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인식 변화와 기후 변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원전 산업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신규 건설은 지연되거나 폐기되었고, 운영중인 원전도 폐쇄 일정을 앞다퉈 발표했다. 그 사이 태양광 발전의 경제성은 균등화발전비용(LCOE) 기준으로 2010년 0.417달러/kWh 에서 2021년 0.048달러/kWh로 개선되었다. 핵폐기물이 발생하지만 저렴한 발전원이라는 원자력 발전의 면죄부마저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2021년 7월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 발전과 가스 발전을 포함하는 기후위임법안(CDA)이 발의되면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과도기적이라는 단서가 붙고, 복잡 다양한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발전원을 무엇으로 증설할까 여부를 논의할 때, 대상으로 고려될 수 없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기조의 확산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분야의 투자가 제한되면서 석탄의 가격이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급효과로 천연가스 가격마저 급등하자 유럽 국가들은 느긋하게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가장 열심히 나섰던 북유럽 국가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원자력 발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스웨덴은 2021년말 기준 총 발전용량 4만5194MW을 태양광 1610MW, 풍력(육상+해상) 1만2080MW, 수력 1만6406MW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월14일 스웨덴 차기 정부는 국영전력사 ‘바텐폴(Vattenfall)’에 ‘링할(Ringhal)’ 1, 2호기의 가동 재개 및 신규 원전의 검토 등을 요청하며 원자력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100% 신재생에서 100% 탈화석연료로 에너지 정책 목표를 바꾼다고도 선언했다. 탄소 배출량 감축이 더 빨리 필요하다는 반증인 동시에, 수단에 있어서는 타협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핀란드는 2021년말 기준 총 발전용량(1만8341MW)을 태양광(404MW), 풍력(3257MW), 수력(3178MW)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핀란드 국영 전력사 ‘포르툼(Fortum)’이 스웨덴과 핀란드의 신규 원전 건설 추진을 위한 타당성 평가를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무탄소 발전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통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을 고려한다는 것으로 기후에 의존적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안정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더 빨리 보급하려는 수단이다.

독일은 2021년말 기준, 총 발전용량(22만8350MW)을 태양광(5만8728MW), 풍력(6만3865MW), 수력(1만739MW)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현재 원자로 3기가 남아있는데, 2023년 4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가동하기로 승인한 것이 화제가 됐다. 녹색당 또한 한시적으로 가동하는 것에는 찬성했다. 다만 신규 핵연료를 추가로 조달하는 것에는 반대하며 원전의 수명 연장 등 기조와는 선을 그었다.

탈원전에 앞장서던 독일마저도 탄소배출량을 줄이면서 전력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원전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이 일견 모순적이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약 70%의 전력을 원전으로 조달하던 프랑스가 원전계통 부품의 문제 및 여름 가뭄으로 원자력 발전소 가동률이 낮아진 것이 독일 전력난 문제에 기여했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본질적인 원인은 기후 변화를 반영한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준비가 느렸던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가는 길은 시행착오가 많았다. 태양광, 풍력 등 무탄소 발전원을 충분히 보급하면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저장하기 어려운 전기의 특성 때문에 변동성이 심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원으로는 기존 전력망의 수요를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통 대형 원전을 무턱대고 늘리는 것 또한 장기적인 신뢰성에서는 미봉책일 수 있다. 프랑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후 가열화로 인한 수온 증가 및 유량의 변화는 원전 발전량의 변동성을 부여한다.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원전의 평균 급중단 빈도는 20년간 약 8배나 상승했다. 기온 상승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그 영향 또한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면 방사성 폐기물이 생긴다는 점 또한 발전소의 수를 늘리려고 할 때 저어하는 부분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역할과 수명연장을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리장에 보관하는 것 외에, 본질적인 처리 방법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EU 택소노미에서도 과도기적인 발전원으로 분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각국의 발전 환경에 최적화된 여러 종류의 발전원으로 에너지 믹스를 구성해야 미래의 기후에 적응할 수 있어, 원자력 발전의 역할을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이다.

네이처 에너지의 또 다른 논문에서는 비용과 탄소배출량 등을 변수로 국가마다 최적화된 에너지 믹스를 제시하였다. 태양광, 풍력 발전의 비중이 국가마다 다른 것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탄소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필연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놀랍다. 저자는 원전을 변호하려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영구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에 대해서도 진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