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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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0.7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낮은 합계출산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동아시아 문화권 특유의 남아선호 사상이다. 정부가 1970~1980년대 '한명만 낳자'는 취지의 산아제한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아들 한명만 낳고 출산을 중단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무너진 성비가 지금의 초저출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5~34세, 남성이 43만명 더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5~29세 인구 366만명 중 여성은 170만명에 불과했다. 남성 195만명에 비해 25만명이나 적다. 성비는 114.4로 5세 단위로 구분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30~34세는 333만명 중 157만명이 여성이었다. 성비는 111.9로 집계됐다.

25~34세 인구의 성비는 113.2에 이른다. 이 연령대 여성 인구 100명당 남성인구가 113.2명이라는 의미다. 전체 인구가 699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남성 인구가 43만명 많다.

작년 25~34세 인구는 1987~1996년에 태어났다. 정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인구 유지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진 시기다.

1980년대 정부는 남녀를 구분하지 말고 '한명만 낳자'는 취지의 정책을 폈다. 이 정책은 사실 남아선호사상을 덜어내려는 시도였다. 딸을 낳은 가구에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출산을 계속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잘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등의 표어를 보급하고, 피임과 가족계획을 장려했다.

무리한 산아제한, 초저출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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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같은 정책은 뿌리깊게 남아있는 남아선호 사상을 불식시키지 못한 채 부작용만 키웠다. 부모들은 한명만 낳아도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 다양한 편법이 동원됐다. 태아 성별 검사를 통해 아들이 아니면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왔다. 1987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태아 성별 고지가 금지된 것도 이같은 사건이 다수 발생한 영향이다.

결국 이 시기 산아제한 정책은 '한명만 낳되 아들만'으로 귀결됐다. 정부의 과도한 산아제한 정책이 성비 불균형을 키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같은 기조를 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진 1980년대 말 이후에도 이어갔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출산율은 2명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출산억제책을 거둬들인 것은 1996년이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 출생아들의 성비는 역대 최악 수준으로 나타났다. 1990년생은 116.5라는 최악의 성비를 기록했다. 1993년생(115.3)과 1994년생(115.2) 등도 성비 불균형이 심각했다. 이 시기 태어난 사람들이 지금 결혼과 출산 적령기가 됐다.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성비까지 무너지면서 출산율이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1980~1990년대 무렵의 잘못된 정책이 초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