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는 현대차 '아이오닉 5' /사진=한경DB
도로를 달리는 현대차 '아이오닉 5' /사진=한경DB
“테슬라가 전기차만 개발한 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내연기관만 목매던 완성차업체들이 뒤늦게 무슨 수로 따라오나?”

테슬라 열성 팬들이 테슬라의 기술력을 강조할 때 흔히 펴는 논리 중 하나입니다. 전기차는 그러나 근래 들어 나온 기술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1888년 독일의 발명가 안드레아스 플로켄이 만든 ‘플로켄 일렉트로바겐’을 최초의 전기차로 보고 있습니다. 1886년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1900년대 초엔 미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38%가 전기차였습니다(찰스 모리스《테슬라 모터스》). 1913년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가솔린 엔진 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전기차는 도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1888년 독일의 발명가 안드레아스 플로켄이 만든 최초의 전기차 ‘플로켄 일렉트로바겐’
1888년 독일의 발명가 안드레아스 플로켄이 만든 최초의 전기차 ‘플로켄 일렉트로바겐’

현대차, 전기차 개발 30년사

현대차는 언제부터 전기차를 만들었을까요. 현대차 공식 블로그에 따르면 1991년 쏘나타 전기차가 시초입니다. ‘미래형 무공해 자동차’ 개발을 목표로 한 연구용이었습니다. 이후 액센트 전기차, 싼타페 전기차가 현대차 R&D 센터인 남양연구소에서 차례로 개발됩니다. 현대차는 2011년 첫 양산형 전기차인 블루온, 2016년 아이오닉 일렉트릭, 2018년 코나 일렉트릭을 출시합니다. 정리하면 현대차의 전기차 개발 ‘짬밥’은 30년에 달합니다.
현대차가 1991년 첫 개발한 전기차인 '쏘나타 전기차'. 연구용 차량으로 시판되진 않았다. /사진=현대차 블로그
현대차가 1991년 첫 개발한 전기차인 '쏘나타 전기차'. 연구용 차량으로 시판되진 않았다. /사진=현대차 블로그
물론 이 전기차들은 내연기관 차량의 플랫폼을 활용한 개조형 모델이었습니다. 엔진 등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전동모터와 배터리 시스템을 끼워 넣었습니다. 테슬라 같은 순수 전기차 플랫폼 차량에 비해 배터리 효율과 주행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 정의선 당시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의 전기차 전략은 일대 변화를 겪게 됩니다. 현대차는 기획, R&D, 상품 전략까지 총괄하는 전기차 전담 조직을 신설합니다. 2019년엔 연구개발 조직도 대폭 강화했습니다(박태준《충전 중인 대한민국 전기차》). 오너가 주축이 되어 그룹 역량을 전기차에 쏟아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 아이오닉 5와 올해 세단 아이오닉 6가 출시됩니다.

‘정의선의 회심작’ 아이오닉 5

아이오닉 5는 현대차가 작심하고 만든 전기차입니다. 경쟁사의 모든 전기차 사례를 분석하고 보완해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전용 플랫폼을 탑재해 △배터리 무게 밸런싱 △배터리에 최적화된 충격 흡수 △실내 기어박스 제거 등을 구현했습니다. 캠핑과 차박을 위해 차량 전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5000만원 선의 실구매가로 가격 측면에서도 대중화를 꾀했습니다.

제원과 가격으로 본 아이오닉 5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제 출고를 하려면 계약 후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각국에서 자동차 상을 받는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차를 타보면 어떨까요. 현대차의 이 야심 찬 전기차는 테슬라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 <테슬람이 간다>도 아이오닉 5 시승기입니다. 지난 9월 25일과 10월 7일 이틀에 걸쳐 경기도 일산의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진행했습니다. 시승은 일반 고객과 똑같이 현대차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습니다. 첫 시승은 가이드와 함께 30분 코스, 두 번째 시승은 운전자 단독으로 3시간 코스를 체험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시승을 위해 준비된 아이오닉 5. 아틀라스 화이트 색상의 프레스티지 모델이다. /사진=백수전 기자
경기도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시승을 위해 준비된 아이오닉 5. 아틀라스 화이트 색상의 프레스티지 모델이다. /사진=백수전 기자
아이오닉 5의 디지털 사이드 미러. /사진=한경DB
아이오닉 5의 디지털 사이드 미러. /사진=한경DB

승차감 편안한 아이오닉, 딱딱한 모델Y

시승 차로 준비된 아이오닉 5는 주행거리가 긴 롱레인지 모델 중 최고급 사양인 ‘프레스티지’입니다. 색상은 가장 인기 있다는 ‘아틀라스 화이트’였습니다. 개별소비세 혜택이 적용된 판매가는 5885만원입니다. 여기에 국고‧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실구매가는 더 내려갑니다. 주행 거리는 한 번 충전하면 최장 450㎞(2WD‧19인치 휠 모델)입니다.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디지털 사이드미러입니다. 거울 대신 카메라가 달렸고 운전석과 조수석 양 끝에 OLED 모니터가 배치됐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운전하면서 금세 적응됩니다. 화면 해상도도 높습니다. 그러나 이 옵션을 넣으려면 285만원을 추가해야 합니다. 거울 외에 어떤 용도가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아이오닉 5 실내 모습. /사진=백수전 기자
아이오닉 5 실내 모습. /사진=백수전 기자
테슬라 모델Y 실내 모습. /사진=백수전 기자
테슬라 모델Y 실내 모습. /사진=백수전 기자
운전대를 잡아봅니다. 두툼한 촉감이 마음에 듭니다. 시트와 내장재 마감이 차분하면서 고급스럽습니다. 12.3인치 LCD 패널은 시인성이 좋습니다. 군데군데 들어간 플라스틱 소재도 소위 ‘싼티’가 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제네시스 G70의 내장보다 마음에 듭니다. 이 부분에서 테슬라 모델Y는 한 수 아래입니다.

차량 천장 위 탁 트인 비전 루프도 눈에 들어옵니다. 뒷좌석 아이들이 좋아할 옵션입니다. 그러나 테슬라처럼 선루프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굳이 이걸 따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현대차의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흐릿합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등 독일 프리미엄 차에 아직 못 미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오닉 5의 기어는 칼럼 시프트입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차량이 출발합니다. 전기차답게 주행 질감은 부드러우면서 정숙합니다. 내연기관차와 크게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승차감은 편안합니다. 도로의 둔덕도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핸들링 역시 테슬라 차량보다 다소 가볍습니다. 이 차가 지향하는 바가 ‘아빠 차’ ‘패밀리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반면 모델Y의 승차감은 다소 딱딱합니다. 특히 불규칙한 도로에서 노면을 심하게 탑니다. 이는 일부 모델Y 차주들도 지적하는 사항입니다.

내연기관차 운전자들이 초기에 가장 낯설어하는 전기차 회생제동(가속페달을 발에서 떼면 급제동)은 5단계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오닉 5 시승차의 설정은 기자에게 매우 편했습니다. 모델Y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테슬라 차주들은 “회생제동은 금세 적응되고 오히려 편하다”고 말합니다.
주행 중인 아이오닉 5의 운전석  모습. /사진=백수전 기자
주행 중인 아이오닉 5의 운전석 모습. /사진=백수전 기자

제로백 5.2초, 보기보다 빠르네

아이오닉 5가 일산 시내를 벗어나 자유로로 나왔습니다. 차량이 한적한 고속화도로에 들어서자 가속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 지긋이 가속페달을 밟아봅니다. 속도계 숫자가 순식간에 올라갑니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시간) 5.2초. 무게 2t의 육중한 차량은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전기차답게 초반 가속력이 시원합니다. 내연기관차에서 급가속하면 느껴지는 기어 변속 딜레이나 터보 랙(터보엔진 차량 가속 시 딜레이)도 없습니다.

아이오닉 5와 비슷한 제로백을 가진 차로 포르쉐 718 박스터(4.9초), 벤츠 e클래스 e450(5초), BMW 640i(5.2초) 등이 있습니다. 모델Y 롱레인지도 5초입니다. 모두 가격이 1억원을 넘나드는 고가 차량입니다. 수입차 ‘입문 모델’인 BMW 3시리즈(320i‧7.3초)나 벤츠 C클래스(C200‧7.1초)가 도로에서 아이오닉 5에 덤볐다간 뒤꽁무니만 보는 망신을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다만 차량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이오닉 5보다 더 큰 SUV인 벤츠 GLC가 1905㎏, BMW X3가 1895㎏으로 100㎏가량 가볍습니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경량화가 쉽지 않습니다. 차세대 전기차 하드웨어 경쟁은 이 부분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차의 초반 가속은 웬만한 내연기관차를 압도한다. 서울 시내 한 도로에서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제치고 달려가는 테슬라 모델Y. 모델Y 퍼포먼스 모델의 제로백은 3.7초다. /사진=노량진개미 유튜브
전기차의 초반 가속은 웬만한 내연기관차를 압도한다. 서울 시내 한 도로에서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제치고 달려가는 테슬라 모델Y. 모델Y 퍼포먼스 모델의 제로백은 3.7초다. /사진=노량진개미 유튜브

‘현대차의 숙제’ 자율주행

테슬라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특징은 자율주행입니다. 물론 아직은 레벨2의 주행 보조 수준입니다. 그러나 기자가 강변북로에서 두 차례 체험한 FSD(Full-Self Driving)와 오토파일럿 기능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고속화도로에서 앞 차량과 간격을 두고 잘 따라갔고, 차량이 많지 않다면 차선 변경도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왕초보’ 운전기사를 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오닉 5에 탑재된 반자율주행 기술은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크루즈컨트롤(NSCC) △고속도로 주행 보조 △차로 유지 보조 △전·후방 충돌 방지 보조 기능 등입니다. 기능 설명 만으론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기도 제2자유로에서 주행 중인 아이오닉 5. /사진=백수전 기자
경기도 제2자유로에서 주행 중인 아이오닉 5. /사진=백수전 기자
SCC 버튼을 누르고 운전대에서 손을 떼 봅니다. 어떤 조건이 필요한건지 주행 보조 모드로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간신히 인식해도 자꾸 풀립니다. 이 때문에 손에서 핸들을 떼는 게 불안했습니다. 차량이 별로 없는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간신히 한 번 성공합니다. 깜빡이만 켜고 움직이지 않아서 뒤차에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 수준으론 테슬라와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글로벌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테슬라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와 자율주행 기술 격차를 1년 수준으로 좁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체험한 바로는 그 1년엔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2013년 첫 계획을 발표한 이후 자율주행 기술에만 근 10년을 매진한 기업입니다. 자율주행 칩과 소프트웨어 및 AI 슈퍼컴퓨터(도조·DOJO)를 모두 자체 개발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오닉 5 택시. /사진=백수전 기자
서울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오닉 5 택시. /사진=백수전 기자

현존 세계 최고의 ‘대중 전기차’

이틀에 걸친 시승을 종합해보면 아이오닉 5는 훌륭한 ‘대중 전기차’입니다. 벌써 서울 시내 곳곳에서 아이오닉 5가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택시까지 등장했습니다. 출고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계약 대기도 많습니다. 편안한 승차감, 넓은 공간, 준수한 성능에 테슬라 전기차의 반값에 가까운 가격도 매력적입니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전기차를 내놓지 못한 글로벌 경쟁사를 생각하면 현대차의 야심과 속도가 기대됩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