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구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장은 48세 때인 2001년 태평양을 건넜다. 한국산 호접란 뿌리를 가져와 미국에서 꽃을 피워 팔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미국 검역 규정이 걸림돌이 됐다. 흙을 깨끗이 털어낸 뿌리째로만 호접란 수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검역 때문에 운송 도중 호접란 뿌리가 죽는 등 생존율이 크게 떨어졌다. 황 회장은 주미대사관 등을 통해 검역 제도 개선 등을 건의해 2019년 뿌리와 화분 등 재배 매체를 함께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는 “한국산 호접란을 수입해 재배하는 현지 농장인 ‘코러스 오키드’를 미국 전역에 50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황 회장처럼 끈기와 집념만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한 한인 상공인의 사례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맨손에서 시작해 일본에 연매출 2000억원대 기업군을 일군 장영식 세계한인무역협회장이 대표적이다. 장 회장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93년 일본으로 건너가 쌀, 가전제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1995년 물류회사 ‘에이산’을 설립한 그는 창업 14년 만에 일본 가전제품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일본 내 면세점도 23곳을 운영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한국 식료품 전문 소매점인 예스마트를 세웠으며, 일본 내 25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최분도 베트남 중남부 한인상공인연합회 수석부회장도 2004년 단돈 1만달러를 들고 종합 물류 기업 PTV그룹을 설립했다. 이후 회사를 80여 개국 600여 개 파트너사를 둔 임직원 180명, 연매출 1억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개척자’ 역할을 한 한인 상공인도 적지 않다. 중국 동포 2세인 권순기 중국아주경제발전협의회장은 1996년 베이징상립대투자고문유한공사를 세우고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 시장을 열었다. 현대차의 중국 진출을 지원하고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투자 중개, LS그룹의 장쑤성 우시시 공장 설립을 지원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장은 한국산 LED(발광다이오드) 제품을 유럽에 수출 및 설치하는 코리아LED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스페인에서 대형 종합스포츠센터를 운영하며 16년간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해오다가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스페인 전문가’로서 국내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중소기업의 유럽 진출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김점배 아프리카중동한인회총연합회장은 원양어선 선장 시절인 1976년부터 오만에서 생활한 ‘오만 전문가’다. 그가 운영하는 알카오스트레이딩은 1000t급 세 척 등 다섯 척의 트롤망 선박으로 소말리아 해역을 중심으로 조업하는 원양어업 회사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