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의 버킨백. 사진=한경 DB
에르메스의 버킨백. 사진=한경 DB
e커머스 등을 통한 리셀(되팔기)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시장에서 팔리는 일부 명품 브랜드의 중고품 평균 가격이 ‘신상’ 판매가를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명품사들은 유통의 주도권이 e커머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인기 제품의 판매를 제한하고, 구매자들에게 영리 목적으로 재판매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는 등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일 글로벌 리셀 플랫폼 리백이 최근 내놓은 ‘2022 클레어 리포트’에 따르면 에르메스 핸드백의 중고품 평균 가격은 정상 제품 판매가격의 103%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리백은 2014년 설립한 미국의 명품 플랫폼으로 2020년부터 주요 브랜드의 핸드백 리셀 평균 가격을 매장 판매가로 나눈 ‘명품평가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1400만원 '에르메스 백' 사기만 하면 대박…리셀가 얼마길래
올해는 루이비통이 92, 샤넬은 87을 나타냈다. 에르메스의 ‘간판’인 버킨백은 리셀 플랫폼 크림에서 정가(1400만원)의 두 배 이상인 32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리셀 가격이 이처럼 급등세를 보이는 건 코로나19를 계기로 e커머스를 통한 리셀 구매 수요가 급격히 불어난 게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명품 제조사나 나이키 등 글로벌 주요 패션기업들이 유통의 주도권을 e커머스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판매를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일반 소비자들이 정식 매장에서 신상품을 구입하는 게 까다로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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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경우 지난 9월부터 에르메스는 3월부터 ‘재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이용약관 등에 포함시켰다. 해외에서도 나이키와 글로벌 1위 리셀 플랫폼인 스탁엑스 간에 ‘짝퉁’ 판매를 둘러싼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조사가 가격 결정 등의 주도권을 유통사에 빼앗기면, 실적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과거 대형마트와 식품사가 치열하게 ‘제판전쟁(제조·판매 전쟁)’을 벌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급성장한 글로벌 명품사와 e커머스 간 제판전쟁은 현시점에서 양 진영의 ‘끝판왕’들끼리의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명품 브랜드가 상품의 유통권을 놓고 리셀 플랫폼과의 ‘소송전’을 불사하고 있다. 이제까지 에루샤(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는 백화점 1층 명품관과 자사 매장 등으로 제품의 유통처를 한정했다.

백화점 1층의 명품관은 백화점 전체 매출을 좌우할 정도로 모객효과가 컸다. 국내에서 이런 명품 유통구조가 수십년 동안 유지됐다. 그러나 쿠팡이나 아마존을 비롯한 e커머스 기업과 중고 상품을 판매하는 리셀 플랫폼이 나타나면서 전세가 뒤바뀌고 있다. 명품 브랜드는 유통 기업들의 제품 판매를 막기 위해 이들이 ‘짝퉁’을 판매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소송전에 들어갔다.

‘리셀러’에게 판매 권한 빼앗기는 명품

코로나19확산 이후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간 ‘제판전쟁’(제조·판매)이 벌어졌다. 명품 브랜드의 ‘희소 마케팅’으로 핸드백 중고가격이 치솟으면서 중고상품을 거래하는 리셀시장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마존은 리셀 기업인 ‘WGACA’와 제휴를 맺고 럭셔리 스토어에서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럭셔리 제품을 공식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500개 수준인 럭셔리 상품 개수를 연말까지 2000여개로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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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업계는 아마존의 럭셔리 상품 판매로 술렁거렸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명품관에서만 활동하는 ‘리셀러’(되팔이)들이 온라인으로 판매망을 넓히며 브랜드의 2차 판매처 역할을 한다”며 “아마존의 결정으로 명품 리셀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과 협력한 WGACA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빈티지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명품 브랜드와 법적 다툼을 피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빈티지 제품을 판매한다고 했으나, 발매한 지 1년도 안된 새 상품을 판매하는 리셀 플랫폼이다.

온라인몰의 명품 판매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에서도 전통 유통채널인 홈쇼핑을 비롯해 SSG닷컴, 11번가 등 다양한 온라인채널에서 명품을 판매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아마존처럼 ‘명품관’을 들여오는 온라인몰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명품 카테고리의 매출 성장률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 온라인 플랫폼 알리바바는 2017년 럭셔리 제품을 판매하는 ‘파빌리온’을 열였는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출 성장률이 300%에 달했다.

e커머스·명품기업 ‘소송전’

패션 브랜드는 리셀 플랫폼 등 e커머스기업과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명품 시장의 높은 성장성을 고려해 돈되는 명품 브랜드를 전부 들여오려는 e커머스의 전략 때문이다.

패션 기업은 e커머스 기업들이 ‘짝퉁’을 팔고 있다고 집요하게 노리고 있다. 나이키는 지난 5월 세계 1위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를 “짝퉁 나이키 운동화를 팔고 있다”며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의 1차 판매 상품과 모양이 현저히 다르지 않다면 상품을 팔 권리가 있다.

하지만 유통기업이 ‘짝퉁’을 판매하고 있고, 이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면 상품 판매를 중단시킬 수 있다. 아마존에 입점하는 WGACA는 이미 2018년에 샤넬과 한번 법적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WGACA가 샤넬 브랜드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해 광고하고 있다는 명목에서다.

e커머스와 패션 브랜드 간 ‘소송전’은 산발적으로 있었으나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에르메스와 나이키 등이 구매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되팔수 없도록 계약서에 명시하고 있다.

e커머스 기업은 정·가품 검증센터 구축해 짝퉁을 걸러내는 기술을 도입해 이런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SSG닷컴을 비롯해 리셀 플랫폼 크림 등 대부분 유통기업은 한국명품감정원과 손잡고 정·가품을 검증하고 있다. 박정용 한국감정원 부원장은 “검증을 의뢰하는 기업들이 많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감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