아 전기차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해 전량 수출한다. 이대로라면 세제혜택 대상에서 모두 제외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5년 현지 전기차 전용공장 완공 때까지만이라도 해당 법 적용을 유예시켜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낸 상태다.

공화당은 중간선거 유세 기간 내내 IRA 폐기 혹은 개정을 거론해왔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공화당이 중간선거 승리 후 관련 조항 개정을 당론으로 정한다고 해도 상원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표결을 실시하려면 100석 중 60석이 필요한데, 공화당이 이번 선거 결과 60석 이상을 차지할 확률은 높지 않다.

상·하원에서 모두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에도 불구하고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면 상·하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다 해도 상원의 경우 '박빙' 전망이 우세하다.

공화당이 IRA 폐기 혹은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사안은 전기차 세액 공제보다는 기후변화 정책 및 국세청 등 정부 예산 증액 부분인 점도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다만 공화당의 승리로 IRA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화할 경우 바이든 정부가 다소 완화된 차원의 하위 시행령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IRA는 바이든 정부가 중간선거용으로 빠르게 진행시킨 측면이 없지 않아서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열린 현대차그룹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정의선 회장 등이 삽을 뜨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열린 현대차그룹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정의선 회장 등이 삽을 뜨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실제 현대차그룹도 당초 내년 1월 예정됐던 미 조지아주 공장 기공식을 중간선거 전인 지난달 25일로 3개월가량 앞당겼다. 바이든은 기공식 당일 성명을 내고 "민주당이 의회에서 처리한 나의 경제 정책이 조지아주에서 성과를 냈다"며 치적을 홍보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달 20일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한다면 전기차 배터리 요건 문제와 업계의 고충을 듣는 청문회부터 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배터리 부품을 온전히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언젠가 중국과 마주앉아 협상해야 할 날이 올 것"이라며 조항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치영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 IRA 법안 수정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공화당은 민주당과 달리 자국 기업들의 비용 부담 경감을 위해 일부 전기차 소재와 부품은 외부 조달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IRA법 '속도조절론'이 감지된다. 테리 스웰 민주당 하원의원(앨라배마주)은 지난 4일 북미산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IRA 조항 시행을 2025년 12월31일까지 3년간 유예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 8월 바이든 대통령의 법안 서명으로 시행된 IRA 조항을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이 완공되는 시점까지 미루도록 한 것이다. 개정안은 내년부터 적용되는 배터리 광물·부품의 미국산 비중 확대 요건의 시행 일시를 2024~2025년 이후로 유예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미 의회 입법 절차상 하원 논의·표결을 거쳐 상원으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하원에서 IRA 세액공제 조항 적용을 유예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의미가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민주당과 공화당 중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미 시행된 IRA 법의 근본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며 "하위 시행령 개정으로 3년의 유예기간을 받아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